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이 곧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면서 민생을 살리는 실질적 경제민주화를 위한 길이 되기 위해서는 절차적인 공정경쟁시장을 수립하는 과제와 함께 반드시 실질적인 분배정의, 민주적 참여도 그 필수적 과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날은 물론, 현재의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하고 있는 기본 생각이다.
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병천 교수가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를 주제로 강연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두 번째 강연이었다. (☞바로 가기 :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2012년 선택은?)
이 교수는 "분배정의 및 참여경제 그리고 공정경쟁은 재벌 개혁에서 불가결한 이중과제이며, 이 실질적, 절차적 이중과제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파악하면서 개혁 운동을 전개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그간 정치권 그리고 시민운동의 재벌 개혁은 절차적인 공정경쟁 수립 문제를 중심에 둠으로써 재벌 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과제로 좁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벌이 독점-독식하는 특권적 시장경제체제에서 공정경쟁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과제"라면서, "그러나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빼놓고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민주화 시대까지 이어진 선성장 후분배 시대에 국민적 지원과 희생을 통해 오늘날 세계적 반열까지 올라선 재벌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이 기억에서 지워지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공정경쟁시장 수립이나 소액주주권 중심의 재벌 개혁 정책과 운동의 한계를 비판하고 보편적 복지국가 수립을 주장하는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장하준 교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놓는다"는 말로 장 교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점을 압축했다. 한국식 신자유주의 양극화체제에서 소수 재벌이 그 지배체제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 교수는 이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내고 복지국가를 위해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강의 주제인 재벌 개혁의 실패 원인과 관련, 분배정의와 참여경제의 문제를 밀어낸 '개혁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인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1997년 이후 민주개혁정부는 분배정의와 참여경제 확립을 자기 과제로 삼지 않았으며 공정경쟁 수립과제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비틀거렸는데도 지금 민주통합당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추진과 IMF 환란 자초, 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 재벌 개혁의 완연한 후퇴,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삼성 재벌의 밀월 등은 보수세력에 포위된 '민주 정부'의 객관적 조건과 함께, 중도 자유주의 정권 자체에 내재된 자기 한계도 동시에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들이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이 교수는 아래와 같이 봤다.
"지금은 재벌 개혁의 실패냐 성공이냐, 이런 이분법적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참 '줄푸세' 정책을 얘기하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지금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적어도 부분적인 소개혁은 이뤄질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성공이냐 실패냐보다는 재벌 개혁이 어느 정도 폭과 깊이로 될 것이냐, 이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이 워낙 민생을 파탄으로 내몰았고 나라경제를 망쳐놓아서 민심이 영 좋지 않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재벌 개혁도 조금은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부분적인 소개혁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구체제가 극복될 수 있을지, 그래서 더불어 사는 선순환 선진경제로 갈 수 있을지, 이게 문제다."
이 교수의 이번 강의는 개발독재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재벌 개혁의 실패라고 하지만 "어떤 실패인지"하는 문제로 넘어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아래는 전체 강의의 대강이다.
민주화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한 괴물" 그리고 허약한 개혁정부
▲ 이병천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
먼저, 개발독재의 유산으로서 재벌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재벌의 힘은 워낙 강고하고 강력한 반면 이에 대한 개혁의 힘은 취약한 것이 우리가 처한 엄중한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우리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을 많이 한다. 2008년 위기 이후 월가 점령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미국 월가의 금융권력이 한국 재벌의 위치와 비슷하다. 대마불사는 대자본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다. 잘못하면 책임지고 퇴출되어야 하는 것이 공정경쟁시장의 기본 원리다. 그렇지만 한국 재벌의 경우, 대마불사도 불사지만 오히려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하다"(too strong leviathan to get disciplined)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대마불사가 공정경쟁 시장의 관점에서 보는 말이라면,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하다"라는 건 민주적 규율의 시각에서 보는 말이다.
