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 연재는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책으로도 묶여, 시민과 소통하려는 한의사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관련 기사 : 정조 독살은 헛소리! 홍삼의 불편한 진실!) 이상곤 원장은 '낮은 한의학' 시즌 2에서는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출 예정입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경종입니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 태어난 경종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2세에 왕위에 올라서 4년간 병치레만 하다 떠난 잊혀진 왕 경종.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심신의 질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왕위에 오르고자 영조가 경종을 독살한 것은 사실일까요? <편집자>
후사 잇기 위한 정력제
경종은 죽을 때까지 후사가 없었다. 이복동생 연잉군 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야사(野史)에는 폐비된 장옥정이 사약을 받기 전 아들(경종)의 고환을 잡아당겨 고자로 만들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다. 경종은 9세 때 단의왕후와 혼인했고, 그녀가 죽고 나서 선의왕후와 재혼했을 뿐 단 한 명의 후궁도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었다. <승정원일기>는 경종의 후사 문제를 한의학적 처방과 연결시켜 거론한다.
경종이 21세 되던 1708년, 즉 숙종 34년 2월 10일 <승정원일기>는 임금이 소변이 자주 마렵다고 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후사를 위해 육미지황원과 팔미지황원을 처방했다고 썼다. 한의학에서는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이 양기, 즉 정력과 관계가 깊다고 본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는 것과 정력의 관계를 한의학은 이렇게 설명한다.
항온 동물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인체의 온도를 36.5도로 유지해야 한다. 방광에 고이는 소변의 주성분은 혈액이 아닌 물이다. 물의 온도는 4도에 불과하다. 소변을 배출하는 것은 몸의 노폐물을 처리하는 것 외에 방광의 온도를 체온과 같이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의학은 소변을 36.5도로 데워서 저장하는 방광을 태양의 온기와 같다고 정의해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인체에 분포되어 있는 주요 경맥 중 하나)'이라고 규정한다.
소변은 그냥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물총처럼 짜내는 것이다. 짜내는 힘이 강하면 한 번에 시원하게 소변을 볼 수 있지만 힘이 떨어지면 오히려 역류해 잔뇨감이 생긴다. 자꾸 소변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양기가 약해진 때문이라고 본다. 즉, 방광이 제 기능을 못하면 정력이 약해지고 빈뇨증이 생긴다는 것. 그러고 보면 남성들이 정력제에 목숨을 걸고, 오줌발에 신경을 쓰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난경은 방광을 포함한 신장 계통에 '생명의 정(精)을 간직하는 부위로 정신과 원기가 생겨나는 곳이며 남자는 정액을 간직하고 여자는 포(胞), 즉 자궁이 매달린 곳'이라고 정의한다. 즉, 신장 계통을 생명 활동의 근간이자, 생식 활동을 주관하는 곳으로 여긴 것이다. 보신(補身)이라는 개념과 보신(補腎)이라는 말이 혼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장에 문제가 생긴 이들을 위한 특효 처방은 무엇일까. 알려진 것 중 신장을 보하는, 즉 보신하는 가장 중요한 약물은 '육미지황환'이다. 고희(古稀)의 나이에 사흘 꼬박 노름을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게 한다는 전설의 한약이다. 옛날 어른들이 주머니에 넣고 먹던 토끼 똥같이 생긴 환약이 바로 그것이다.
육미지황환은 흔히 만성 요통, 뼈마디 통증, 성기능 쇠약, 당뇨병, 전립선 질환, 식은땀, 귀에 소리가 나는 증상 등에 좋다. 이 처방에 기재된 중심 약물은 지황인데 그 다른 이름이 '지정(地精)'이다. 이 식물이 땅의 정기를 모조리 뽑아 올린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나머지 약재인 마, 산수유도 신장을 보해 정기를 채우는 작용을 돕고, 목단피 택사 백복령은 신장의 정기가 허해서 생긴 허화(虛火)를 없앤다.
