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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끌어당기고, 한국서 밀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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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서 끌어당기고, 한국서 밀어내고…

[산업공동화, 이대로 좋은가 3] 가시화되는 '역수출'의 위협

"한국은 중국을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로 삼아야 한다." <메가트렌드>의 저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은 최근 한국경제 성장의 10가지 동력 중 하나로 중국을 지목하고 "한국은 중국과 유사한 문화와 중국에 대한 지리적 접근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장 정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경제가 제2의 도약을 하는 데 중국경제의 부상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산업화가 창출해 내는 수요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자본재나 부품소재 산업이 발달할 수 있고, 한중 간 국제분업 체제가 구축돼 우리나라에서 사양화된 산업을 중국이 대신 맡아주면 우리는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중국 랴오닝 성 선양 시의 시내 풍경.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은 도시의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수의 증가와 건축 붐에서 엿볼 수 있다. ⓒ 프레시안

이런 맥락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은 우리나라의 국내 생산과 고용에 플러스 효과를 가져와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는 다시 중국 투자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기도 했다. 가령 중국에 세워진 현지법인이 국내 모기업으로부터 중간재 수입을 늘린다면 바로 이런 효과가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가진 전자통신, 석유화학 등의 분야에서는 해외직접투자와 수출이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긍정론' 또는 '중국 기회론'으로 불리는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일본도 지난 1970~80년대에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한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누렸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고 지적하곤 한다.

한미 FTA로 목소리 높아지는 '중국 위협론'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유독 중국에 집중되면서 한편에서는 '중국이 우리를 위협한다'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단순 제조업은 물론이고 기술집약적인 제조업, 심지어는 고급 서비스업까지 중국이 휩쓸어 갈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에 따라 아직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수준의 기술이나 선진 서비스업 기반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주로 대기업, 경제단체,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이런 중국 위협론을 퍼뜨려 왔다. 이들은 한국의 정부와 노조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느니 임금인상을 해야 하느니 하면서 '신선놀음'을 하는 동안 중국이 산업 경쟁력을 키워 한국의 산업기반에 구멍을 뚫어 왔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정부에 대해 각종 규제의 철폐를, 노조에 대해서는 임금인상 요구의 자제를 요구해 왔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국내기업의 해외진출로 인한 산업공동화와 자본도피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입장을 지켜 왔다. 그러던 정부가 최근에는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오히려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키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제4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선진통상국가론'을 들고 나왔다. 중국경제의 무서운 추격 때문에라도 이제 우리 경제는 보다 높은 수준의 개방을 하고 이를 통해 고급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이런 태도변화를 보이게 된 계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정부는 중국에 쫓기고, 일본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이른바 넛 크래커(nut cracker, 호두까기 기계) 속의 호두 신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미국과 FTA를 체결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무서운 추격에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기회는 멀고 위협은 가깝게 느껴져

'중국 기회론'과 '중국 위협론'은 각각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기자가 중국 현지에서 취재해 본 결과, 중국이 주는 '기회'는 멀고 '위협'은 가까워 보였다. 정부와 재계가 각각 어떤 속내로 중국 위협론을 퍼뜨리는 것이든, 그들의 주장에 담겨 있는 '사실' 자체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은 실로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의 중국행이 본격화된 1995년부터 10년 간 약 5000개의 국내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했다. 2005년 말 현재 한국기업이 중국에 설립한 현지법인의 수는 2만2000개가 넘는다. 중국으로의 투자 금액도 1990년 1547만 달러에서 2005년 21억822만 달러로 130배 이상 급증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끌어당기기(pull) 요인과 밀어내기(push) 요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양질의 저렴한 중국의 노동력과 13억 인구가 떠받치는 중국 내수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대표적인 끌어당기기 요인이고, 한국 내 노동비용 및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값싼 중국산 제품의 유입은 대표적인 밀어내기 요인이다.

대기업은 시장개척형 해외진출…중소기업들은 생존형 해외진출
▲ 중국 현지 근로자들에게 '좋은 직장' 중 하나로 꼽히는 LG전자 선양법인. ⓒ 프레시안

주목해야 할 점은 국내 대기업들은 주로 중국의 끌어당기기 요인에 의해 중국에 생산기지를 '신설'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국내의 밀어내기 요인에 의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LG전자는 1996년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선양에 브라운관 TV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LG전자 선양법인은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려 몇 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회사는 결국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제3국으로의 수출로 눈을 돌렸고, 지난 2001년부터야 비로소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고 LG전자 선양법인의 정대환 부법인장은 설명했다.

