시원한 물을 한 잔 건넸습니다. 그는 땀을 닦으면서 임대차 계약서를 보여주더니 서명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코웨이(주)로부터 상품과 계약서 및 약관, 상품 정보를 이상 없이 인수받았으며, 설치 기사인 CS Dr.로부터 정상 설치 받았음을 확인합니다"라고 쓰인 곳에 서명을 하고, 명함 한 장을 건네받았습니다.
명함에는 코웨이 CS Dr. ○○서비스팀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문득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이었다는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코웨이 정식 직원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상대로 그는 코웨이 정규직이 아니었고, 설치와 AS를 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하청업체가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원이라는 소송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고, 스마트폰 동아리 모임인 네이버 밴드를 통해 뭉치고 있으며, 곧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는 잠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삼성에서 잘됐으면 좋겠네요. 저희 같은 회사는 삼성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든요."
"저희 회사는 삼성을 따라 하거든요"
웅진코웨이 홈페이지에는 "CS Dr.는 코웨이를 대표하는 제품 서비스 전문가로서 제품 설치, 이전, 해체 서비스, A/S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또또사랑을 실천하여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웅진코웨이 홈페이지 '코웨이 사람들'이라는 메뉴에는 코디, CS Dr, HP(해피 플래너), 홈케어닥터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고,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시에스닥터(CS Dr.)에 채용 원서를 접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웅진코웨이의 시에스닥터(CS Dr.)는 코웨이 옷을 입고, 코웨이 명함을 나눠주고, 코웨이가 만드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연수기, 음식물 처리기 등 주요 가전 제품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노동자입니다.
웅진코웨이가 홈페이지에 '코웨이 사람들'이라고 자랑하고, 칭찬하기 코너를 만들고, 입사원서도 직접 받고 교육을 시켜 현장에 내보냅니다. 코웨이의 전국 서비스팀에 소속되어 있고, 제품의 설치나 수리를 하면 수리비는 코웨이 회사로 송금됩니다.
요약하면 정규직이 아니라고 판단할 근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웅진코웨이 정규직이 아닙니다. 그들은 웅진코웨이의 계약직 사원도 아닙니다. 파견 노동자도 아니고 하청회사 소속도 아닙니다. 웅진코웨이와 개인이 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 노동자입니다. 하청업체 이름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정규직이 될 가망이 없습니다.
'코웨이 사람들'이라고 자랑하는데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니다?
이들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요? 코웨이 천안서비스팀의 채용 공고에는 평균 370만~500만 원 이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해보험에 가입하게 해주고 스마트폰 통신 비용도 지원하며, 우수 닥터에게는 팀장 기회도 부여한다고 합니다.
월 500만 원, 연봉이 6000만 원이나 된다고요? 서비스 기사들은 턱도 없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설치 요청이 잦은 주말과 휴일에 일이 집중되어 있고, 평일에도 밤낮 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1년 365일 일해야 서비스 건당 수수료를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4대 보험은 물론이고 근로기준법의 온갖 수당도, 연·월차 휴가도, 퇴직금도, 상여금도 없습니다. 본인의 차량으로 기름 넣고 운전합니다. 3~4년에 한 번씩 자기 돈으로 차를 바꿔서 운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해서 집에 가져가는 월급이 평균 200만~300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회사는 웅진코웨이 서비스 노동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겁니다. 하청업체에 업무를 넘겨서 하청 노동자로 할까, 건당 수수료를 받는 식이니까 특수 고용직 노동자로 할까 검토했을 겁니다. 자영업자나 '소사장'이라는 이름도 법적인 검토를 해봤을 겁니다.
그리고 코웨이는 씨에스닥터라는 새로운 직종을 '창조'해 냈습니다.
▲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위장 도급'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 |
98개 하청업체 사장은 '바지 사장'이 아니다?
