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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전 말고도 해법은 있다

[산업공동화, 이대로 좋은가(6)] 위스콘신의 '하이로드' 전략

공장이전을 포함한 기업의 해외진출은 우리나라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국가 밖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해외투자를 늘리는 일은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공장이전이나 해외진출만이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인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미국 오대호 연안에 위치한 위스콘신(Wisconsin) 주가 잘 보여준다. 이 주에서는 여러 경제주체들이 상호협력을 통해 기업의 해외진출을 줄이면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위스콘신 주가 '고위의 전략(High Road)'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해 온 기업 경쟁력 확보 및 고용 유지 전략은 높은 인건비를 탓하며 해외진출만 시도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전략과 비교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 불어닥친 제조업의 위기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주도했지만 1970년대 이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일본 등 후발 공업국들의 빠른 성장은 독주하던 미국경제에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 밀워키 북서부에 있는 할리데이비슨의 공장. 이 공장은 지역경제의 악화로 1980년대 중반에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 프레시안

하지만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고용을 특징으로 하는 '포드주의 생산방식'을 기초를 둔 미국의 경제구조는 변화하는 경제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제조업체들의 선택은 노조 조직률이 낮은 미국 남부지역이나 저임금 지역인 중남미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특히 1994년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뒤에 중남미로의 공장이전이 가속화됐고, 급기야 "미국 내 산업기반이 붕괴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산업공동화'에 대한 공포감이 미국사회를 짓누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위스콘신 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인접한 미시간 주에 위치한 제너럴모터스(GM)와 다임러크라이슬러(DC) 등 완성차 대기업들에 불황이 닥치면서 위스콘신 주에는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위스콘신 주에는 이런 완성차 제조업체들과 관계를 맺고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규모의 운송장비 업체들이 지역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78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전역의 제조업 생산성이 연평균 1.81% 상승했지만, 위스콘신 주의 경우에는 0.98%의 상승률만 보였다. 그만큼 위스콘신 주의 경제가 완성차 업체들의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얘기다.

'하이로드' - 노동자의 숙련도 향상 통해 생산성 높여

이처럼 1990년 대 초반 지역경제 위기에 직면한 위스콘신 주의 학계와 노동계가 공동대응에 나섰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부설기관인 '위스콘신 전략 센터(Center On Wisconsin Strategy, COWS)'는 1991년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경제주체들이 상호협력하는 '친노동적 경제전략 방식'을 제안했다.

'위스콘신 전략 센터'의 조엘 로저스(Joel Rogers) 소장은 '친노동적 경제전략 방식'을 '고위의 전략(High Road)'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기업경영 환경이 악화될 경우 흔히 사용되는 비정규직 고용 확대나 외주하청 확대를 '저위의 전략(Low Road)'이라고 한다면 '고위의 전략'은 노동자의 직무능력 강화와 직업훈련 강화를 특징으로 한다.

로저스 소장은 "경기후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은 중남미로 공장을 옮기거나 아니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며 "(위스콘신 주에) 남으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들에게 '고위의 전략'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협력과 기업들의 호응에 힘입어 현재까지는 우리의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여전히 공장이전을 요구하는 압력은 있기 때문에 지역경제와 기업,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성 높은 기술교육…교육 프로그램에 노조 관여 돋보여

위스콘신 주에서 시도된 '고위의 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숙련 향상을 위해 마련된 기술교육이 기업들의 요구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진 데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MATC 대학의 데이비드 터너 교수. 그는 기술교육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대학과 노동현장 사이에 긴밀한 교류와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프레시안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위스콘신 지부는 지역 내 기술전문대학인 MATC(Milwauqee Area Technical College)와 유기적인 관계를 구축해 매우 실질적인 교육체계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위스콘신 지부의 필 노이엔펠트(Phill Neuenfeldt) 씨는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의 내용은 누구보다 노동조합이 잘 파악할 수 있다"며 "필요한 교육 내용을 선별하면 MATC에서 교육강좌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협조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MATC 기술응용학부 학과장인 데이비드 터너(David B. Turner) 씨도 "현장에 필요한 요구를 파악하는 데 지역 노조의 역할이 컸다"며 "MATC의 교육강좌는 미국 내에서도 매우 현장 접합성이 높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현장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지역의 대학과 노조 간 협력이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기술교육에 공감한 기업들도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데이비슨'은 필요한 기술 분야가 무엇이고 새로 도입될 기술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노조에 충분히 설명하는 한편, 기술 재교육을 받고자 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임금의 상당부분을 보전해 주는 정책을 썼다.

노이엔펠트 씨는 이와 관련해 "MATC 대학에서 기술교육 과정을 듣고자 하는 직원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임금의 70% 이상을 보전받을 수 있다"며 "마음 놓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절반의 성공…"새로운 아이디어 계속 짜내야"

위스콘신 주의 이같은 '고위의 전략'은 공장 이전에 따른 산업공동화 현상을 고민하는 미국 내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에 참고가 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1990년대 중반 미국노총 산별회의는 위스콘신 주의 고위의 전략에 대해 "실업자와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훈련 체계와 취업지원 제도로서 성공한 모델"이라고 평가하며, 이 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도록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정작 위스콘신 모델을 만든 '위스콘신 전략 센터'는 "우리의 모델이 완전히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자평한다. 센터의 로저스 소장은 "우리의 전략은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부분적인 처방일 뿐"이라며 "현재도 위스콘신의 경제는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저스 소장은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빈곤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며 "우리의 실험은 절반의 성공만 거두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위스콘신 지역의 경제상황을 요약해 보여주는 위스콘신 전략 센터의 최신 보고서를 보면, 1990년 초반부터 낮아지던 이 지역의 실업률이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 90년도 초반부터 개선된 실업률. 90년대 말부터 다시 나빠지고 있다. ⓒ위스컨신전락센터

로저스 소장은 "단지 몇 개의 프로그램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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