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대신 일자리를 나눠 함께 살자며 77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간부 22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16일, 평택역에서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으로 가기 위해 잡아 탄 택시 기사는 쌍용차 얘기에 "그래도 잘 끝나서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정작 평택지원 앞에서 만난 '전직 쌍용차 사람들'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8월 6일 노사 합의로 종결돼, 지난 13일 사태 종결 100일을 맞은 평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끝났지만, 끝나지 못한 그들의 잊혀진 겨울은 서러움에 더 춥다.
"교도관 등에 업혀 나온 구속된 남편…끝났지만 잠 못 이루던 날들"
2600명의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벌어진 극단적 노사갈등은 어제의 동료들을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놓았다. 파업이 끝난 뒤 이런 갈라짐은 더 촘촘해졌다. '산 자'였으나 파업에 참여했다 징계 해고돼 '죽은 자'가 된 사람, '죽은 자'였다가 노사 합의에 따른 무급휴직자에 포함된 아직 완전히 죽지 못한 사람, 그리고 살았든 죽었든 파업 이후 구속돼 다시 답답한 감옥 안에 갇힌 이들.
누구의 고통이 더하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70명에 달하는 구속자는 쌍용차 사태의 최대 피해자다. 처음 공장에 들어갔던 5월 이후 6개월이 넘도록 가족의 얼굴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다. 감옥 안의 사람이나 감옥 밖의 사람이나 끔찍했던 기억에 덧입혀진 오늘의 생활고로 잠 못 드는 나날이 이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갇힌 이들에게는 막노동이나마 가족의 생계에 보탤 자유로운 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 8월 6일 노사 합의로 종결돼, 지난 13일로 사태 종결 100일을 맞은 평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끝났지만, 끝나지 못한 그들의 잊혀진 겨울은 서러움에 더 춥다.ⓒ프레시안 |
가족들은 더하다. 남편들이 안에 있을 때는 "행여 다치진 않을까, 물이 안 나온다는데 탈진하면 어쩌나, 설마 공장 안에 불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때로 화가 날 정도로 마음 졸여야했던" 아내들은 오늘도 제대로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춥지는 않은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입사 15년 만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해고된 남편을 감옥 안에 둔 설경애 씨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남편 면회를 갔다가 교도관의 등에 업혀 나오는 남편을 봤다. 다리를 쓰지 못해 제 발로 면회실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남편을 보는 것은, 남편이 검거되던 8월 5일 무자비했던 경찰의 진압 작전을 하염없이 바라봐야만 하는 것보다 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노사합의 하루 전날 벌어진 가장 잔인했던 진압 작전으로 설 씨의 남편은 검거 당시 가슴과 등에 모두 3발의 고무총을 맞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검거 4시간 만에 숨을 쉬지 못하는 '과호흡증'을 보여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됐다.
과호흡증은 스트레스나 정신적 충격에 의해 가슴이 답답해지고 답답함을 없애려고 빠른 숨을 계속 쉬지만 오히려 더 답답해져 호흡곤란에 이르게 되는 증상이다. 한 마디로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 대표적인 질병인 셈이다.
사흘 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설 씨의 남편은 끝내 검거 보름만인 8월 19일 구속됐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 안에 갇혀진 몸에 새겨진 마음의 병이 쉽게 낫지 못하고 어느날 이유를 알 수 없는 다리의 통증으로 찾아온 것이다.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노동자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아픈 사람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검찰도, 대통령도 사람이잖아요. 내가 아직 검찰이나 대통령 같은 급의 사람이 아니어서 이해가 안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정말 답답합니다."
설 씨는 한동안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설 씨의 남편은 노조 간부도 아니었다.
"고용 촉진 지구로 20% 재취업? 내 주변엔 한 명도 없다"
김지연 씨(가명, 45)의 남편도 그저 평범한 조합원이었다. 지옥 같던 공장에서 남편이 나올 날만을 기다렸는데 77일 만에 나온 남편은 "불법 행위가 가담한 사진이 있다"며 구속됐다. 그 후 100일을 묻는 질문에 김 씨는 간단하게 답했다.
"모든 게 엉망이 됐죠."
가장 현실적인 고통은 생계난이다. 노사합의 이후 정부는 평택을 '고용촉진지구'로 지정했고 두 달여가 흐른 지난달 26일 노동부는 "쌍용차 실직자 2178명 가운데 19.8%가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0명 중 2명이 다시 직업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씨는 "주변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고 했다. "쌍용차 출신이라고 하면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설 씨의 얘기도 다르지 않았다.
"애기 아빠 친구들요? 다들 하루하루 막노동 일자리만 전전하고 있어요."
노동부의 통계는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에 참여했다 끝내 해고된 508명 외에도 1차와 2차에 걸친 희망퇴직자 1670명도 포함된 것이다. 때문에 이날 만난 가족과 쌍용차 노동자들은 434명이라는 재취업자 대부분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희망퇴직자 가운데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간부 22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16일, 경기도 평택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들의 가족들. ⓒ프레시안 |
"77만 원 벌어 50만 원이 유치원비…지원은 남의 일"
취업도 쉽지 않았지만, 각종 지원은 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김 씨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찾아갔다가 황당한 소리만 들었다"고 털어놨다. 지원 조건은 부부의 소득 합계가 연간 6000만 원 미만이어야 했는데, 그 기준이 2008년도 소득이었던 것이다. 그해는 남편이 해고되기도 전이다. 게다가 김 씨가 애경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 두 부분의 소득 합산은 6000만 원이 넘었다.
