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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업정책의 공동화'가 '산업공동화' 재촉

[산업공동화, 이대로 좋은가(4)] 서비스업 성장동력론은 허구

우리 기업들의 해외이전, 특히 중국으로의 진출이 가속화되는 현상의 이면에는 해외의 투자자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은 경영의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이구동성으로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중국의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최근 중국 경제관료의 봉급과 승진인사는 다른 무엇보다도 외국인투자를 얼마나 많이 유치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중국의 고위 관료들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틈만 나면 국내에서 투자유치 행사를 열거나 해외순방에 나선다. 올해 초 쑹치 선양 부시장이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8월 말에는 선양 만융구의 당서기(구청장)가 한국에서 투자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선양 정부는 지난 5월 '한국 주간' 행사를 개최해 단 1주일 만에 30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자본을 유치했다.
▲한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5월 중국 선양 정부가 개최한 '한국 주간'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프레시안

또한 중국은 자국에 많이 투자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그 나라 기업들이 생산 시스템을 통째로 옮겨올 수 있도록 별도의 공업단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선양 정부가 설립한 '독일공업단지'에는 독일계 자동차 제조업체인 BMW, 벤츠 등이 입주해 자동차부품과 완성차를 생산하고 있다. 선양 만융경제특구에 들어설 예정인 '만융한국공업단지'에는 선양 정부의 돈으로 한국기업들의 생산활동을 뒷받침할 도로, 물류센터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외국인투자, 양보다 질'…중국정부의 적극적인 관리

그러나 모든 외국인투자자들을 다 중국에서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중국정부의 규제가 느슨한 편이었지만, 중국경제의 고속성장과 더불어 중국정부가 외국인투자에 대해 적극적인 관리를 하는 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기술력과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는 양질의 외국인투자를 선별하고, 그런 외국인투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의 값싼 노동력만 노릴 뿐 중국의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전수할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한다. 게다가 중국은 그동안 세계 1위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쌓아 놓았기 때문에 '자본력'만 앞세운 외국인투자는 갈수록 그 매력을 잃고 있다.
▲ 중국 선양 정부가 올해 7월 착공한 만융한국공업단지의 조감도(왼쪽). 만융경제특구 안에 있는 '만융한국공업단지' 부지(오른쪽) ⓒ프레시안

하나은행 선양지점의 지성규 지점장은 "이제 낮은 인건비에 초점을 두는 등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자체적인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중국의 내수시장을 보고 들어오는 기업들이 성공할 것이며, 바로 이런 점을 (하나은행도) 기업여신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의 투자자들이 중국시장에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게 해주었던 각종 여건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임금이 매년 10% 이상 상승하고 있다. 지성규 지점장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을 전후해 중국의 인건비가 급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최근 4대 보험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중국 당국의 세무조사도 한층 엄격해지고 있으며, 노동과 환경 관련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 선양에 주재하는 오갑열 한국 총영사. 그는 "싼 임금만 기대하고 중국에 진출해서 성공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선양에 주재하는 오갑열 한국 총영사는 "싼 임금만 보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 특히 중국정부와의 협상 능력이 약한 영세 중소기업들은 80~90%가 중국에 진출했다가 실패했다"면서 ""이제 중국에서 과거처럼 인간관계(관시)만 믿고 기업을 경영해서는 안 된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 '준법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중국으로 진출하는 기업들은 이제 중국의 환경, 노동, 세제 관련 규제들을 준수하는 '정도(正道) 경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정도 경영을 하는 외자기업들만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중국정부가 앞장서서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기업만 골라 대접하는 중국,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이처럼 중국의 외국인투자 유치 정책이 기술이전과 환경법·노동법 준수 등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양질의 외국인투자를 집중 유치하는 쪽으로 체계화되는 것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무엇보다도 국내 한계기업들이 새롭게 활로를 모색하는 '새로운 장'으로서 중국이 갖고 있던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한국에서는 아예 생존조차 못 했을 기업들에게 마지막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해 온 측면이 있다. 국내에서 자생력을 잃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옮겨 가면서 국민경제의 부담도 덜어주고 중국에서 번 달러를 국내로 돌려보내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중국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이 양질의 외국인투자자들에게만 생산기지 이전의 유인(incentive)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 '투자의 수출', 즉 국내에서 이뤄져야 할 투자가 중국으로 빠져나가게 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기술이전과 고용창출로 중국경제를 이롭게 할 것으로 기대되는 양질의 외국인투자자들은 중국정부로부터 세제혜택, 행정편의 등 각종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선양에서 핵심 기업으로 대접받고 있는 LG전자 선양법인의 경우 현재 총 550명의 인력 중 무려 70명의 중국 현지인들이 연구개발(R&D) 부문에 투입돼 있다. 물론 LG전자의 핵심기술과 관련 R&D는 아직은 국내 모기업에서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현지화의 필요성이 커지면 R&D 투자도 중국으로 많이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국내자본 내보내며 해외자본 유치하자는 한국정부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기업들의 해외진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4월에 열린 제4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선진통상국가의 개념 정립과 추진 과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기업의 해외투자 관련 잔존 규제와 절차적 제한을 완화하는 등 국적 기업의 다국적 기업화를 지원"하고 "국내기업의 해외진출로 공동화가 우려되는 부문에 대해서는 외국기업과 전문인력의 유치 촉진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방침은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국내경제의 빈 자리는 해외자본으로 채워 넣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경제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정책방향은 '정부가 사실상 산업정책을 포기'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한 국민국가의 산업정책이란 경제의 모든 주체들이 최대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 국민경제가 골고루 살찔 수 있도록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부의 '선진통상국가'론에는 이런 개념이 아예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근 <황해문화> 2006년 가을호(통권 52호)에서 "선진통상국가론은 한국의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전전략"이라며 "제조업은 중국에 넘어갈 수밖에 없으니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된다고 하는데, 서비스 산업이 성장동력이 된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유종일 교수가 지목한 '예외적인 상황'이란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국제금융시장에서 특수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영국, 미국이나 역사적으로 중개무역이 발달한 네덜란드나 홍콩의 경우다. 유 교수는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서비스 산업의 성장동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이며 제조업 분야의 기술 발전과 생산성 증가가 핵심적인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산업정책, 있기나 한가?

중국에 진출한 지 10년이 됐다는 한 대기업의 고위급 관계자는 "한국정부와 중국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중장기 산업정책이 있느냐 없느냐다"라며 "정권이 바뀌면 정치논리에 따라 장기적인 산업정책은 물론이고 단기적인 전략마저 바뀌는 우리 정부와 달리 중국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밀고 나간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진출한 또 다른 한 중견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이전으로 발생하는 '산업'공동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권 말기마다 발생하는 '정치'공동화"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계획을 세우려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정책이 바뀔지 몰라 투자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 중국 선양 시의 원형광장. ⓒ 프레시안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똑같이 외국인투자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두 정부의 태도는 크게 대조된다. 중국정부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를 통해 양질의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고 그것이 자국 경제를 이롭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외국인투자자라면 무조건 환영하는 동시에 국내기업은 한계기업과 우량기업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도록 하는 '탈출 방임 정책'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정부는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껏 '시장개방 수위를 높여 외국인투자를 더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외국인투자의 유치는 무조건 다 좋은 것이냐는 문제도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외국인투자의 국내 유치와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국가경제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고 조정하는 '개방시대의 산업정책'을 정부가 제대로 펴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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