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2시 58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햇살의 길인들 왜 못 가랴
강제윤의 '섬을 걷다' <24ㆍ끝> 생일도
경모재 앞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이곳에 또 올 수 있을까. 우리가 생의 어느 순간인들 다시 돌아 갈 수 있겠는가. 배를 타고, 걷고, 숨 쉬는 지금이 늘 생애의 마지막 순간임을 잊지 않는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대면하는 존재들, 어느 하나 소중 하지 않은 것이
강제윤 시인
한산도에서 난중일기를 읽다
강제윤의 '섬을 걷다' <23> 한산도
조선은 멸망했고 조선 수군의 본영도 폐지 된 지 오래지만 이순신 장군의 수군 사령부 제승당만은 여전히 한산도에 건재하다. 한때 제승당은 성지였다. 제승당을 성역화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선을 점령한 일본군 장교 출신 대통령이었다.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전복시킨 독
추봉도, 포로수용소의 기억
강제윤의 '섬을 걷다' <22> 추봉도
추봉도의 예곡, 추원 마을은 한국 전쟁 때 유엔군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1952년 5월부터 포로수용소가 설치돼 1만 명의 공산 포로가 수용됐다. 그 흔적이 지금껏 남아 있다. 추봉도의 곡룡포에서 거제도는 코앞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 중 일부가 추봉
칠흑의 어둠, 밤이 깊어가는가 새벽이 밝아오는가
강제윤의 '섬을 걷다' <21> 어청도, 연도 <하>
어청도(於靑島) 등대를 돌아보고 서방산 능선을 오른다. 어청도의 주봉인 서방산(198m) 정상에 봉수대가 있다. 원추형의 2층 석축. 봉수대는 고려 의종 3년(1148년)에 처음 축조돼 왜구들의 침략을 감시했다. 봉화는 인근의 외연도, 녹도, 원산도 봉수대를 경유해 보령까지
어청도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강제윤의 '섬을 걷다' <20> 어청도, 연도 <상>
오전 9시, 외연 페리가 군산항을 출항한다. 이 항로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뉴어청도 페리는 정기 점검에 들어가고 예비선인 외연 페리가 대신 다닌다. 두 시간 반의 운항시간이 다시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뱃길은 멀고 날은 흐리다. 저 망망한 바다 위로 또 얼마나 많은 생
"처녀들은 가서 박정희 수발해 주고"
강제윤의 '섬을 걷다' <19> 비진도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생명의 안위를 국민들 스스로 지켜야 하는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병든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을 자유도 없는 자유 무역국가. 어린 중학생들까지 스스로 나서서 생명의 '안보'을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
추자도,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강제윤의 '섬을 걷다' <18> 추자도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바다는 우리 모두의 기에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은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물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천상의 정보까지 운반하기 때문이다." (찰리 라이리 '물의 치유력') 물속으로 이어진 땅 끝, 제주의
가파도, 바람의 통로
강제윤의 '섬을 걷다' <17> 가파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늘 위험한 물건은 아니다. 자동차가 속도를 다스리지 못하고 속도에 지배 될 때 자동차는 흉기가 된다. 가파도에서는 가속이 붙기도 전에 길이 끝난다. 과속할 수 없는 자동차는 전적으로 섬의 지배 하에서 움직인다. 섬의 길은 시작이 없고 끝이 없
마라도, 생사불이(生死不二)의 법당
강제윤의 '섬을 걷다' <16> 마라도
사람들이 살기 전 마라도는 원시림으로 덮인 울창한 숲이었다. 금(禁)섬이 풀리고 마라도에 사람들이 다시 이주해 살기 시작한 것은 1883년 무렵이었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살길을 찾아 탄원을 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처음 섬에 들어온 도박꾼과 일행이 몇 뙈
거문도 인어(人魚) 이야기
강제윤의 '섬을 걷다' <15> 거문도 (하)
신지끼는 주로 달 밝은 밤이나 새벽에 나타났다고 한다. 하얀 살결의 길고 검은 생머리 인어 신지끼가 절벽에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내면 어김없이 큰 풍랑이 몰려 왔다. 처음에 사람들은 신지끼의 저주로 풍랑이 오는 것이라 여겨 신지끼를 기피하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