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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건설은커녕 불구덩이 피하기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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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건설은커녕 불구덩이 피하기 바빠요"

[해방일기] 1948년 7월 1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1948년 7월 1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민정장관직 퇴임 축하드립니다. 이거, 축하드릴 일 맞죠?

안재홍 : 가시방석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축하받아야죠. 고맙습니다.

김기협 : 그 자리를 맡으실 때 선생님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민족주의자로서 선생님 경륜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미군정은 진주 이래 민족주의를 대놓고 탄압은 하지 않았더라도 은근히 억누르는 태도였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군정에 참여한 조선인은 친일 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한민당과 통하는 사람들이라서 '통역 정치'라는 더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이니 가시방석이 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 자리에 나아가셨던 뜻을 지금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안재홍 : 달이 차면 기울듯이 어떤 추세도 극단에 이르면 돌아서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미군정이 그때까지 조선인의 민족주의를 억누른 것이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선 사정을 잘 모르는 데서 나온 실수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민정장관에 취임하기 반년 전부터 미군정이 좌우 합작을 지원한 것이 그 실수를 깨달은 결과라고 나는 생각했어요. 그 도중에 10월 소요 사태가 터지자 조미공위를 열어 민족주의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미군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조선인의 민족주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각성이 있었던 것이라고 봤죠.

미군정 행정부에는 혈혈단신의 입성이었지만 김규식 박사가 입법의원 의장을 맡고 꽤 많은 민족주의자가 관선 의원으로 입법의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호응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당장은 행정부에서나 입법부에서나 소수파지만 좌우 합작과 조미공위의 정신에 따라 미군정의 민족주의자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는 과정이라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그 과정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당장의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일단 그 직을 맡기로 했던 겁니다.

김기협 : 그런데 그 판단과 기대가 어긋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으신 거죠.

안재홍 : 한 석 달 정도는 그 기대에 매달려 있었죠. 그런데 1947년 5월경이 되어, 다른 무엇보다 경찰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기대를 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46년 11월의 조미공위 때부터 인적 개혁이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했고, 인적 개혁 중 첫째가 경찰, 둘째가 중앙청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미소공위 재개 전에 경찰 개혁을 완료해 놔야 공위 진행이 순조로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첫 목표로 정했고, 공위 대표 브라운 소장도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제에는 강한 주장을 삼가면서 경찰 문제 하나에만 노력을 집중했어요. 하지 사령관 등 미군정 간부들은 대개 경찰 개혁의 필요를 인정하면서 당장 대안이 없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자는 정도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소공위 재개 전인 5월을 시한으로 설정하고 추진했는데, 막상 5월이 되어도 개혁 실현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기협 : 취임 때의 기대감이 석 달 만에 사라졌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박차고 나오지는 않으셨는데, 일에 임하는 자세는 달라졌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안재홍 : 달라지지 않을 수 없죠. 해방 조선의 상황을 그때까지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반성 전에 노력의 목적을 낙원 건설에 두었다면, 반성 후의 목적은 지옥의 불구덩이를 피하는 쪽이 되었습니다.

장관직에 있으면서 넓혀진 견문도 내 마음을 비관 쪽으로 몰고 갔습니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카이로 선언이란 것을 정작 그 선언을 만든 미국인과 소련인이 어떤 눈으로 보는 것인지 실상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느꼈습니다. 겉으로는 피압박 민족을 해방시켜 준다며 천사 시늉을 하는 그들이 조선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여러 민족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약육강식의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니구나, 민족의 장래는 민족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구나, 절감했습니다.

일본의 패망이 곧 민족의 해방이라고 생각한 것은 환상이었습니다. 오히려 일본 제국의 껍데기에 막혀있던 온갖 외부의 압력에 조선인이 노출되는 계기입니다. 물론 일본인의 한결같은 억압에서 벗어나 민족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여우 피하다가 호랑이 만난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족 자결권이 무슨 천부의 권리인 양 오만한 마음을 먹으면 그만큼 더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 하는 일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걷어찰 생각 하지 말고,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김기협 : 장관직에 계신 만큼 민간에 있을 때보다 많은 정보에 접하셨겠죠. 민간의 해외정보는 몇몇 통신사 제공 기사에 한정되어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세계 정세에 대한 선생님 관점을 한 차례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유엔의 권능에 대한 생각부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며칠 전 팔레스타인 상황을 정리해 보면서 미국의 국제 정책에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면이 많고 유엔에게 그런 면을 억제할 힘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미국의 주도하에 유엔이 관여하는 정부수립이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과 유엔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안재홍 : 유엔은 기본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만들어졌던 국제연맹과 같은 성격의 기구로 봐야겠습니다. 물론 국제연맹에 비해서는 회원국 수가 많아서 안정성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그 기능도 앞으로는 발전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강대국의 횡포를 견제할 수 없는 한계가 국제연맹과 큰 차이 없습니다.

