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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을 극복해낸 일본경제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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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을 극복해낸 일본경제의 비법

[산업공동화, 이대로 좋은가(9)]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색

일본도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해외진출로 골치를 앓았다. 기업의 해외진출이 국내 산업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민은 '산업공동화' 논의로 이어졌다. '산업공동화'라는 것 자체가 일본 언론이 지어낸 말이다.

기업의 해외진출이 곧 산업공동화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진출 없이 산업공동화가 야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산업공동화 문제와 기업의 해외진출은 함께 논의된다.

기업의 해외진출로 허덕이던 일본경제 되살아나

일본에서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산업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1985년에서 1989년이 1차 산업공동화 기간이다. 그 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그리고 1999년에서 2001년까지 거듭해서 산업공동화가 진행됐다. 세 기간에 걸쳐 일본 기업의 해외진출이 두드러진 탓이다.

산업공동화가 진행된 시기는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던 기간과 겹친다. 불황이 오래 지속됨에 따라 과거에 일본의 고성장을 떠받쳐 주었던 연공서열제, 종신고용제, 기업별 노조 등 일본 기업의 3가지 특징은 오히려 타파의 대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이르었다.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 ⓒ 일본무역진흥회(JETRO)

그랬던 일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경제가 되살아났다. 일각에서는 이번 호황이 일본 역사상 최장기 호황인 이자나기 경기(1965년 11월부터 1970년 7월까지 57개월 간 이어진 호경기)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 일본을 떠났던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 예로 휴대용 MD플레이어 생산업체인 '캔우드'는 최근 생산기반을 말레이시아에서 일본 국내로 옮겼다. 일본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보다 인건비가 20배 비싼 일본에서 중국보다 더 싼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토바이 생산업체 스즈키는 생산라인을 재설계한 뒤 경쟁업체인 혼다의 중국 공장에비해 절반 정도의 비용으로 스쿠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일본경제가 되살아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던 기업들이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기업의 해외진출에 따른 산업공동화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해 보인다.

일본경제의 프리즘…'도요타의 노사관계'

최근 노사정위원회 제조업발전특별위원회(제조특위)는 노·사·정 대표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이들이 방문한 곳은 완성차 업체 '도요타'의 본사가 있는 나고야 시의 아이치 현이었다. 일본경제를 이끌고 있는 도요타의 노·사 관계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치 현을 방문한 노사정위 제조특위 관계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인터뷰에 응한 아이치 현의 노사 양쪽 관계자들이 예상치 못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지역 경제단체의 고위 관계자가 "노사갈등에 대한 책임의 70%는 우리 경영인들에게 있다"고 말해 노사정위 제조특위 관계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 도요타의 자동차 조립라인. ⓒ 연합뉴스

도요타 노조 관계자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리는)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수익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특히 기술개발에 얼마나 투자되는지를 중점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한다"고 말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대공장 노조, 노사갈등의 책임을 경영인들에게 더 많이 돌리는 아이치 현 경제단체…. 임금인상을 중심 쟁점으로 하는 우리의 노사 간 협상문화나 노사갈등의 책임을 노조에만 돌리는 우리의 경영인, 경제단체들의 태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에 대해 일본 방문에 참여했던 노사정위의 한 관계자는 "장기불황 끝에 노사 간 신뢰 없이는 위기의 극복이 어렵다는 인식을 노사가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노사 모두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방향'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형성했고, 그런 인식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사 간 '신뢰'와 '방향에 대한 공감'은 노동자들이 고용에 대한 불안감 없이 충실하게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했고, 기업들이 노사갈등의 부담을 덜어내고 투자와 기술개발과 혁신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이 산업공동화와 더불어 진행된 장기불황을 극복해낸 비밀의 절반쯤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성숙한 노사관계가 중요한 이유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의 노와 사가 각각 또는 공동으로 취해 온 전략이 기업경영과 노동인권의 측면에서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일본의 새로운 노사관계가 일본 기업들의 성과에 얼마만큼이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더 깊은 관찰과 분석이 요구된다.

하지만 일본의 일부 대기업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새로운 노사관계가 노와 사 모두 단기적 이익만 보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상생을 도모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이런 방향에 대해 노와 사가 공감하는 모습은 주로 갈등적 대립관계만 표출하는 우리의 노사관계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물론 노사 관계가 원만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다. 노사관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의 존재,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중앙정부의 산업정책과 지방정부의 협조와 노력도 일본경제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사가 서로 존중하지 않는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된 제품이 생산되기란 어렵다. 또한 기업과 산업, 더 나아가 나라경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설득, 이해를 바탕으로 성숙한 노사관계를 실현하는 것은 산업공동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및 나라경제 차원에서 기업의 해외진출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른 국내 산업공동화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노와 사는 물론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도, 그 해결을 위한 노력도 크게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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