ⓒSBS |
황제의 약 '공진단' 처방
즉위년에 이르러서도 후사가 없자 특단의 대책으로 그 유명한 공진단(拱辰丹)을 처방한다. <승정원일기> 즉위년 9월 7일 어의 권성규와 이진성이 "상의 하초(下焦·배꼽 아래 부위) 맥인 척맥(尺脈)이 약하다"고 진단하자 김창집이 무시로 공진단을 복용할 것을 건의한다. 잇따라 9월 14일에도 하초의 부실함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처방으로 공진단을 추천한다. <승정원일기>는 이 모두를 '종사의 경사를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며 '선조들도 큰 효험을 봤다'는 경험담을 곁들였다.
공진단의 구성 약물은 크게 사향, 녹용, 인삼, 산수유로 대별되며, 공(拱)은 공손하게 두 손을 마주잡는다는 뜻이고 진(辰)은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천자문에도 둘째 구절에 진(辰)자가 나온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것이다. 이때 일월이 음양의 대비를 나타내듯 성신도 대비적 의미가 있다. 성이 뭇별을 나타낸다면 신은 거대한 별들의 원점인 북두칠성을 말한다. 이때는 진이 아니라 신으로 읽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따라서 공진단은 공신단으로 읽어야 옳으며, 여기서 공신은 하나의 숙어 기능을 한다. 공신의 사전적 의미는 '뭇별이 북극성을 향한다는 뜻으로 사방의 백성이 천자의 덕에 귀의하여 복종함'이다. 공신의 이런 의미는 이 처방을 만든 중국 원나라 때 명의 위역림의 뜻과도 맞아떨어진다. 공신단은 애초 일반인이 아닌 황제의 건강 증진용으로 만들어진 처방이기 때문이다.
공신단의 치료 목표는 수승화강(水升火降)이다. 말 그대로는 찬 기운은 위로 올리고 열은 아래로 내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한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면 손에 쥔 무엇인가로 머리를 가리고 뛴다. 아무것도 없으면 손으로라도 가린다. 거의 반사적으로 머리 꼭대기로 손이 가는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몸의 모든 양기(陽氣)가 모이는 백회(百會)라는 혈이 있기 때문이다. 비로 인해 백회혈에 음기가 자리 잡으면 체온이 내려가면서 감기에 걸린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고 방어를 하는 것이다.
얼굴은 신체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겨울에도 얼굴은 좀처럼 추위를 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의학에선 얼굴과 머리에 인체에서 가장 뜨거운 화가 있다고 전제한다. 반면에 하체는 차갑다. 인체에서 가장 많은 것은 혈액이고 중력이 작용해 하부에는 혈액이 충만하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액을 데우는 데 양기를 소모하다보니 하체는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뜨거운 열기는 위쪽을 향하고 차가운 한기는 다리 쪽으로 쏟아내려 불균형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를 주역에선 천지비괘(天地否卦)라고 하는데 상하가 단절돼 꽉 막힌 상태의 병리적 모습을 가리킨다. 흔히 우리가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건강 격언은 이런 원리에서 유래했다.
머리에 불타오르는 양기를 흩어버리고 아래로 내려주는 데는 사향이 가장 좋은 약재다. 사향노루의 사향선을 건조시켜 얻은 분비물이 바로 사향인데, 그 향기를 서양에선 무스크의 향기이라고 한다.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카를 폰 린네의 분류에 의하면 무스크의 향기는 신의 향기다. 서양의 고대 신전은 대개 무스크 향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장엄하고 고혹적인 신전의 분위기는 무스크 향으로 인해 비밀스러움을 더한다. 사향의 생태학적 특징은 실제로 신전 수도자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향노루는 늘 혼자 다닌다. 교미를 위해 1년에 한 번 정도 암수가 만나는 것 외에는 고독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긴다. 그가 걷는 길은 늘 험한 길이다. 히말라야의 척박한 땅과 바윗길로만 다닌다. 더욱이 수척하고 깡마른 모습이다. 봄이 되면 사향은 가장 소중한 사향주머니를 스스로 버린다. 자신의 발톱으로 주머니를 떼어 낸 후 대소변으로 덮어버리고 떠난다.