유엔이 견제 못하는 힘이 미국과 소련이죠. 유엔이 창설 후 적극 개입한 곳이 그리스, 팔레스타인, 조선의 세 곳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유태인 국가 수립을 지원하는 소련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그리스와 조선에서는 미국이 유엔을 활용하고 소련이 이것을 보이콧하는 형세입니다. 두 나라의 갈등에 대한 조정 기능이 유엔에는 없습니다.

유엔은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경제를 미국이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란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을 가진 것이니, 미국의 경제 독점은 날이 갈수록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강력 추진한 팔레스타인 분리 독립안이 아슬아슬하게 총회를 통과한 것을 보세요. 아시아 11개국 중 필리핀 한 나라만이 거기 찬성했죠. 대미 의존도가 높은 중국조차 기권하고 9개국이 반대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약소국들이 자기 입장을 키워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신적 지도자로서 간디의 성망을 등에 업은 인도가 이 움직임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기협 : 조선은 역사를 통해 중국과 일본의 힘에 큰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비록 앞으로 식민 지배나 종속 관계를 다시 겪지 않는다 하더라도 두 나라의 존재는 거대한 인접국으로서 조선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장래 전망이 3년 전 일본 항복 당시와 크게 달라졌습니다. 조선과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선생님 전망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중국부터.

안재홍 : 중요한 점을 짚어줬습니다. 지금 당장은 미국과 소련이 조선의 운명을 좌우하는 형국이지만, 실제로는 중-일 두 나라의 진로가 조선 상황에 이미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나는 봅니다. 두 나라의 중요성은 앞으로 갈수록 더 커지겠지요.

3년 전에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중국 장악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공산당 정부의 북중국과 국민당 정부의 남중국으로 분리될 것을 많은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민당 정부의 몰락과 전 중국의 공산화를 점치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이전에 민족주의의 흐름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침략 앞에서 중국인들이 염원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장개석 정권은 전에도 항일 전쟁에 열성이 없었다는 의혹을 받아온 터에, 일본 패퇴 이후에도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립적 세력까지 공산당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공산당이 중국의 북부를 장악하든 전체를 장악하든 그 정권은 공산주의 정권 이전에 민족주의 정권이 될 것입니다. 장개석 정권의 실패는 그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임정 세력의 권위 실추로 이어져 왔는데, 중국공산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독립동맹이 한-중 간 민족주의 연대에서 부각되겠죠. 김두봉 등 독립동맹 인사들이 이북 정권에 참여했는데, 그들의 민족주의 노선이 중국공산당과의 관계를 통해 힘을 얻게 되기 바랍니다.

김기협 : 선생님은 좌우 간의 선택보다 민족주의 실현을 조선의 진로에서 더 중요한 측면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평등을 중시하는 왼쪽이냐, 자유를 강조하는 오른쪽이냐에 민족사회의 모든 장래가 걸려있는 것처럼 좌우 대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특이한 관점으로 보입니다.

안재홍 : 좌우 합작 운동을 함께 해온 분들이 모두 동의하는 관점입니다. 역사를 보세요. 열강으로 행세한 나라들이 모두 민족주의에 투철했던 나라들입니다. 인종 구성이 복잡한 미국조차도 애국심 내세우는 데 누구 뒤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민족을 초월한다는 소련까지도 실제로는 일국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소련의 국익을 추구합니다. 민족이 세워지지 않은 채로 이념을 가리는 것은 밥그릇도 받아놓지 않은 채 반찬 투정하는 격입니다.

