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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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국민 약골' 영조, "오줌발이 약해서…"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영조의 건강학 ②
영조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치 못했다. 그는 이복형 경종 밑에서 왕세제로 있으면서 조금만 한눈팔면 목숨이 끊어질 수 있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는 궁녀들의 여종인 무수리였다. 왕의 어머니라곤 상상하기 힘든 천한 신분을 딛고 영조는 출발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원조 '국민 약골' 영조, "○○ 없인 못 살아!"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영조의 건강학 ①
영조의 장수와 건강 비결을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자기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몸의 어떤 부분에 어떤 약점이 있는지 파악해 이를 염두에 두고 과부하가 걸리진 않는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24시간 변화를 관찰하면서 신체의
정력제도 해결 못한 장희빈의 손자 욕망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경종의 건강학 ②
경종은 죽을 때까지 후사가 없었다. 이복동생 연잉군 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야사(野史)에는 폐비된 장옥정이 사약을 받기 전 아들(경종)의 고환을 잡아당겨 고자로 만들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다. 경종은 9세 때 단의왕후와 혼인했고, 그
게와 감으로 왕을 죽여? 경종 독살설의 진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경종의 건강학 ①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景宗·1688~1724, 재위 1720∼1724). 숙종과 희빈 장옥정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세자 때부터 신변, 정치와 관련해 갖은 수난을 겪은 비운의 왕이었다. 32세에 왕위에 올라 재위 4년간 병치레만 하다 생을 마감했다. 경종의 재임기는 소론과 노론이 세
조선 시대에 외과 수술? <마의> 백광현의 진실은…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현종의 건강학 ②
현종이 가장 많이 앓은 질환은 종기다. 드라마 <마의>의 백광현(1625~1697년 추정)은 현종 때 활약한 종기 치료 전문가다. 백광현은 실제로 말을 치료하는 마의(馬醫) 출신이며 현종 4년 각종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천한 신분인 마의로 출발해 현종의 종기를 치료함으
효종 이어 현종도 독살? 진실은 이렇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현종의 건강학 ①
완연한 봄, 전남 완도군 보길도엔 핏빛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또 졌다. 보길도는 효종이 죽은 후 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피터지게 싸운 두 인물의 악연이 얽힌 곳이다. 이른바 예송 논쟁의 주역인 우암 송시열(1607~1689년)과 고산 윤선도(1587~1
사라진 북벌의 꿈? 효종 독살의 진실은…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효종의 건강학 ②
<동의보감>은 소갈에 대해 "심장이 약해(心虛) 열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지 못하며, 가슴 속이 달아오르면서 답답하고 편치 않아 손발을 버둥거리는 증세(煩躁)가 나타나고, 목이 말라 물을 자주 마시고 소변이 자주 마렵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효종이 기질상 보여
중국 치겠다던 효종, 감기에 굴복하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효종의 건강학 ①
실제로 효종은 청나라를 치겠다는 일념에 스스로 철퇴나 청룡도를 익히는 등 무예 연마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무예를 연마한다고 오랜 산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효종은 즉위 초부터 매년 감기를 앓았으며 그로 인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효종의 건강을 인생 전반적으
허준에게 짜증내는 왕 "약 쓰는 게 왜 이리 경솔해!"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선조의 건강학 ②
선조를 괴롭힌 가장 무서운 질환은 귀울음 곧 이명이었다. 증상은 즉위 28년 8월부터 시작돼 평생 동안 이어졌다. <동의보감>에서 파악한 귀의 본질은 '공한(空閒)'이다. '고요함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이 텅 비어 한가함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래
퇴계의 독설 "왕이 色을 밝히니 목소리가 탁하지!"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선조의 건강학 ①
조선의 임금 중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이는 하성군(河城君) 이균, 즉 선조이다. 여러 인재를 발탁한 영명한 군주가 어떤 이유로 돌팔매질을 당하는 무능한 군주가 됐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다. 나는 선조를 공감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그의 시대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