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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7] 죽음에 대한 젊은 제시, '방문기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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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7] 죽음에 대한 젊은 제시, '방문기X'

[공연리뷰&프리뷰] 인생의 영원한 콘셉트는 '부패'

느닷없음이 호기심과 공포를 유발하듯 시공간이 불분명한 무대가 감각의 끝을 슬쩍 건드린다. 낡거나 버려진 것들로 채워진 무대 위에는 그곳과 닮은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기괴하며 과장돼 있고 언어와 소리, 행동은 파편화돼 있다. 이 조각들은 충돌하며 결합하기를 반복, 점차 무대의 밀도를 높여간다. 삶의 다양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무거워진 육체가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견딘다. 시간을 견디는 동안 관객은 그들을 견딘다. 이어 찰나의 죽음도 견딘다.

▲ ⓒ프레시안

'방문기X'를 선보인 강화정 연출은 2010 LIG아트홀 레지던스로 선정된 세 명의 예술인 중 하나다. LIG 아트홀 '레지던스-L'은 괄목할만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예술인 지원을 위해 2010년 출범한 프로그램이다. 이는 일회적 제작지원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뜻을 담아 새롭게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선별된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약 2년간 제작 과정 전반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운영 원칙으로 한다. 착하고 친절한 '레지던스-L'과 달리 '방문기X'는 불친절하다. 서사, 행위, 언어, 시간, 배경 모두가 혼돈이다. '정신이나 마음이 혹사시켰던 육신들의 이야기'인 만큼 상식의 궤도를 이탈한다. 정지하므로 오히려 무한해진 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단 한순간도 당황한 관객을 타이르며 조근 조근 설명하지 않는다. 그 뚝심 있는 일관성이 오히려 놀란 관객을 수긍하게 만든다.

관객은 죽음과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부패한 육체들을 목격하게 된다. 부패한 육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침대, 그러나 몸은 조용히 죽어가기를 거부한다. 강하게 발작한다. 몸부림은 낯선 행위와 언어, 표정들로 표현된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소리와 제각각인 몸들의 움직임이 가득하다. 감각은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강도로 반응한다. 상식이라 여겼던 것들이 뒤엉키며 제멋대로 배치된다.

▲ ⓒ프레시안
이 작품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태어남과 동시에 낡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정의하며 고개 들고 웃는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는 어지러운 추측이 난무할 뿐이다. 연극이 낯선 혼란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애초에 죽음이란 해석이 불가능한 것. 무대 위 혼돈은 죽음(혹은 삶의 모든 것)에 대해 차마 정의하지 못하고 구체화시키지 못했던 우리의 혼란과 일치한다. 그 모호함 속에서 관객들은 점차 단순해진다. 해석하려는 의지를 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방문기X'는 삶과 죽음에 관해 느낀 것을 적나라하게 표출시키는 솔직한 기록이다. 그 기록의 여백을 읽는 동안 관객은 자신만의 또 다른 방문기를 작성하게 된다. 관객의 언어 역시 연극의 언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출가 강화정의 신작 '방문기X'는 보여줄 뿐 강요하지 않는다. 제시할 뿐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거리낌이 없다. 쇠락의 최후에 선 몸의 기하학적 향연이 빛, 소리와 혼합하며 관객의 이성을 배반한다. 이해하려 할수록 뿔뿔이 흩어진다. 뜻대로 되지 않고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삶과 죽음을 인간의 몸으로 표현해내며 불확실한 세계를 관객과 공유한다. 일반적이나 결코 일반적일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억지 해석 없이 보여주는 '방문기X'는 신선하고 솔직하다. 그 발칙한 솔직함에서 연출의 '젊음'과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기관을 사용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을 배우 역시 관객이 명확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탐사하는데 모든 감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여정이 개운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매우 매력적인 여행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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