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율도 높다. 14일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노동조합(위원장 황덕순)에 가입한 사람은 전체 가입대상 29명 가운데 20명, 69%에 달한다. 연구원 박사 사이에 일종의 '공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황덕순 선임연구위원은 14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노조 설립은 가장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만들어진 준비위의 최대 목표가 노조 설립을 하지 않는 것이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고의 노동문제 전문가인 이들이 두 달 동안 '노동조합 아닌 해결책'을 찾아왔지만 끝내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노조 설립, 가장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길이었다"…그런데 왜?
황덕순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노동연구원을 국민의 연구기관이라는 자기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노조 설립의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의 상황과 관련해 황덕순 위원장은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유화"라는 표현을 썼다. 박기성 원장의 연구원 운영 방식을 놓고 한 얘기였다. 그는 이런 박 원장의 독단적 운영 탓에 "글로벌 경제 위기와 일자리 위기 상황에서 한국노동연구원이 공공연구기관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사유화' 주장의 근거는 소통 없는 일방 경영과 연구 자율성 침해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박 원장이) 자신의 편향된 입장을 연구자에게 강요하고 연구 수행과 평가에 부당하게 개입하려다 연구자의 반발을 초래했으며, 특정한 정치적 의견 그룹의 도발적인 정책들을 마치 한국노동연구원의 결과물인 것처럼 포장하다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원장이 연구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는 끝이 없었다.
"연구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 온 기초연구 주제를 놓고 연구원장이 이 논문을 참조해라, 이 방향으로 써라 등의 지시를 했다. 특정 주제를 놓고는 이런 경향을 가진 연구자를 넣어라 지시했다가 연구 책임자가 거부하니, 아예 책임자를 교체했다."
박 원장의 '소신'과 다른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것도 규제했다. 황 위원장은 "외부 토론회 참여, 언론 기고, 언론 인터뷰도 못 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연구위원은 비정규직법 관련 연구 결과를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모두 "원장과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연구위원들도 전혀 모르는 연구 결과가 청와대에 보고된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조 부위원장인 조성재 연구위원은 "박 원장은 자기 의견이 곧 연구원의 의견이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며 "정상적인 상태로 볼 수 없는 상황이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 정부 산하 공공연구기관에서 최초로 박사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것도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한국노동연구원이다. ⓒ뉴시스 |
"박 원장이 온 뒤 20년 역사의 공식·비공식의 모든 대화 채널 사라졌다"
박 원장이 온 뒤 개별 연구자에 대한 개입은 심해지는데 반해 소통의 길은 모두 막혔다.
황덕순 위원장은 "박 원장이 온 뒤 공식·비공식의 모든 대화 채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이어져 온 연구위원협의회도, 한 달에 2~4회 열리는 전체 연구위원회의도 사라졌다. "규정에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연구위원들은 "전통적인 소통의 도구였다"고 반박했다.
비공식적인 대화는 당연히 사라졌다. 황 위원장은 "과거에는 언제든지 원장실 문을 두드리고 얘기할 수 있었지만, 박 원장이 온 뒤에는 부속실조차 '언제 원장이 시간이 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며 "한 달 전에 면담 요청을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기성 원장도 이날 오후 연 기자 간담회에서 "연구위원협의회도, 연구위원회의도 모두 규정에 없는 것"이라며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연구위원들이 노조를 만든 것은 규정을 따지는 박 원장에 맞선 법적 대화 채널 마련인 셈이다.
박기성 "정부 정책 결정되면 적극적 반대 입장 피력은 곤란하다"
이런 주장을 놓고 박기성 원장은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지난 20년 동안 조직이 지나치게 수평적으로 운영돼 문제였다"는 것이다.
연구 자율성 침해 논란에 대해서도 박 원장은 "원장이 참고문헌을 소개하고 방향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대체 뭐가 자율성 침해인지 정말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자신의 소신인 '메뉴론'을 소개하며 "내가 연구위원의 생각을 바꿀 순 없지만 연구위원의 연구는 메뉴고 세일즈는 경영진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대응을 해야 한다"며 "정부 입맛에 맞춰야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정부 정책을 다루는 기관이니 정부와 같이 가는 면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한 정부 정책이 결정된 뒤에 (공공연구기관 연구자가)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언론 기고, 인터뷰, 외부 토론회 참여 등에 대한 과도한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원장은 부인하지 않았다. 박 원장은 "대외 활동은 규정상 원장과 사전에 협의하게 돼 있다"며 "규정에 있는 것이고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위원노조에 70%가 참여한 것을 놓고 박 원장은 "다수가 정의는 아니"라고 했고, 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주장했다.
노조 "내부 문제에 주력…공공부문 노사관계 파탄의 첫 주자가 박기성"
연구위원노조는 "연구원 내부 문제 해결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립신고필증이 나오는대로 연구원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단체교섭 요구안은 연구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보장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노동문제 연구자들의 노조 설립을 바라보는 세간의 우려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황덕순 위원장은 "노조 활동과 별도로 대외적 활동은 노·사·정 사이의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조 설립이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대한 맞대응이냐'는 질문에도 이들은 선을 그었다.
조성재 부위원장은 "지금 연구원의 노사 관계는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파탄적"이라며 "박 원장은 정부 정책을 넘어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공공부문 노사 관계가 전체적으로 파행으로 치닫는다면 박 원장이 그에 일조한 것으로 봐야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사 관계 파탄', 박기성은 누구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박 원장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시국 선언'에 참여했다. 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를 비난하는 '이명박 지지 100인 교수 성명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이다. 박 원장은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다. 원장으로 온 뒤 대표적인 노동 이슈에 대한 발언은 모두 극단적 노동 유연화의 방향을 담고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 기간 제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 삭감이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 "퇴직금을 없애야 한다" 등의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일찌감치 박 원장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해 왔다. 부임한 지 불과 2달 만인 지난해 10월에는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비정규직법 관련 주제 발표가 예정돼 있었으나, 이를 사전에 안 한국노총이 항의 방문을 하고 '퇴진' 성명을 내면서 발표조차 하지 못했었다. 노동자에 유리한 각종 제도에 대한 박 원장의 일종의 '혐오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 원장은 현행 노동조합법의 단체협약 규정과 관련해 "단체협상이 결렬되면 기존의 단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돼 있어 노조 입장에서는 계속 상향되는 것"이라며 "단협을 해지한 뒤 하는 교섭이 노사가 동등한 입장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기본적인 힘의 불균형에 따른 법적 보정 장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단협 해지에 대한 일부의 문제제기에 대해 박 원장은 심지어 "대량실업과 같은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동연구원 노조를 잡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각종 규제에 대해 비판적인 박 원장이 연구원의 위계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모순적이다. 박 원장은 "처음 와 보니 노동연구원은 (지나치게 수평적이어서) 조직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이날도 박 원장은 미처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기 일쑤였다. 기존에 존재하던 공공연구노조 노동연구원지부가 20년 만에 파업에 들어가고 최초로 '박사노조'가 만들어진 일련의 사태는 이런 박 원장의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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