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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ㆍ노무현도 못한 '서민의 호민관', 이제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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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대중ㆍ노무현도 못한 '서민의 호민관', 이제 누가?

['재벌공화국을 넘어' 강연회④]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경제정책에서 시장자율과 규제완화를 외쳤던 제 세력과 집단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재벌공화국을 넘어' 네 번째 강좌를 진행한 김남근 변호사가 설명한 선진 각국의 생생한 정책 사례들을 살펴보면 무엇이 진짜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이 말이 경제적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갈 만하다.

지난 9월 18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네 번째 강연(☞바로 가기 :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 선택은?)을 김남근 변호사가 진행했다. '2012년 국회에서 추진해야 할 경제민주화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김 변호사는 선진 각국이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시장자율이 아니라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얘기할 때 그 기준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대형마트는 거의 도시 외곽에 있다. 월마트는 아직 뉴욕에 진출하지 못했고 시카고에만 1호점이 있다. LA에는 매장 규모를 5분의 1로 줄여서 진출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 대형마트가 들어설 경우 끼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은 선진 각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

서유럽은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상업지역에만, 그것도 주변상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매출영향가제 규제를 통과한 경우에만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있다"면서 "프랑스도 지역 상인들이 절반 이상의 위원을 차지하는 상업위원회가 영향평가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대형마트 규제정책에 대해 미국의 대형마트가 국제소송을 걸어 규제법을 폐지한 대신 환경영향평가제를 도입해서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소음 등의 규제에 다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허가제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교통과 지역상권에 끼치는 영향을 봤을 때 "지금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들어서는 것은 외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한국의 실정을 비판했다.

선진 각국은 FTA나 WTO 위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대형마트 규제정책의 표면적 이유로 지역상권이나 중소상인 보호 대신 도시계획과 환경, 노동권 보호 등의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의 규제에 대해 FTA나 WTO 위반 시비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보호정책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독일, 일본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처지를 고려해 공동납품, 공동판매, 공동연구개발 등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는 담합으로 처벌을 받는다. 공정위의 인가를 받는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되지만 지금까지 이 인가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다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대부분 하청구조의 형태를 취한다. 내가 '중소기업들은 1년에 한 번씩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당한다'고 토론회에서 얘기를 했더니 어떤 중소기업 사장이 항의전화를 했다.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분기별로 당한다고. 재벌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19조를 개정해 중소기업이 가격, 판매, 납품, 연구개발 등에서 단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볼보자동차와 쌍용차 정리해고의 차이

▲ 김남근 변호사. ⓒ참여연대
김 변호사는 역대 정부가 고용유연화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외쳤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EU 차원의 법정근로시간은 연장근로시간까지 포함해서 1주 48시간"이라며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인데 연장근로시간까기 포함하면 1주 52시간이고,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할 때 휴일근로는 빼는 꼼수를 부린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정리해고제도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이 선진 각국의 기준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설명했다.

"선진 각국은 기업의 해고 회피 노력이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조업단축이다. 폭스바겐은 5교대제를 실시했다. 당연히 기업이 지급하는 임금은 줄었지만 임금의 50%는 정부가 지원했다. 프랑스는 정리해고에 대비해 전직지원계획이라는 일종의 '소셜 플랜(social plan)'을 둔다. 이 계획에 대해 노동부가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계약의 일부로서 기업은 직업훈련기관과 미리 계약을 맺어 해고 시에 실질적인 직업훈련을 받도록 한다. 스웨덴 볼보자동차가 2008년 2000명의 정리해고계획을 발표했을 때와 한국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과정을 비교해보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의 격렬한 저항을 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김 변호사는 노동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정책들의 허구성을 "고용유연화는 세계의 첨단을 달렸지만 고용 안정화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라는 진단으로 요약했다.

이날 강연은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라는 순서로 진행됐다.

아래는 전체 강의의 대강이다.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정책 설명은 생략했다. 전체 강의 자료집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왜 경제민주화인가?