사향의 효능도 마치 맑고 강인한 수도자의 정신과 비슷하다. 흉한 사기(邪氣)와 귀신 기운, 악기(惡氣)로 인해 생긴 각종 증상을 사라지게 하고 간질을 치료한다고 전해진다. 사향의 품질엔 여러 등급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향노루가 스스로 적출한 사향이 1등급이며 극히 구하기 힘든 것이다. 2등급은 포획해 도살, 채취한 것이고 3등급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사향노루의 피가 심장에서 비장으로 흘러들어간 하품이다.
초강력 정력제 사향과 녹용
사향의 남성 호르몬 생성을 돕는 작용 때문에 그런지 사향 이야기에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일화가 늘 회자된다.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홀린 이유가 그녀가 허리에 찬 사향주머니 때문이었다는 설이다. 양귀비 사후 그녀의 무덤 주변엔 황제의 후궁들이 보낸 도적들이 득실득실했다고 한다. 행여나 양귀비가 차고 다닌 사향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보낸 것이다.
<본초강목>은 이렇게 기록했다.
"수사향노루는 기이하다. 사향주머니가 모두 물로 돼 있는데 그 향이 좀처럼 소실되지 않는다. 당나라 때 궁중에 헌상된 후 길러져 사향을 채취한 적이 있었으며 그 이후로는 기록에 없다."
<승정원일기>에서 김창집은 경종에게 공진단을 추천하면서 그 원료가 되는 조선 녹용의 채취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녹용의 핵심은 그 피에 있다. 중국 녹용은 피를 품은 채로 말려 붉은 가지 색깔이 나는데, 조선은 피를 빼고 말리는 탓에 녹용의 색깔이 백색이고 효험도 없다."
동서고금을 통해 녹용의 보양과 정력강화 효과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는 한의사는 별로 없다. 이는 사슴의 생태와 관련이 깊다. 중국 진나라 때의 학자인 갈홍(283~343년)이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 서적 <포박자(抱朴子)>에는 "종남산에 사슴이 많은데 늘 한 마리의 수컷이 백수십의 암컷과 교미한다"라고 쓰여 있다.
<본초강목>도 "사슴은 성질이 매우 음탕하다"고 지적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사슴의 생태를 아래처럼 보고하고 약효에 힘을 싣는다. 여기서 '독맥'이란 해부학적으로 머리뼈와 척추, 남자의 성기를 연결하는 맥을 가리킨다.
"사향노루는 먹을 때는 서로 부르며, 행보할 때는 동행하고, 모여 있을 때는 뿔을 외부로 향해 둥근 진을 쳐서 적의 공격을 방어하며, 누울 때는 입을 꼬리 쪽으로 향하여 독맥(督脈)을 통한다."
사슴의 뿔을 관찰하면 녹용의 강장 효과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세상의 수많은 동물 중에서 뿔 속에 피가 흐르는 것은 녹용밖에 없다. 뿔의 외피는 머리뼈의 연장으로 차갑고, 그 안에 든 피는 따뜻하다. 차가운 뼈를 뜨거운 피가 밀고 올라가 튀어나온 형국으로 내부에 있는 양적인 힘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녹용은 뼈의 생명력과 조혈 기능, 양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그 어떤 약재보다 탁월하다. 해면체인 남성의 성기에 혈액을 용솟음시키게 함으로써 양도를 흥하게 하며 골다공증, 소아의 성장 부진, 허리 통증에 유효하다. 모두 녹용이 가진 양적인 기, 즉 에너지의 힘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