우리 재벌은 개발독재 시기 특혜금융 등 온갖 방식의 정부 특혜를 누렸고, 자기 노력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성장방식은 국민, 정부, 재벌이 일종의 '불완전 계약' 상태에서 협력하여 파이를 키우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 공동 협력의 성과를 거의 재벌이 독식했고 민주화 시대에 후분배의 약속은 깨어졌다. 따라서 지금 재벌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이익이 국민적 이익으로 연결되게, 국민적 이익 공유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하준 교수도 지적한 바지만, 그간 우리가 국민 대중의 지원과 희생으로, 피땀으로 재벌을 키웠는데 주로 외국자본이 달라붙어 그 이익을 챙겨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은 나도 공유한다. 그러나 거기까지고 다음부터는 의견이 갈린다.
재벌을 길들인다는 것은 재벌을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거듭나게 해 국민적 이익이 되도록 다시 제도적 틀을 짠다는 얘기다. 삼성재벌처럼 온갖 방법으로 국가기관이나 검찰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구워 삼도록 놔둬선 안 된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경제체제에서 재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잘못된 기업 활동에 대해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삼성이 잘되는 것이 나라경제와 민생에도 좋은 일이 되게 재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 재벌 개혁의 기본목표가 되어야 하지, 삼성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국민적으로 공유하게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기본 목표다.
그런데, 길들이기엔 너무 강고하고 강대한 재벌의 힘, 이것이 바로 개발독재의 유산이다. 박정희 체제는 마치 공룡과 같은 강력한 재벌권력과 경제력 집중 구조를 물려준 반면에, 노동계급과 민주적 시민사회의 성장은 억압하고 그 발언권을 통제했다.
재벌의 고삐를 잡아 길들이는 일, 다시 말해 재벌을 민주적으로 규율하는 일과 공정한 경쟁시장을 수립하는 것이 바로 재벌개혁의 이중 과제라 할 수 있다. 재벌의 이익이 노동자, 중소기업, 골목상권, 지역사회, 소비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도 균점되게 하고, 나아가 이해당사자들이 열린 시장경제에 참여해 활동하게 실질적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적 규율의 과제라고 한다면, 통상 언급되는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등은 공정한 경쟁질서와 관련된 과제들이다.
고삐가 풀려 마구 날뛰는 재벌의 고삐를 다시 잡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재벌의 고삐를 잡는 데는 어쩌면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더 능력을 발휘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정희 체제 아래서는 재벌에 엄청나게 특혜를 퍼줬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도 요구했다. 수출을 잘못하면 퇴출하는 식으로 성과 규율을 강제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공정거래법이 전두환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건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재벌개혁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곧 민주화 시대가 그만큼 허약했다는 뜻이다. 강력한 재벌 대 허약한 연성(軟性) 민주정부, 이것이 우리가 처한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다. 스웨덴의 경우, 강한 노동과 재벌(발렌베리 그룹)의 타협 결과, 재벌시스템의 맨 꼭대기에 공익재단이 자리 잡고, 이 공익재단이 사회적 책임과 국민적 이익 공유 활동을 하게 됐다. 미국의 경우 노동세력은 전통적으로 힘이 약하지만 반독점 경쟁질서의 전통이 가장 강한 나라다. 그래서 루즈벨트가 주도한 뉴딜 개혁으로 강력한 반독점 개혁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미국도 스웨덴과는 다르지만 공익재단이 많이 발전했다. 재벌이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회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후 미군 점령 하에서 외부의 힘으로 재벌이 해체됐다. 재벌체제가 가장 급진적으로 해체된 경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에서 대만, 싱가포르는 국가 부문이 매우 크고 한국처럼 재벌이 독식하고 국민경제를 볼모로 잡는 문제가 없다.
