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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넘어선 원정투쟁의 성과와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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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넘어선 원정투쟁의 성과와 그 이유

[기자의 눈] 反한미FTA 원정시위와 미국사회

언제부턴가 미국의 진보진영이 죽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미국의 노동운동은 변혁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고 시민운동도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미국의 진보적 운동은 싹이 말랐다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건너간 '한미 FTA 반대 원정투쟁단'에 대해 미국의 진보진영이 보여준 태도는 이런 평가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원정투쟁단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원정투쟁단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한 발 더 나아가 원정투쟁단의 기대를 뛰어넘는 행동도 보여주었다.

승리혁신동맹, 뜻밖의 초청에다 기립박수까지
▲ 한미 양국 노동계 대표들이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프레시안

특히 500만 명의 조합원을 갖고 있는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 Federation)은 민주노총 대표단에게 상당한 호감을 드러냈다. 한미 양국 노동계가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난 6일 승리혁신동맹은 공동성명 발표 후 민주노총 대표단을 따로 초청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민주노총의 김태일 사무총장은 승리혁신동맹의 주요 산별연맹 대표자들 앞에서 "자본가들의 돈벌이만을 위해 시장을 개방하라는 FTA는 결국 한국과 미국 민중을 더욱 궁핍한 상태에 빠뜨릴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하자 그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김태일 사무총장은 "국제연대를 호소하러 간 우리보다 그들(승리혁신동맹)이 더 적극적으로 나와 다소 놀랐다"며 "마치 잃어버렸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미 하원의원의 적극적 태도로 공동성명 성사"
▲ 강기갑 의원이 미 하원의원들과 한미 FTA 반대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 프레시안

이와 비슷한 일은 7일에도 있었다. 이날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데니스 쿠치니치 등 일부 미 하원의원들과 함께 한미 FTA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공동 기자회견도 한 날이었다.

이 공동성명 발표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강 의원 측은 미 하원의원들이 공동성명에는 부담을 느낄 것으로 짐작하고 사전 실무협의 때 공동성명 발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강 의원은 미 하원의원들과 공동성명 발표를 할 수 있었다.

강기갑 의원은 기자에게 "공동성명 발표는 사전에 논의된 게 아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무안당할 각오로 공동성명 초안을 들고 데니스 쿠치니치 미 하원의원을 찾아갔다"며 "그런데 그는 그 초안을 읽어보고는 흔쾌히 공동성명 발표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은 이보다 더 적극적인 제안까지 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은 7월 중에 한국을 방문할 의사까지 내비쳤고, 미 하원 안에서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더 많이 조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원정투쟁단 "활동목표의 150%, 200%를 달성했다"

원정투쟁단은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에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다.

원정투쟁단이 마지막 원정시위를 벌인 10일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의 이흥세 부회장은 "원정투쟁단 규모가 애초 계획보다 많이 줄어들어 과연 우리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나 있을까 하고 염려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원정투쟁단 주제준 상황실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주 실장은 "이번 원정투쟁은 당초 기대했던 목표의 150%, 200%를 달성했다고 본다"며 "무엇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국제연대의 흐름을 분명히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물론 '환대'는 '환대'에 그칠 수도 있다. '합의'라는 것도 이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기자는 원정투쟁단을 동행취재하면서 만난 미국 내 진보진영 단체와 인사들이 보여준 '환대'의 태도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양국 진보진영의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미국은 이민자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만 100만 명의 이민자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표면적으로는 미 의회에서 논의 중인 이민법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국사회에 고착화된 양극화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기층 민중의 광범위한 불신과 분노가 도사리고 있었다.

저임금 노동자를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벌이고 있는 남가주한인노동상담연구소(KIWA)의 박영준 소장은 "미국사회에서 최하층은 이민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며 "이민자들은 너무 낮은 임금을 받고 있음에도 새로운 이민자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어 앞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중남미계 이민자 조직인 '이모칼리 노동자연합'의 프랜시스 콜테즈는 지난 4일 원정투쟁단과의 토론회에서 이민자가 미국에 몰려드는 이유를 미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서 찾았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미국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며 "하지만 미국계 초국적 기업들이 중남미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일자리를 없애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문어발식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야기한 이민자 증가 문제 외에 20여 년 남짓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 정책도 미국사회를 심각한 수준으로 이분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여론 탓이 가장 크겠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30%대까지 수직하락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 그 안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흐름

이로 인해 미국 내에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고 있고, 이것이 오랫동안 침잠해 있던 진보진영을 잠에서 깨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노동절이었던 지난 5월 1일 미국은 이민자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 연합뉴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우리의 노동운동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운동노선을 갖고 있는 승리혁신동맹의 경우, 최근 자체 예산의 75%를 이민자를 비롯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화 사업에 사용하기로 하는 등 조직된 노조 중심의 운동 관행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승리혁신동맹의 한 관계자는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와 이념적으로는 큰 차이를 갖고 있지 않지만 조직화의 대상과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컸기 때문에 지난해 미국노총산별회의와 갈라섰다"며 "미국사회는 변화에 대한 욕구가 충만해 있고 이제 노동조합도 이러한 욕구에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원정투쟁단이 일주일 간의 미국 원정시위에서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사회에 이같은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흐름은 한미 FTA에 대한 한미 양국 진보진영 간 합의와 공조를 가능하게 했다.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 그 내부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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