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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돼지 땅에 파묻고 이젠 사람 파묻을 차례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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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돼지 땅에 파묻고 이젠 사람 파묻을 차례인가 봐요"

[구제역 재앙③] '초토화'된 안동의 오늘은 전국 농촌의 내일

"무슨 말이 필요 있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할 말도 없으니 그냥 나가주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질문하는 기자를 매몰차게 내몰기만 하는 고깃집 주인이 야속했지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창 손님이 붐벼야 하는 점심시간임에도 스무 개가 넘는 테이블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안동은 45일이 지나 이젠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손님들의 발걸음은 뜸했다.

12일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한우 골목. 평소에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지만 구제역이 안동에서 발생했다는 뉴스 이후, 이곳 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사람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몇몇 가게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푯말을 내걸고 잠정 폐업을 하기도 했다.

작년 12월 28일자로 마지막 매몰을 완료한 이후 안동에서는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사실상 구제역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 지난 11월 29일 최초로 구제역일 발생한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양돈단지. 이곳은 아직까지도 출입이 통제돼 있다. 마을 주민들도 외부로 나갈 경우, 일일이 신고를 한 뒤 이동할 수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안동은 구제역 진정 국면, 하지만 인근 지역에선 여전
 
지난해 11월 29일 안동에서 발생한(문서 상으로는) 구제역이 한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다. 구제역으로 안동에 있는 소, 돼지를 포함한 17만4000두 가축 중, 83%가 매몰됐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피해가 심각하다. 김형동 안동시청 공보담당관은 "구제역 바이러스가 여름처럼 더운 날씨에 잠복해 있다 날씨가 추워지자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안동은 200두 이상 매몰한 곳이 110곳 등 총 596곳이다. 물론 이 조치로 구제역은 사실상 해소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구제역 발생 지역 출입을 통제하던 초소도 애초 72개에서 현재는 47개로 줄였다. 또한 안동시는 지난달 25일부터 살아남은 소와 돼지에게 백신 예방접종을 했다.

김형동 공보담당관은 "안동 인근의 봉화군 등에서 구제역 의심증상이 양성으로 판명됐다"며 "안동시는 이제 구제역에서 벗어났지만 반대로 다른 도시에서 구제역이 전염될 우려가 있기에 예방접종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경북 봉화군 상운면 운계1리 돼지농가에서 발생한 구제역 의심증상이 양성으로 판명됐다.

이로 인해 안동시는 봉화에서 안동으로 오는 주요 국도변을 통제하고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김형동 공보담당관은 "처음에는 봉화에서 안동 사람들이 봉화로 넘어오는 걸 막았는데, 이젠 거꾸로 됐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소, 돼지 다음으로 묻힐 게 사람이다"

이처럼 사실상 구제역이 해소됐음에도 주민들의 불만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안동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숯불갈비 집을 운영하는 김숙자(50) 씨는 "고깃집을 운영하면서 이렇게까지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했다 김 씨는 "11월에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난 뒤, 손님들의 발걸음이 아예 끊겼다"며 "12월이 제일 '피크'인데 하루 두 팀을 받은 적도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씨는 "예전에는 평일에도 자리가 없어 손님들이 기다린 뒤 고기를 드셨다"며 "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하루 4~5팀 받으면 많이 받은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 닫는 것을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조금만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버텼다"며 "이대로 구제역 파동이 몇 주간 계속된다면 답이 없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 안동 시내에서 유명한 한우 거리. 하지만 구제역 이후 이곳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프레시안(허환주)

▲ 점심시간임에도 가게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프레시안(허환주)

김 씨 옆에서 한우 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경(56) 씨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는 "구제역 발생 전이면 하루에 다 나갈 고기들이 요즘은 사흘이 지나도 나가지 않는다"며 "종업원이 세 명이나 있지만 놀다시피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박 씨는 "며칠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종업원 2명을 그만두게 했다"며 "사람들이 꼼짝을 하지 않으니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미 안동은 구제역이 사실상 다 끝난 거나 다름없는데도 여전히 언론에서는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거 때문에 안동을 찾는 발걸음도 뚝 끊겼다"고 언론을 탓했다.

