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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1] 어쩔 수 없는 고독의 무게,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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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1] 어쩔 수 없는 고독의 무게,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공연리뷰&프리뷰] 일본에서 살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

한여름의 조용한 휴양지를 떠오르게 하는 리조트의 발코니. 그 밖으로 펼쳐진 하늘과 살랑인 나뭇잎은 여유로운 휴식처럼 조용하고 편안하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은 예의가 바르며 친절하다. 싸우지 않는다. 서로의 영역을 무례하게 침범하지도 않는다. 평화롭다. 그리고 무료하다. 적당한 친절과 적당한 미소, 적당한 관심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저마다의 고독이 있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얹혀있던 각자의 외로움과 아픔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 ⓒ프레시안

'인인인 시리즈' 두 번째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의 히라타 오리자 작이다. 박근형 연출로 한국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말레이시아 리조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의 일상을 포착, 그대로 무대에 올려놓았다.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은퇴이민, 이지메문화, 히키코모리, 소토코모리 등 일본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그들만의 문제로 특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로 스며들게 한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곳에 있는가.

- 침묵으로 확대되는 인간의 고독

극이 진행되는 속도와 양은 실제 시간이 흐르는 만큼이다. 약 10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말레이시아 리조트 발코니에서 일어나는 100분 정도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곳에 드나드는 익숙한, 혹은 낯선 사람들의 마주침과 대화로 이뤄지는 이 연극은 너무나도 일상적이다. 대면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내용은 사소하고 평범해서 몰래 엿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그들은 과연 소통하고 있는가. 그들은 이곳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나 그렇게 됐다. 현재의 건강, 취미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술이나 골프 등 함께하기를 요구했으나 반복해서 거절당할 경우 서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내뱉은 대화는 어딘가에 부딪혀 메아리로 돌아오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들은 은퇴이민자들이다.

▲ ⓒ프레시안
은퇴이민은 은퇴 후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즐기기 위해 물가가 싼 해외로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 말레이시아로 은퇴이민 온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리조트는 모든 게 일본과 같다. 그들은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 뉴스를 보며 일본어로 대화한다. 편하다. 그러나 '어딜 가도 따라오는 일본'이 지긋지긋하다. 이들의 아이러니는 그것이다. 차분하고 청결하며 살기 좋은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데 돌아가기는 싫다. 그들은 왜 일본을 떠났는가, 왜 그곳으로 돌아가기 싫은가, 그들이 상실한 것은 무엇인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이 연극은 그들의 생활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없이 말을 건넨다. 말레이시아에서 더욱 집약되는 그들의 문제가 침묵으로 전해지며 표면적 대화로 확대된다.

- 컨트롤 되지 않는 인간의 고독

세노이족이 있다. 세노이족은 꿈을 긍정적으로 해몽하고 컨트롤 하는 기술을 전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노이족의 꿈 풀이는 일종의 관광 상품이다. 꿈은 현실의 반영, 혹은 현실 탈피다. 꿈속은 자유롭고 또 억압돼 있다. 현실을 대신하나, 그래서 허망한 것이 아니던가. 히키코모리였던 미쓰루는 말한다. 현실도 어쩌지 못하는데 꿈을 어떻게 컨트롤 하겠는가라고. 다양한 꿈은 다양하게 해석되며 다양하게 기억된다. 술을 놓지 못하는 아키라는 반복되는 기억이자 꿈, 영웅 하리마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데없이 형상화되어 갑작스레 등장하는 이 꿈(환상)은 조용하고 무료한 극의 전체 분위기와 이질적이며 과격하다. 생생하게 살아 시끄럽게 움직이는 하리마오는 평온한 일상을 사는 그들의 꿈이자 내면이다.

▲ ⓒ프레시안
극 중 인물들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미쓰루에게 묻는다. 그들은 미쓰루의 히키코모리 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심해지면 인터넷도 할 수 없게 돼버려요. 컴퓨터 스위치를 못 켜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져 잠만 자요." 또 다른 중년의 히키코모리, 아키라도 말한다. 이젠 이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고. "이런 걸 히키코모리라고 한다면서요, 일본에서는?" 소외와 고독, 외로움과 소통의 단절은 일본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 무대에서 관객과의 교감에 무리는 없다. 더욱이 노련한 중견배우들과 예민한 젊은 배우들은 세대 간의 이해도를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며 잔잔한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대단한 연출과 대단한 배우가 고독한 인간의 일상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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