코웨이 서비스 노동자의 말처럼 핵심은 삼성입니다. 7월 2일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선언했습니다. 전국 98개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 6300명과 관리·접수·자재 파트의 노동자를 포함해 1만여 명이 노동조합 가입 대상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직접 수수료를 관리해 배분하고, 인원을 성수기인 하절기에 맞추도록 했으며, 노동자들의 근태를 직접 관리하고 본사의 전산망을 통해 모든 업무를 전달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서비스 노동자를 직접 채용해 교육하고, 심지어 '삼성 경영 이념과 삼성인의 정신'을 교육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1만여 명의 서비스 노동자들을 직접 지휘·명령했기 때문에 도급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파견업체를 통해 파견 받아야 하는데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허가 파견, 즉, 불법 파견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업체들이 경영상 독립된 업체라는 증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98개 하청업체는 위장 도급 회사이고, 하청업체 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바지 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전국 98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동아리모임인 '전국삼성서비스 노동자 모임'에는 회사의 압력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15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전국의 서비스 노동자들이 앞다퉈 자신의 근로 조건과 고통을 올리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해도 겨우 200만 원을 받는 노동자들, 인기 많은 '아빠 어디 가?'처럼 아이와 함께 1박2일이라도 여행을 가고 싶은 노동자들, 주5일 근무를 하는 것이 소원인 노동자들의 사연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갤럭시 핸드폰을 비롯해 전자제품을 고치는 최고의 엔지니어라는 자부심 뒤에 삼성전자의 하청 노동자로 짧게는 3~4년에서 길게는 20년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7월 5일 어느 서비스 노동자의 아내가 올린 글은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6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삼성전자 회사 관계자들이 이 동아리에 들어와 염탐하고 있을 텐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지역과 실명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스마트폰 동아리 1500명 폭풍 전야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소송 참가자도 이미 500명이 넘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삼성전자의 불법이 많이 알려졌고, 적은 비용으로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노동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삼성그룹은 삼성에서는 아무리 해도 노동조합은 안 된다는 신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싸워왔지만 무노조 삼성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고, 전체 삼성의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릅니다. 무엇보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를 준비하고 있는 위영일 위원장은 "주유소에서 '알바'를 해도 150만 원, 200만 원을 받는데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 월급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잃을 게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일까요? 벌써 4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썼습니다. 오는 7월 14일에는 금속노조 삼성서비스지회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모여 서로 확인합니다.
잃을 게 없다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들
마침내 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린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앞으로 한 달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듯이 소송은 7년, 1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현대차가 사내 하청 노동자 35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것도 10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무엇보다 6~8월 성수기가 중요합니다. 삼성전자가 전면적인 탄압을 가하자 않는 것은 '서비스도 삼성이 최고'라는 명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수기가 지나고 일거리가 없어지면 핵심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도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영 노동자로 대체 인력이 부족할 경우 정년퇴직 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고, 전파사 사장님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기인 지금 1000명 이상의 대체 인력을 마련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만약 1000~2000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성수기에 일손을 멈춘다면 삼성전자서비스에는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사원증. 뒷면에 삼성전자서비스(주) 명의로 CE(수리 기사)의 등록 및 기술 자격을 증명한다고 적혀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공동대책위원회(준) 제공 |
1000~2000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일손을 멈춘다면?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90% 가까운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습니다.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파업에 나섭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위한 10년 투쟁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이를 응원하기 위해 7월 20~21일 희망버스도 운행됩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2분기(4∼6월) 영업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매출 57조 원에 9조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12조8340억 원으로 1위에 올랐고,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조8650억 원으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삼성 일가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20조 원에 달합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준비위원장이 7월 7일 "하나로 뭉쳐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우리 가족들의 삶을 멍들게 만들었던, 저 악랄한 삼성과 끝까지 싸울 수 있게 해줍시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하루 사이에 6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글을 읽고 수많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경기도 성남의 어느 노동자는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10년을 일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합니다. 끝까지 갑시다."
무노조 삼성 50년 만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국의 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전국의 전자 제품 서비스 기사 노동자들이 삼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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