민주화 시대에 재벌에 의한 국가기관과 시민사회의 포섭 및 지배 문제는 여러 말 필요 없이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말한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이나 삼성 특검의 결말 등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또, 재벌은 단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이른바 '경제위기'나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를 통해 개혁 노력을 무산시킨다. 그리고 재벌은 개혁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투자 스트라이크를 벌이기도 한다. 파업은 노동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자본도 한다. '자본파업'이라고 한다. 특히 경기가 침체할 때 혹은 선거국면에서 정부는 속이 터지고 재벌은 이 상황을 적절히 잘 활용한다.
시장개혁에 내재된 딜레마 - '전환의 계곡'
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실질적 내실을 확보하지 못하고 허약한 개혁정부로서 계속 비틀거렸다는 의미로 '물탄 민주주의' 혹은 '물탄 개혁'이라는 말을 쓴다. 개혁정부는 재벌과 보수세력의 압박에 밀리고 포위되었고, 이 상황에서 재벌은 대내적 자유화(규제완화), 대외적 자유화(무분별한 개방)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김영삼 정부의 1997년 IMF 외환위기 자초, 김대중 정부 집권 말기의 재벌개혁의 완연한 후퇴, 노무현 정부와 삼성의 밀월 등이 이런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런 경과는 개혁정부가 밀려서 재벌에 발목이 잡혀 그런 부분도 있지만, 자기에 내재된 속성 때문에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고 봐야 한다. 두 가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그리고 관료 집단도 굉장히 무서운 조직이다. 한국경제를 다루고, 관리 운용하는 기본 정책 노하우를 이들이 다 장악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내각에 들어온 진보 학자들도 길들인다. 때로는 대통령의 지시조차 사보타주한다. 만약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 교수가 집권한다 해도, 아니 안철수 교수 할아버지가 집권한다 해도 이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민주개혁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사조를 수용했다. 이 부분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규제완화, 자유화, 민영화, 개방이 세계를 풍미했고 우리도 그랬다. 경제민주화라기보다 경제자유화를 추구했다. 경제자유화도 단순하지는 않은데, 여기에는 일방적인 규제 완화, 주주자본주의 추구 그리고 공정경쟁 수립 등이 뒤섞여 있었다. 1997년 이후 개혁 정부의 준거 모델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였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서민대중의 개혁 에너지를 동원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재벌개혁은 불가피하게 시장을 확대하는 개혁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저발전된 상태에서는 시장을 더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글식 경쟁(자유방임경쟁)은 물론이지만 공정경쟁이라고 해도 시장경쟁을 심화시킨다. 그리고 시장의 확장이 곧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져 살기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말하자면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가 될 줄 알았는데, 경쟁만 심화되고 살기가 고달파졌다는 걸 알게 된다. 이 과정을 민주화 이행 및 공고화론에서 흔히 전환의 계곡 또는 눈물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정부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처방이 무리한 경기부양이다. 경제의 건강성을 망치는 일인데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부동산 거품 띄우기, 금융규제완화, 신용카드 규제완화, 금리 인하 등이 그런 정책들이다. 또 이를 틈타서 재벌의 '경제 살리기'와 규제완화 공세가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절차적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된 보수성 문제도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 개혁도 절차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과정에서 당연히 힘세고 돈 많은 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시장에도, 정치적 시장에도 강자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또한 흥미로운 '민주화 역설'의 한 부분이다.
▲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실직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들이 낮이면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사회단체들이 제공하는 무료급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밤이 되면 지하철 통로에 노숙을 하고 있다(1998년 6월 22일). ⓒ연합뉴스 |
시민운동도 분배 정의와 참여경제 과제를 전면에 제기해야
시민사회 운동의 흐름은 여러 갈래지만, 크게 보면 분배정의와 민주적 참여를 중심에 두는 흐름과 공정한 시장경쟁 또는 절차적 공정성을 중심에 두는 흐름으로 분화되어 왔다. 유종일 교수는 <경제 119>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크게 공정경쟁, 참여경제, 분배정의라는 세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대개 한 가지만 거론하곤 하는데, 요점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실질적 경제민주화 과제라고 본다면, 공정경쟁은 절차적 경제민주화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경제민주화의 이 두 축을 어떻게 잘 가져가느냐,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를 통합적으로 가져가는 일을 그간 시민운동도 잘한 것 같지는 않다.