나름대로 철저히 중국시장을 조사하고 중국 당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진출한 대기업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하물며 한국에서 더 이상 생산활동을 할 수 없어 중국 땅으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한 이른바 '한계기업'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기업들은 낯선 중국 땅에서 시행착오만 거듭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과거에는 섬유, 신발 등 사양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이런 경험을 했고, 최근에는 전자통신장비, 자동차부품, 가전기기 등을 취급하는 기업들로도 같은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기업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 시장조사, 열악한 자본력, 독자적인 기술의 미비 등과 같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아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게 중국에 진출한 700여 개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직접 만나 본 한국산업은행 선양지점 김명식 대표의 지적이다.

대기업을 따라 '동반진출'한 중소기업이 '동반부도' 맞기도

또 다른 중국 진출의 사례는 대기업과 동반진출한 중소기업들의 경우다. 각각 LG전자와 삼보컴퓨터를 따라 중국 선양에 진출한 한성전자와 일야전자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기업들은 함께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의 경영성과에 따라 자사의 경영성과가 좌우되는 등 동반진출한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리모콘을 비롯한 TV 부속품을 제작하는 한성전자는 LG전자 선양법인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내 왔다. 한성전자의 임철환 대표는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라면서도 "대기업인 LG전자가 중국 선양으로 해외기지를 이전하자 LG전자 의존율이 90%였던 우리 기업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보컴퓨터와 함께 중국에 '동반진출'했던 11개 중소기업들은 지난 2005년 삼보컴퓨터 선양법인이 국내 모기업의 경영악화로 부도를 내자 대부분 '동반부도'를 내야 했다.
▲ 지난 2005년에 생산활동이 전면 중단된 삼보컴퓨터 선양법인(좌), 일야전자의 작업장. 삼보컴퓨터를 따라 중국에 동반진출했던 일야전자는 일찌감치 대기업 협력업체를 다각화하는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다(우). ⓒ프레시안

삼보컴퓨터를 따라 중국에 진출했던 중소기업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형 사출물 제작업체 일야전자의 박성찬 대표는 "삼보컴퓨터 선양법인이 부도를 내기 전에 삼성전자, LG전자 등으로 대기업 협력업체를 다각화한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수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산업공동화 가속화될 것

기업규모와 해외진출의 동기에 따라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이들의 중국 진출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 고용이 감소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한 금액을 국내 투자로 전환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고용 효과는 1990년 1131명, 2000년 2만6587명, 2003년 3만8491명 등으로 해마다 증가해 왔다.

게다가 중국 진출의 확대로 인한 국내 구조조정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제조업 분야의 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연구원은 2000년 현재 기업들의 중국 진출로 인해 감소된 2만6587개의 제조업 일자리 중 1만3116개가 정규직, 4221개가 비정규직, 9250개가 자영업 등이라고 분석했다. '양질의' 일자리인 정규직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위협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중국 진출은 이미 그 시작 단계에서부터 국내 고용의 축소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하지만 중국 진출의 부작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하나둘 한국 모기업으로의 역수출, 이른바 '바이백(buy-back)'을 시작하거나 기존의 바이백 비중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LG전자 선양법인의 공장 뒷켠에는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제3국으로 보낼 브라운관 TV를 담은 컨테이너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이 컨테이너들이 언제 한국을 향하게 될지 모른다. ⓒ 프레시안

LG전자 선양법인은 올해 하반기부터 브라운관 TV를 국내로 역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브라운관 TV는 대부분 구미공단에서 생산됐다. 한성전자는 현재 5% 수준인 총 판매 중 바이백 비중을 2년 내에 15%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갖고 있고, 일야전자도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으로 바이백을 시작할 생각이다.

이런 바이백은 단순히 국내 고용을 감소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생산 물량을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산업 인프라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우려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05년에 우리 경제의 주요 성장엔진으로 꼽히는 비금속광물, 전자통신, 섬유의복, 자동차 분야 기업의 중국법인이 중국에서 올린 총 매출액 중 바이백 비중이 각각 32.7%, 27.7%, 16.1%, 1.0%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980년대 중반에서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해외진출 기업들은 현지 판매나 제3국으로의 수출에 경영활동을 집중해 많은 해외투자 옹호자들은 '해외진출이 국내 산업공동화를 불러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정착 1단계'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바이백의 역풍이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야전자의 박성찬 대표는 "과거에는 중국의 조립기술 등이 우리나라에 비해 낮아 중국산 제품을 국내로 들여보내면 성공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중국에서의 생산여건이 좋아지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한국으로의 바이백을 고려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의한 바이백이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중국으로부터의 바이백 물결이 본격적으로 밀어닥치면 산업공동화가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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