한우거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숙(48) 씨는 "죽어나가는 게 소, 돼지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구제역 때문에 소, 돼지를 구덩이 파서 묻잖아요. 요즘 안동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젠 사람이 파묻힐 차례라는 이야기도 나와요. 안동이 하회마을로 유명하잖아요. 외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걸로 먹고 사는 도시인데, 구제역이 터졌으니 이곳 상권은 완전히 망가졌죠. 벌써 40일이 넘었는데도 연일 구제역 때문에 난리잖아요."

김병숙 씨는 "그나마 소, 돼지를 키우던 농가들은 현물가로 보상을 받았으니 되레 구제역이 목돈을 쥐어준 기회"라고까지 했다. 보다 세심하게 피해 보상책을 세우지 않으면 민심이 흉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씨는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돼지 농가 등에만 보상을 해주지 정작 돼지를 파는 가게에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며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몇몇 사람들 때문에 안동 시민들이 무슨 고생인가"

안동시내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박경민(67) 씨는 "작년 8월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며 "이후 한창 손님들이 물밀듯이 들어왔지만 구제역 사건 이후 발길이 뚝 끊겼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외지에서 사람이 들어와야 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이런 상황이 되니 지역 사람들의 활동도 미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씨 역시도 하루 종일 일명 '뻗치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라고 했다.

실제 지난 3일 경북 안동시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하회마을을 찾은 입장객 수는 모두 108만9139명으로 집계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에 다녀갔던 1999년의 108만9586명보다 447명이 모자란 것으로 집계됐다.

하회마을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영국 여왕 방문 특수 당시를 능가하는 분위기를 보여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 것. 안동시는 이 같은 하회마을 입장객수 신기록 불발을 연말에 터진 구제역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다른 택시 운전수 이복기(56) 씨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이 많은 안동 시민들이 무슨 고생인가"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씨는 "초기에 대처만 잘했어도 이렇게까지 구제역이 사방팔방 퍼졌겠느냐"며 "돼지농가에서 의심신고가 나왔을 때부터 과학적으로 철저히 대처했다면 지금과 같은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 씨는 초기 대응도 대응이지만 사후 대처를 놓고도 "답답하다"고 했다. 이 씨는 "정부에서는 무조건 소, 돼지를 매몰시키고 현금으로 보상을 하고 있다"며 "이후 농가를 어떻게 다시 복구시킬지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기업처럼 대규모로 소,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된 반면, 4~5마리 등 소규모로 가축을 키우던 영세 농가들은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이들이 앞으로도 농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 안동시청에서는 출입할 경우 소독을 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구제역 이어 AI,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다"

구제역은 진정됐지만 충청·호남 쪽에서 확산되고 있는 AI도 큰 문제다. 안동시 구 시장에서 안동찜닭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경자(43) 씨는 "안 그래도 구제역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도 없는 와중에, 뉴스를 보니 조류 독감까지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 씨는 가게 상황이 어려워 얼마 전 함께 일하던 종업원을 내보냈다. 이후 방학을 맞은 고등학교 2학년 딸이 가게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저녁 7시임에도 홀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박 씨는 "하도 장사가 안 되서 요즘은 찜닭 반 마리도 사람들에게 팔고 있다"며 "구제역이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조류독감이 웬 말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11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AI는 충남 천안·아산, 전북 익산, 전남 영암·나주, 경기 안성에서 고병원성(H5N1) 양성이 확인됐고, 전남 구례, 함평, 영암, 나주, 화순 등에서 신고 된 13건을 정부는 검사 중이다. 하지만 구제역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는 별다른 대처 방안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제역에 이어 조류독감까지, 초동 대응도, 사후 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로 인해 이래저래 서민들의 분노만 높아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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