경실련 창립 이래 참여연대를 포함하여 그간 시민단체의 재벌개혁 운동은 공정경쟁 수립 문제를 중심에 두어 왔다. 최근 김상조 교수는 <종횡무진 한국경제>라는 역작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구자유주의의 결핍' 상태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후자에 초점을 두고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과제로 좁히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질문은 '재벌 개혁에서 실질적 경제민주화의 과제, 즉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는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와 단절되거나 경제민주화 자체가 공정경쟁의 수립 문제로 좁혀진 측면이 있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으로 소화가 가능하고 굳이 헌법 119조를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공정경쟁 측면만 얘기하면 재벌이 그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체제 아래 서민, 노동자, 취약 중산층 등의 희생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실이 희석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내 얘기만은 아니고, 알고 보니 안철수 교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들은 물론 자신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국가적으로 많은 자원을 몰아주고 노동자들이 희생했기 때문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재벌들은 모든 걸 제 스스로 이룬 것처럼 행동하면서 이익을 독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죠"라고 <안철수의 생각>에서 쓰고 있다. 적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참여연대의 재벌개혁운동, 경제민주화 운동은 양극화 체제를 주 타깃으로 삼지 않았고, 공정경쟁시장 수립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빈틈이 이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운동 '시즌2' 국면에서 반성적으로 점검해야 할 기본적인 문제다. 나는 최근 발족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시민연대'도 이런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데, 나의 지적은 공정경쟁 수립이 우리의 역사적 과제가 아니라는 말이 결코 아니라 어디까지나 반쪽 과제, 경쟁절차의 문제라는 의미다. 재벌 개혁에서 공정경쟁과 분배정의, 또는 절차적 경제민주화와 실질적 경제민주화는 병렬적으로 제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경제민주화 다시 말해 파이의 분배와 의사결정 참여에서 이해당사자 참여자본주의 수립과제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공정경쟁 수립 과제를 결합하는 식으로 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생고에 시달리는 서민 대중을 동원할 수가 없고 지금시기 진보 개혁세력의 최대 과제라 할 '민생연합'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15년, 한국 경제 '97년 체제' 15년의 현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 실패하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에서 볼 때, 장하준 교수의 연구는 그간 공정경쟁이나 소액주주권 중심의 재벌개혁 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짚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의미가 크다. 그러나 장 교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놓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휘두르고 있는 강대한 힘과 그 사회적 책임이 희석된다. 이렇게 해서, 한국경제 1997년 체제를 보는 대표적인 두 견해(김상조, 장하준)에서 모두 각각 다른 논리구조로 신자유주의 지배 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체제의 정점에 있는 재벌을 그 책임에서 면제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개혁정부 역시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자기 과제로 삼지 않았다. 절차적 공정경쟁질서 수립과제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비틀거리고 민심이 떠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 대해 무겁고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이유가 있겠으나, 그런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진보의 실패가 박정희를 부른다"라는 말조차 나오는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줄푸세'가 계속 유효하다면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고, 유신독재가 없었으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변하는 구체제세력에게 이 나라를 다시 맡겨서야 되겠나. 그러나 정권 장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재벌 개혁이 또 실패하지 않으려면, 진보개혁세력의 결집, 무엇보다 민생 연합의 수립과 시민사회 진지의 강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일, 넓은 의미에서 '전환의 계곡'에 대해 주도면밀한 대처 전략을 준비하는 일 등이 꼭 필요하다.
타협 운운하지만 타협은 정권을 장악하기까지는 물론 정권교체 이후에도 힘과 힘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성립될 것이다. 타협하자고 공허하게 주장만 하면 뭐하나. 재벌과 섣부른, 어설픈 타협을 말하기에 앞서 힘 있게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시민적 힘과 진지를 키우고 저변을 넓게 확대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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