김영삼 문민정부가 내건 기치가 관치경제 극복이었다. 과거에는 물가가 많이 오르면 중앙정보부가 해결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면 사채동결 방식으로 해결했다. 더 이상 그런 방식이 작동하기 어려워지자 관치경제 극복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이다. 그때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가 목표였고, 세계적으로도 그런 분위기였다. 규제를 악으로 보았다.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동네상권까지 들어오고 문구, 공구, 빵집을 다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부동산 정책을 보더라도 그렇다. 분양에서 무주택자 우선이었다. 유신시대에 분양가 상한제는 '강남이든 강북이든 평당 100만 원만 받아라' 그러면 다 100만 원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시장자율이라는 모토 아래 무주택자 우선분양제와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다. 이후 7년 동안 분양가가 4배 이상 폭등했다.

과거에는 기간제, 파견제, 사내하도급 형태의 비정규직이 거의 없었다. 일본식 평생고용에 가까웠다. IMF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이런 비정규직 형태를 다 허용했다. 그랬더니 10년 동안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인구의 절반을 넘었고, 청년의 정규직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부동산 규제, 노동시장 규제, 중소상인·중소기업 보호 규제를 다 풀다보니까 결국 재벌이 독식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정부가 서민의 호민관 역할을 포기하니 시장독식으로 가버린 것이다. 20년 동안 경제를 이렇게 운용해봤는데, 이 방식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과거의 중산층과 안정 노동자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소비자들도 독과점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물가를 부담하게 됐다.

이걸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된 것이고 이것이 경제민주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과거 유신시대나 군사독재 시절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같은 정부냐, 이런 의문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정치민주화, 남북평화 이런 정책들에서는 잘했다고 보는데 서민의 호민관 역할은 못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경제 문제들의 근원을 살펴보면 대부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10% 이자율로 서민들에게 대출하던 저축은행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PF 대출 허용, 2005년(노무현 정부) 제로베이스 규제 완화가 근원이다. 은행에서 키코(KIKO) 같은 위험한 통화옵션 상품을 팔게 해준 것도 그 뿌리들은 이전 정부에 있다.

다시 그런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필요하면 시장에 개입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며 복지국가를 하자는 것이 새로운 기조이고, 이렇게 20년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 경제민주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등이 7월 17일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김덕련)

어떤 분야에서 경제민주화인가?

민주노총, 참여연대, 새사연, 중소상인 단체 등이 모인 경제민주화시민연대(준)라는 단위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3대 분야, 12대 과제로 정리했다.

첫 번째가 시장에서 경제민주화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재벌대기업의 독식에 대항해 중소기업, 중소상인, 소비자, 노동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 시장 민주화다. 두 번째는 일자리 민주화다. 노동관계에서도 재벌대기업이 우위에 서다보니까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이 남발되고, 정규직은 정리해고에 시달리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상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게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차노조가 주야 2교대제를 3교대제로 바꾸자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일자리가 1만 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비정규직의 지위를 올려서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유인을 없애는 정책도 시급하다. 세 번째는 재벌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해소하는 경제민주화다.

어떤 방식의 경제민주화인가? 상생과 동반성장에서 제도적 재벌 규제로

상생이나 동반성장이라는 용어의 배경에는 재벌을 법과 제도로는 규제할 수 없다는 시장자율, 자유시장의 철학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시민단체가 정당과 관료들에게 재벌 규제를 주장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상생이다. 문제는 재벌이 상생 같은 듣기 좋은 말만 가지고는 상생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생이라는 이념적 도그마의 전형이 사업조정제도다. 대중소기업 상생촉진법에 따라 중소기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대기업에 사업진행의 일시정지 권고를 하고, 1년 동안 조정해서 조정명령을 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사례를 보면 중소기업청장이 홈플러스에 대해 입점을 일시 정지하라는 권고를 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제재수단이 없으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상생에서 사업조정 결과라고 나온 게 뭐냐면, 서울시에서 SSM이 소주, 쓰레기봉투 따위를 팔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제재수단도 없는 이 권고를 하기 위해 1년 동안 논의를 질질 끌어왔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자율기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불러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사협정을 맺게 하는 방식이다. 이미 진출한 것은 사업이양권고를 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따르지 않더라도 제재수단이 없다보니 지난해 중소상인 적합업종 품목 지정 논의를 꺼내기만 하고 시작도 못했다. 결국 상생과 동반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재벌대기업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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