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지난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주>
미국의 자동차 번호판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주마다 번호판의 디자인과 문구가 다르다. 내가 살던 일리노이 주는 링컨의 고향인 이유로 "링컨의 땅(Land of Lincoln)"이다. 미연방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 주는 "론스타의 주(Lone Star State)"이다. 1845년에 26번째 주로 미연방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별개의 독립 국가였던 텍사스 공화국의 국기에 담겨 있던 별 모양의 상징이었던 론스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론스타는 텍사스 주의 상징이다.
이 텍사스 주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이며 최근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한 '먹튀' 자본 론스타의 고향이기도 하다. 외환위기를 틈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꽤 많이 챙겨서 작년 말에 떠난 걸로 알고 있는데, 2조 4000억 원 정도를 덜 챙겼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장을 보자는데 정부는 안 보여준다. 궁금하면 500원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알 것 없단다. 2조 4000억 원은 소송에서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씩 부담해야 하는 액수인데도 여전히 비공개이다. 그렇다면 지난번 중재의향서의 경우처럼 론스타가 먼저 보여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결국, 중재의향서에 기초하여 판단을 해보면 내용은 이렇다.
한국과 벨기에가 1976년에 맺은 투자협정에 의하면 벨기에 회사는 한국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으로 인한 수익금에 대해서 세금을 물렸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벨기에에 있는 론스타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라서 한국에 있는 론스타 코리아를 국내 고정사업장으로 판단하고 이에 과세를 했다고 한다. 한데, 문제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하면 페이퍼 컴퍼니는 협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 없다.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협정 적용 배제 조항을 두었어야 하는데 협정 체결 시 이를 간과하였고 2006년 개정 시에도 역시 간과하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과세는 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법리적으로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두 번째의 주장은 이른바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자본 성격에 대해서 제때에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함으로써 매각이 지연되었고 이로 인해서 론스타는 더 비싼 값에 외환은행을 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최초에 론스타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금융자본이라고 인정해 주고서는 왜 툭하면 자본의 성격에 대해 시비를 걸고 론스타 코리아의 대표를 구속하는 등 괴롭히면서 매각을 지연시켰냐는 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론스타는 제때에 외환은행을 팔지 못하여 더 많은 매각 이윤을 얻지 못하였고 이는 간접적으로 재산을 빼앗아 가는 행위와 마찬가지이므로 간접수용이라는 주장이다.
법적으로 볼 때 이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비밀행정으로 발생한 문제의 성격이 크다. 결국, 금융당국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러운 행정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인데, 이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ISD 소송에서 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득을 보았을 텐데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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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SID와 한국 사법부 판결이 충돌한다면?
패소하면 억울하더라도 2조 4000억 원만 물어주면 끝인가? 아니다. 사법주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2012년 1월 금융당국은 최종적으로 론스타가 금융자본이라고 판정을 해줌으로써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했다. 이에 국회의원과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은 2012년 7월 헌법재판소에 금융당국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역시 2012년 7월에, 참여연대는 서울중앙지법에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에도 부당한 이익을 챙겨간 것에 대해 환수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건 모두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에 제소한 이번 ISD 사건의 내용 또한 론스타의 자본 성격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같은 내용에 대해서 국제중재재판소와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비슷한 시기에 판단을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심사는 사실관계와 근거법에 대한 해석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법적 해석의 영역과 중복된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 우리의 은행법 하에서 론스타 자본의 성격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국제투자중재재판소가 판단하게 된다. 이 투자중재재판소가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면 우리 정부는 ICSID 협약에 의거하여 국내 사법 절차를 통해 배상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내사법 절차는 투자중재재판의 결과를 재차 심사하는 별도의 절차가 아니다. 국내법상의 배상 집행절차일 뿐이다. 3인의 패널이 진행하는 국제투자중재재판은 항소도 불가능하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 무효 신청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심사하는 국제투자중재재판소와 대한민국의 사법부의 판단이 충돌할 경우에는 어느 쪽의 판단이 우선할 것인가? 즉, 국제투자중재재판소는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고 배상명령을 내렸는데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론스타에 불리한 판단을 내릴 경우,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판단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국 사법부의 판단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FTA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ISD와 사법주권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동일한 근거법을 가지고 국내의 사법부와 3인의 국제투자중재재판소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때, 국내 사법부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중재재판부의 배상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혹시,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무리한 판단에 대해 별도로 국내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이 부분에서 사법부의 법리적 고민이 시작된다.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보상 명령의 근거는 대한민국이 1966년에 가입한 ICSID 협약이다. 중재기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을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해외투자가 전무하던 사실은 차치하고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시절에 우리는 ICSID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러한 ICSID 협약은 국제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에 의해 국내법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국내법적 성격을 지닌 조약으로 인한 중재재판소의 판단이 헌법적 기준에서 국내법을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의 발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 헌법재판소. ⓒ뉴시스 |
미국 연방대법원과 메데인 사건
이 점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의미 있는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200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메데인 사건(Medellin vs. Texas)이라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1993년, 18세의 멕시코 국적의 소년 메데인이 텍사스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소년의 혐의는 입증되었고 소년은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을 언도받았다.
대부분의 사형 확정 판결이 그렇듯이 소년의 변호인은 다양한 절차상의 문제점을 들어 항소하였다. 그중 하나가, 메데인은 멕시코 국적을 가진 멕시코 시민인데 멕시코 대사관에 소년의 체포에 관해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69년 체결한 비엔나 협약에 의하면, (미국을 포함한) 협약 가입국은 자국에서 외국인의 체포나 구금 시 지체 없이 자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에 그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데, 메데인이 체포되었음에도 그러한 사실이 주미 멕시코 대사관에 고지되지 않아서 텍사스 주가 비엔나 협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소년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그런데, 몇 년 후인 2003년 멕시코 정부가 메데인과 그 외에 미국에 수감되어 있는 51명의 자국민에 대한 수감 내용을 고지하지 않음을 들어 UN 산하의 국제재판소(ICJ)에 미국을 제소하였다. 이듬해, ICJ는 멕시코의 손을 들어주고 메데인을 비롯한 다른 멕시코 확정범들에 대한 판결과 형량에 관해 미국 법원이 재고할 것을 명령하였다. 사안이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번지자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국제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따를 의무가 있으니, 사법부는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2008년 연방대법원은 국제재판소의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비록 미국이 ICJ 가입국이기는 하지만, 국회에서 ICJ의 효력에 관한 상세한 연방법을 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이것은 국제법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이다. 국제조약에 관한 미국 사법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향성 때문이다. 강대국의 오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국의 사법 체제를 보호하려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법정에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체결 당시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고 발효되었다. 그런데, 헌법 제60조 1항에 의하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2조 4000억 소송을 가능하게 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ISD 소송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음으로 인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어떠한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의 사법주권까지 무력화할 수 있는 ISD 소송을 바라보며 이제 우리의 사법적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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