"작년엔 그랬지만, 올해는 남편이 파업하기 전부터 거의 월급을 못 받았어요. 파업하고 난 뒤에는 구속돼 버렸으니 올해 내내 제가 버는 수입 외엔 소득이 없었죠. 그런데도 작년 소득을 들먹이며 지원이 안 된다니요."
▲생각해보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한 것은 지난해 이맘 때 쯤 부터다.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 경영난을 겪으며 회사가 휴업을 반복하는 동안 그 가족들은 얇은 월급 봉투로 생계를 고민해야 했다. ⓒ프레시안 |
생각해보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한 것은 지난해 이맘 때 쯤 부터다.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 경영난을 겪으며 회사가 휴업을 반복하는 동안 그 가족들은 얇은 월급 봉투로 생계를 고민해야 했다. 설 씨는 "그래도 작년엔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쓸 수 있었는데, 남편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것도 부질없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아이들 다 키운 나보다는 아이 어린 젊은 엄마들이 더 걱정"이라는 김 씨의 말이 맞았다.
너나 할 것 것 없는 해고자들의 이 같은 생계난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해고에 대한 공포의 현실적인 근거기도 하다.
뒤늦은 '상하이차의 기술유출' 인정…"사태의 진짜 책임자는 누구?"
▲만일 쌍용차지부의 파업 도중 검찰의 결론이 나왔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레시안 |
이는 노조가 "상하이차가 신차 기술 개발 등 인수 당시 약속은 지키지 않고 기술만 빼가고 있다"며 상하이차를 검찰에 고발한 데 따른 조사 결과였다. 올해 1월 쌍용차가 법정관리 신청을 하며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해 진 뒤에도 노조는 내내 대주주였던 상하이차의 경영 문제를 지적했었다. 그리고 이는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조의 강력한 투쟁의 명분이자 이유기도 했다.
만일 쌍용차지부의 파업 도중 검찰의 결론이 나왔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지금보다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덜했을지 모른다. 쌍용차 한 노동자가 "우리가 그토록 결과 발표를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검찰이 이제야 발표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영호 쌍용차 정리해고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검찰 발표로 77일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비록 늦었지만, 검찰 발표로 "이 사태의 진짜 책임자"가 분명해 진 셈이다. 그런데 "쌍용차를 망친 상하이차의 불법행위도, 심각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다 결국 살인적인 공권력의 투입해 사 측의 편을 든 정부도 '멀쩡'"하다. 설 씨는 이 얘기를 하다 분통을 터뜨렸다.
"솔직히 지금 쌍용차가 멀쩡하게 돌아가는 건 우리 남편들 덕분이예요. 전기가 끊기면 페인트가 다 굳는 도장공장에 단전 조치를 한 건 회사예요. 오히려 우리 파업 노동자들이 비상발전기를 돌려 어마어마한 손해를 안 입을 수 있었죠. 가뜩이나 약한 회사가 도료까지 다 굳어 새로 교체해야 했다면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우리보고만 잘못이라고 하죠?"
"가해자는 멀쩡한데 피해자만 또 피해를…"
회사는 최대한 선처를 노사가 함께 부탁하기로 한 합의를 깨고 사태 종결 이후에도 고소고발을 남발했다. 구속자는 96년 한총련 사태 이후 단일사건 최대다. 회사와 협력업체, 경찰 등이 청구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금액도 125억 원에 달한다. 설 씨의 집에도 얼마 전 회사가 283명에게 제기한 5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의 소장이 날아들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잘 살고 있는데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살인진압의 기억이 주는 고통으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함께 살자'는 목소리를 가장 높이 냈던 노조 간부들은 하나 둘씩 중형을 받고 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잘 살고 있는데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살인진압의 기억이 주는 고통으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함께 살자'는 목소리를 가장 높이 냈던 노조 간부들은 하나 둘씩 중형을 받고 있다. ⓒ프레시안 |
그들이 다시 복직투쟁을 '결의'하는 이유다. '산 자'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를 만들면서 소수의 해고자들만 남겨진 쌍용차지부는 최근 복직 투쟁의 방법을 고민 중이다. 설 씨도 "남편이 떳떳한 요구를 하며 싸웠던 만큼 꼭 이겨서 복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설 씨는 "꼭 이겨서 복직되게 할 거지만, 절대 복직은 안 할 거다"고 했다.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졌어요. 이제는 솔직히 돌아오라고 해도 돌아가기 싫어요."
결국 그의 "복직 결의"는 결코 내 남편이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였던 셈이다.
사태의 책임이 상하이차의 말도 안 되는 경영에 있었음을 지적하고 사람을 자르는 것 대신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일자리 나누기'로 함께 살자던 그들의 말이 공장 담벼락을 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처럼, "부실사태와 살인진압의 피해자들만 감옥에 갇혀 또 다른 피해를 당해선 안 된다"는 이들의 말이 법원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금속노조가 이날 내놓은 성명의 한 구절을 이랬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법원의 양식을 기대해 본다."
영화가 된 그들의 이야기 <저 달이 차기 전에>
아무도 들어갈 수도,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었던 봉쇄된 평택공장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영화는 물도, 전기도 끊긴 그 공장 안에서 또 하루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600여 명의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최루액과 땅에서 날아오는 볼트와 너트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 발로 공장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 서세진 감독은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옥쇄 파업은 정리해고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대한 경종이었다"며 "최악의 조건에서도 끝까지 '함께 살자'는 구호를 놓지 않았던 그들의 외침이 우리의 외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따미픽쳐스는 오는 17일 오후 4시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첫 시사회를 갖는다. 오는 24일에는 인디스페이스에서 후원 시사회가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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