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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게이트'만 아니면 문제 없단 말인가?

[기자의 눈]'바다이야기' 본질은 '양극화' '문화산업정책'

대통령의 조카가 등장하고 여권 실세의 실명과 이니셜이 등장하자 야당은 신이 나서 "정권 차원의 게이트"라며 공세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지만 대통령은 검찰 중간수사 발표를 앞두고 연일 "게이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의혹은 차고 넘치지만 게이트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든 게 21일 현재 '바다이야기 괴담'의 중간결산이다. 하지만 '게이트냐 아니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IMF 이래 정부가 보여 온 천박하고 근시안적인 '문화산업정책'에 대한 논의를 빼놓고 진행되는 '게이트' 논란은 어쩌면 핵심을 비켜가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물론 '과연 누가 뒤에 있냐' '얼마의 검은 돈이 누구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느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바다이야기'를 배태한 근본 원인에 대한 정부와 우리 사회의 성찰 없이는 제2, 제3의 '바다이야기'가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정치'가 끼어들어야 종기가 터진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바다이야기' 문제는 '정치'가 끼어들어서야 비로소 곪아 터졌다. 유진룡 전 문광부 차관의 사퇴배경이 "바다이야기를 반대해서 였다더라"는 식의 '카더라'에 "대통령 조카가 관계회사에 최근까지 재직했다"는 '팩트'가 결합해서야 비로소 폭발력을 얻은 것.

마치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바다이야기의 심각성'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일부 언론이나 "이미 지난해부터 철저히 대처하고 있었다. 부끄러울 것 없다"고 주장하는 청와대나 얼굴이 두껍기로는 막상막하다.

그리고 양 쪽 다 '게이트냐 아니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할 수준은 아니고 부처에서 할 일이지만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정책적 오류 말고는 국민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없다"는 대통령의 말이 보여주듯 지금 청와대의 태도는 마치 '게이트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게이트가 아니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가?

윗층엔 불법 직업소개소, 아래층엔 바다이야기가 들어선 풍경

아마도 '바다이야기 대박'의 근본적 원인은 '사회적 양극화'가 아닌가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자면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의 노동의욕 상실' 정도가 될 터이다.

4만5000대가 팔려 우리나라 전체 인구 1000명 당 한 대 꼴로 풀렸다는 '바다이야기'의 희생자들 가운데는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서민 등 이른바 취약계층이 다수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버젓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바다이야기의 집중 분포지가 어딘지를 들여다보면 이는 쉽게 증명된다. 물론 서울에서 바다이야기를 찾기 힘든 곳이 더 드물지만 영등포, 구로, 청량리, 연신내 등 서민들이 밀집한 대도시 부심(副心) 지역이 황금어장이다.

구직자에게 직업 소개료로 임금의 최대 4%까지 수수할 수 있는 직업안정법 규정을 무시한 채 '수수료 10%'라는 불법 안내문을 떡하니 붙여놓고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 7만 원 가운데 소개비 7000원을 떼 가는 직업소개소와 한 시간에 기계 한 대가 9만 원씩 집어 삼키는 '바다이야기'가 아래 윗층을 사이좋게 나눠 쓰는 풍경은 이들 지역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이른바 된장녀 논란의 핵심 키워드인 스타벅스와 이 서민 중심의 바다이야기 밀집지역을 비교해 보면 이 사행성 게임의 계급적 성격은 더욱 명확해 진다.

하지만 자신의 재임기간에 나타난 '양극화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비공개 오찬에서 "(비정규직, 영세자영업)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그게 5년 안에 해결되는 문제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양극화 문제는 다음 정권에 가도 해결이 난망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YS정권처럼) 대통령도 모르게 달러가 바닥나거나 (DJ 정권처럼) 경기 부양하다가 다음 정권에 넘기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참여정부의 경제성적은 곧 다음 정부 2년의 경제성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양극화는 세계의 조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지표상 경기와 시스템은 잘 되고 있다'는 인식의 반복인 셈이다.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에 대한 자성이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은 찾기도, 기대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정책기조가 '도박공화국'인데 로비는 따져 뭐하나

'바다이야기'의 또 다른 모태는 IMF 이후 두 정권이 보여 온 근시안적이고 금전만능주의 방식으로 진행되어 온 '문화산업정책'이다.

'바다이야기'를 둘러싼 가장 큰 궁금증 두 가지는 '어떻게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서 중독성과 도박성이 높은 게임이 심의를 통과했느냐'는 것과 '책 사고 영화 보는 데 쓰이던 문화상품권이 어떻게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라는 국책기관을 통해 성인오락실 칩으로 낙점 받았느냐'는 것이다.

영등위는 애초 영화, 서적 등 예술작품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검열을 막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다. 이 기관의 초대 위원장도 부당한 검열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원로 영화감독이었다.

그런데 문광부는 '게임 산업을 진흥한다'는 명목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 자율에 맡긴다'는 명분으로 실질적인 심의 능력도 갖추지 못한 이 기관에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의 심의를 떠넘기고 나 몰라라 했다.

애당초 '게임산업의 진흥'을 위해 심의가 설렁설렁 진행되게 할 요량이었다면 정부의 목표는 120% 성공한 셈이다. '바다이야기 대박'이 그것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문광부는 사행성게임장에서 칩 대용으로 사용되는 경품 교환티켓을 퇴출시키고 문화상품권을 그 자리에 밀어 넣었다. 게임장에서 받은 경품을 도서구입, 영화관람 등에 쓰도록 해 게임과 문화산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나름의 '묘수'였다. 그렇다면 그것도 일단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몇 개 업체가 영등위에 로비를 했다' '상품권 발행기관이 상당히 늘어났는데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등의 의혹은 사실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규제 완화, 게임 산업 진흥이라는 정부의 '문화산업' 정책 목표가 대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년 간 발행된 문화상품권이 30조 원에 이른다지 않는가?

과천 경마장까지 직접 가지 않고도 동네에서 '배팅' 할 수 있는 장외마권발매소의 확충, 서민들한테는 어차피 그림의 떡이겠지만 카지노 규제 완화도 다 마찬가지다. 아예 정책 방향이 문화산업의 외피를 덮어 쓴 도박산업의 확충인데 그 와중에 '불법적 로비가 있었느냐' '누가 압력을 넣었느냐'는 따져 무얼 한단 말인가?

아리랑 TV 부사장 자리도 '협의'하던 청와대 아니었나?

이처럼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문화산업의 진흥이 '바다이야기' 현상의 근본적 토양이라고 기자는 생각하지만, 국회와 정부, 그리고 청와대의 시각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아예 시선의 방향이 다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와대가 보이는 시선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아리랑 TV 부사장 자리나 직원 몇십 명 규모의 영상자료원 원장 자리도 청와대와 부처가 '협의'하는 판국에 왜 '바다이야기' 문제는 청와대에서 다룰 수준이 아니었는지 모르겠거니와 '게이트만 아니면 부끄러울 것 없다'는 인식도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은 최근 수차례에 걸쳐 자식의 비리가 레임덕을 가속화시킨 전임 두 정권과 자신은 다르며 이 바다이야기 문제도 정책적 오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따져보자. IMF 외환위기에 탕진된 달러가 김현철의 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갔었나? 카드 대란으로 녹아난 수십 조 원이 홍삼트리오 호주머니로 들어갔나? 다 알고 보면 '정책적 오류' 탓이었다.

바로 이런 대목이야말로 대통령의 '인식의 오류'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런 마당에 바다이야기 현상의 근본적인 배경을 얘기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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