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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앞에서 건져낸 '노동자 이익 균점권'
[해방일기] 1948년 7월 8일
7월 7일 제27차 국회 본회의 오전 회의에서 헌법초안의 제2독회가 끝났다. 오후 회의에서 제3독회에 들어갔지만 토론과 수정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분위기에서 진행을 다음 월요일(12일)로 미뤄놓고 휴회에 들어갔다. 26차 회의에서 103조까지의 전문 축조 토의를 완료한 헌
김기협 역사학자
2013.07.08 07:44:00
NLL 뺨치는 연백평야 미스터리를 아십니까?
[해방일기] 1948년 7월 5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직선 하나로 남북을 갈라놓았으니 38선에 걸려 온갖 곤란을 겪게 된 곳이 수없이 많은 중에도 대표적인 곳이 연백, 옹진 등 황해도 남쪽의 해안 지대였다. 조선 최대의 곡창으로 꼽히는 연백 평야의 경우 경작지 대부분이 38선
2013.07.05 06:40:00
패망의 길로 일로매진하는 장개석 정권
[해방일기] 1948년 7월 3일
이 작업 구상을 떠올린 지 3년이 되었다. 오는 8월 15일에 연재를 마치려 하니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다. 3년 전 막막하던 데 비하면 뭔가 해냈다는 만족감이 든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수없이 많지만, 공부하는 자세를 지켜왔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이다. 세밀하
2013.07.03 11:37:00
"낙원 건설은커녕 불구덩이 피하기 바빠요"
[해방일기] 1948년 7월 1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어떤 추세도 극단에 이르면 돌아서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미군정이 그때까지 조선인의 민족주의를 억누른 것이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선 사정을 잘 모르는 데서 나온 실수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민정장관에 취임하
2013.07.01 07:47:00
미국의 노골적인 횡포, 팔레스타인 사태
[해방일기] 1948년 6월 28일
지난 4월 초부터 조선의 여러 신문에 팔레스타인 관계 기사가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위임 통치가 5월 14일 자정을 기해 끝났는데, 그 뒤 상황에 대한 당사자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분쟁이 커지고만 있었던 것이다. 초기의 유엔에서 조선 문제도
2013.06.28 07:51:00
45일 만에 저항을 포기한 유엔
[해방일기] 1948년 6월 26일
로버트 올리버는 1942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의 미국 내 홍보 활동을 긴밀하게 도와준 사람이다. 미국인 '심복'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 그가 1990년 낸 이승만 관련 회고록이 <대한민국 건국의 비화 : 이승만과 한미 관계>(박일영 옮김, 계명사 펴냄)로 번역
2013.06.26 09:39:00
조병옥의 '장택상 죽이기', 그 속사정은?
[해방일기] 1948년 6월 24일
해방 후 미군정은 경찰 인원을 크게 늘렸는데, 총독부 경찰 출신이 그 중핵이 되었다. 해방 당시 조선인 경찰이 8000명가량이었는데, 그중 약 5000명이 미군정 경찰에 들어왔다 하니, 이남 지역의 총독부 경찰관은 거의 전원이 미군정 경찰로 이어진 셈이다. 같은 경찰이라도
2013.06.24 07:12:00
조선어학회의 시세폭락
[해방일기] 1948년 6월 21일
언어는 민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표상이다. 민족 언어가 없다면 민족 문화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 근세의 뚜렷한 사례로 중국에 군림했던 만주족이 있다. 만주족도 언어 보존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모든 공문서에 한어(漢語)와 함께 만주어를 쓰도록 했다. 그러
2013.06.21 10:23:00
일본이 죽인 조선 경제, 미군정이 확인 사살
[해방일기] 1948년 6월 19일
1947년 말 시점의 조선은행권 발행고는 324억여 원이었다. 두 달 전 261억여 원에 비해 약 63억 원, 25퍼센트 가까이 급증한 것인데 추곡 수매 자금 방출 때문이었다. (<경향신문> 1948년 1월 8일) 추곡 수매가 일단락된 후에는 자금 회수에 따라 서서히 발행고가 줄어
2013.06.19 06:56:00
이승만 "'대통령 책임제' 아니면 대통령 못해!"
[해방일기] 1948년 6월 17일
6월 3일 국회에서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헌위)가 30인 의원으로 구성되어 그 날로 활동을 시작했다. 헌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문위원 10인의 위촉이었는데, 그중 유진오 고려대학교 교수가 준비해 놓은 초안이 잘 준비된 것으로 인정되어 이것을 중심으로 기초위
2013.06.17 07:5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