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이 수 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증권선물거래소 감사 선임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선임 과정에 개입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박병원 차관은 12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증권거래소 감사에 '모피아'(구 재무부) 출신은 안 되고 가능하면 부산 사람이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인 권영준 교수와 만났고 전화로도 이를 전해 줬다"고 밝혔다.
최근 '청와대 외압설'을 비판하며 감사후보 추천위원장직을 내던진 권영준 교수(경희대)는 "재경부 고위 관계자가 △특정지역(부산) 출신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 △모피아 출신이 아닐 것 등 청와대가 제시한 세 가지 기준을 전달해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차관은 또 "내가 청와대에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김 모 씨를 추천해 줘서 권 교수에게 '이 사람을 살펴봐 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 모 씨는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386세대 운동권 출신인 공인회계사 김영환 씨를 가리킨다. 김 씨는 지난 7월 거래소 노조가 거래소 감사 자리에 '청와대 낙하산'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불거진 청와대 외압 의혹의 중심 인물로 거론돼 왔다.
박병원 차관은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김 씨를 추천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외압 행사'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박 차관은 "거래소 감사 선임에 대해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재경부가 추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외압을 행사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재경부 출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협의'는 있었다"며 "'외압'은 절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전날까지만 해도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었다. 지난 7월 24일 김영환 회계사의 감사 추천 사실이 알려지며 거래소 노조와 추천위가 극렬하게 반발했을 당시 정태호 대변인은 "거래소가 공기업도 아닌데 청와대에서 무슨 관여를 한단 말이냐"며 "이렇다 저렇다 말할 근거조차 없다"고 말했었다.
결국 "사실무근"에서 "정당한 협의를 했다"는 쪽으로 말이 바뀐 셈이다.
그러나 감사 추천의 책임을 맡았던 권 교수 당사자가 '정당한 협의'를 '압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재경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거래소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청와대와 재경부가 전달하는 말 한 마디가 권 교수 등 거래소 감사추천위원들에게는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