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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39년, '단협해지'가 유행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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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39년, '단협해지'가 유행처럼 번진다

발전·가스 이어 철도공사 '단협해지' 통보…노조 "공사가 파업 유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던 전태일의 외침으로부터 39년,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한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22년. 2009년 대한민국 노사갈등의 핵심이 다시 '단체협약'이 되고 있다. 20년 넘게 각 기업의 노사가 자율적으로 만들어 지켜 온 단체협약이 잇따라 해지되는 것은 정부의 개입 여지가 높은 공기업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신종 '노동 탄압' 수단이다.

이미 한국노동연구원(원장 박기성)이 포문을 열었고, 11월 들어 5개 발전사와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노조에 단협해지를 통보했다. 이어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가늠자라 할 수 있는 철도공사에서도 25일 단협 해지가 통보됐다.

철도노조는 26일부터 무기한 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기관 노조들이 만든 '공동투쟁본부'도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점검 워크숍'이 열리는 28일 대규모 집회 등을 예고하고 있다.

허준영 사장 "이대로 가면 노조, 공사, 국민이 모두 '루저'가 된다"

▲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25일 "지금까지의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를 바로 잡고 철도공사와 노조, 국민이 모두 윈윈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대로 가면 노조와 공사, 국민이 모두 '루저'가 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노조에 단협해지를 통보한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25일 "지금까지의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를 바로 잡고 철도공사와 노조, 국민이 모두 윈윈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허 사장은 "이대로 가면 노조와 공사, 국민이 모두 '루저'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허준영 사장은 "철도노조는 전임자가 61명으로 정부 기준인 20명의 3배를 초과하고 있다"며 "노조 전임자 임금으로 매년 30억 원을 공사로부터 받아가고 있는 불합리한 행태를 납득할 수 있냐"고 주장했다.

현재의 단체협약이 지나치게 노조의 편의를 보장하고 있어 문제라는 얘기다. 철도공사에 앞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다른 공공기관도 비슷한 이유를 들었다. 한국가스공사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노조가 단체협상과 파업을 이용해 왔다"는 명분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당연히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단체협약은 수십 년 간 철도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온 소중한 성과"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최근 120여 개 항목의 개악안을 제출해 하루 아침에 단체협약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부 수정은 필요하지만 전체 조항을 개악하려는 것은 그동안의 노사관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노조 뿐 아니라 사 측이 동의해 만들어져 온 단체협약을 하루 아침에 다 바꾸자는 것은 협상의 한쪽 파트너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허 사장은 "그동안 경영진이 유화적이었다"며 "단체협약에 임했던 과거 경영진에도 책임이 있다"고 과거 사장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노조 "집중 교섭 기간 중 단협해지? 공사는 처음부터 대화로 풀 생각 없었다"

▲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은 "지난 20일부터 노사가 집중 실무교섭을 벌이는 가운데 단협을 해지하는 것은 파업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뉴시스
철도노조는 사 측이 처음부터 단체협약 해지를 목표로 협상에 임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협상을 통해 결론을 낼 생각이 없었던 것은 공사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파업 유도"라는 주장이다.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은 "지난 20일부터 노사가 집중 실무교섭을 벌이는 가운데 단협을 해지하는 것은 파업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근거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전직원 연봉제 도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던 공사가 지난 9월 30일 뒤늦게 전직원 연봉제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허준영 사장이 취임한 이후 사장이 참석하는 본교섭을 열기가 어려웠던 것도 마찬가지다. 허준영 사장은 "취임 이후 77차례에 걸쳐 교섭에 나섰다"고 설명했지만 철도노조는 "실질적 결정의 힘이 있는 본교섭은 허 사장 취임 후 단 4차례 밖에 열리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 사장이 취임한 이후 해고와 징계, 고소고발 등을 당한 조합원이 512명에 달한다는 것도 논란 거리다. 고소고발의 이유 중에는 사장 취임 반대 기자회견 참석 등도 있었다. 철도노조는 "대화와 소통보다는 징계와 고소에만 의존하는 공사의 행위는 노사 신뢰만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당장 26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 김기태 위원장은 "국민 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허준영 사장은 노동조합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고 파업의 이유를 설명했다.

철도노조는 전국 5개 지역별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한 뒤 26일 오전 4시부터 필수유지인력을 제외한 1만6000여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앞서 철도노조는 지난 9월 기관사 파업, 지난 5~6일 비수도권과 수도권이 돌아가며 참여하는 순환 파업을 벌인 바 있다.

"공공부문 잇단 단협해지, 손배 가압류 이상의 노조 탄압 방법"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철도공사가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함에 따라 6개월 뒤에는 철도 노사의 단체협약은 사라진다. 허준영 사장은 "백지 상태에서 모두가 윈윈하는 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단협해지 통보들이 개별 노사관계 차원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는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갈등의 봉합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노동연구원, 해양수산개발원 등 많은 곳에서 단체협약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공공부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노동부는 지난 4월 산하 공공기관 등의 단체협약을 분석해 점수를 매겨 노골적으로 공공기관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 같은 단협해지 통보는 물론 '합법'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노사 모두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던 단체협약을 한 쪽에서 부정하는 것이 극단적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벌어지는 단체협약 해지가 모두 사용자 측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단체협약이 사라지면 당연히 노동조합의 기능도 무의미해지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유병홍 객원연구위원은 "몇 년 전 유행처럼 번졌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통한 노조탄압 이상으로 (단협 해지가)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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