조선인만이 아니라 모든 피압박 민족의 염원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나도 해방이 되자마자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썼던 거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민족주의 하나만 갖고 쓸 것을, 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듭니다. 민주주의라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까지 형태가 많이 있어서 제가끔 주장하는 민주주의가 서로 충돌할 수 있어요. 민족주의에 중점을 두면서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절충시키는 것이 순탄한 길이라고 봅니다.

김기협 : 일본 사정은 남조선과 같이 미군 점령 하에 있다는 사정 때문에 그 변화가 더 예민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6일 <한성일보>에 올리신 칼럼을 오늘은 살펴보고, 더 듣고 싶은 말씀은 다음 기회에 청하겠습니다.

"공일(恐日)-배일(排日)-항일(抗日)"

일본인이 조선에 건너온다. 전 일제 침략의 수뇌진의 하나인 미즈타 아무개가 왔다. 아니, 온 것을 꼭 보았다. 보았을 뿐일까? 그 사진을 찍고 그 담화도 들어보았다. 저만 온 것도 아니어서, 후지와라 아무개도 왔고, 재계의 거두이던 아무개도 왔다고 한다. 참인가, 거짓인가. 일제 40년의 침략의 압력에서 간신히 벗어나자 지금 새로운 국제적 중압 속에ㅐ 숨도 돌려 쉴 나위가 없는 판이다. 그런데다가 그 수뇌진이 또다시 연해 연방 건너온다고 하니, 악령이 되깬 듯이 물정 매우 소연한 것은 괴이치 않은 일이다. 참이라면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알고본즉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8·15 이후 조선 일은 이름 좋은 해방에 실질은 말이 못되고 있다. 남북 통일은 구두선이요, 좌우 분열-관민 대립은 갈수록 심한 편이다. 전력 사정으로 산업 경제 재건설은 암담의 골목에 몰려 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때 일본은 도국(島國)적인 배타적 통일감과 전패국민으로서의 감상적 단결심에서, 굴욕을 뛰어넘은 순종적 일로로 점령국민의 유화(宥和)와 온정에 매달리어, 하루 천추 같은 재기 부흥을 벼르고 있다. 맥아더 사령부에 준 조-일 양 민족의 준 인상은 전자 점점 악조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반면에, 후자 날로 향상 개선되는 상태이다. 조-일 양 민족 자신의, 또는 타고 있는 현상에서, 미 국책의 발동되는 부면에서, 조선은 더욱더 실망적이요 신경질적으로 됨은 개연 또 필연의 일이다. 미즈타 오고, 아리가 왔다고 하고, 아니 다나카 다케오도 온다고 하는 것은 의심암귀인가. 혹 그 사실인가. 키미지마 왔다 간 일 있고, 소수의 기술자 초빙된 일 있으므로, 조선의 불안한 민족심리에는 일인 대거 재진출의 혐의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사실 없는 것이 적확하다고 믿으려고 한다.

해방이 미완성되고 통일 독립이 요원하게 보이고, 건설이 근심스럽고 생활조차도 빈위(瀕危) 상태에 빠져가는 이때, 공일병에 걸림도 당사(當事)일 것이다.

공일은 배일로도 될 수 있다. 배일은 일본을 까닭 없이 밉다고 함이 아닌 것이니, 일의 재침략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민족적 안전 자활을 보장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이것은 어느 민족이든지 자위적인 생존권 옹호의 한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거의 천부적인 정권(正權)이다. 다만 배일은 정상한 의미의 항일로 되는 것이요, 항일은 나아가서 그 침략성의 배제에 있고, 들어와서는 민족 자신의 결합-통일-건설-발전으로써 그 생존권의 확보, 즉 독립의 체세(體勢)를 자주적 확보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항일은 경일(警日)이 아니다. 일본은 인접한 대민족이라, 그들 만일 재침략의 의도를 청산하고 국제 민주주의 노선을 정진(正進)한다면, 우리는 집정(執定)적인 경일의 의사 없는 것이다. 항일적인 그 의식은 민족 호존(互存)의 견지에서 언제든지 다시 화평을 지향하는 것이다. 조선인은 이즈음 민족 통일 독립의 대로를 정진할 것이다. 남조선만에서라도 이 노선을 확립 및 주진할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 있는 자립에서 공일적 배일은 자동적으로 지양하게 될 것이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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