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유급 노조 전임자가 없다는 노동부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우리보다 후진국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도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노조 전임자는 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하려는 것처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을 법률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전자업종노조를 준비하고 있는 브루노 프레이라(Bruno Preira) 씨는 이렇게 되묻는다.
"한국처럼 선진화된 나라에서 그런 후진적인 법률을 만들려 한다니, 이해하기 어렵네요. 권위주의 국가인 말레이시아에도 그런 악법은 없어요."
최근 한국 노사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방한했던 프랑스민주노총(CFDT)의 화학에너지노조연맹(FCE) 소속 노조 간부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노사 자율을 중시하는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에서 왜 국가가 나서서 법률로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를 간섭하려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프랑스민주노총 화학에너지노조연맹 장-프랑수와 레누치(Jean-Francois Renucci) 씨를 만나 한국 노동부의 주장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프랑스는 중소기업 노조 전임자 임금 위해 정부와 사용자가 열성적"
▲ 프랑스민주노총 화학에너지노조연맹 장-프랑수와 레누치(Jean-Francois Renucci) 씨.ⓒ프레시안 |
"프랑스는 물론 유럽 어느 곳에서도 회사가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은 없다.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노사정 3자가 특별기금을 만들어 영세중소기업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노조전임자 임금이 별 부담이 아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노조전임자를 위한 재원 마련에는 정부와 사용자가 열성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소영세기업 노조전임자를 위한 기금을 설치하도록 법이나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정부와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면 회사가 어려워진다는 논리도 있다.
"노조전임자 때문에 망했다는 기업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조전임자 임금도 못 줄 정도로 재정이 어려운 기업이라면 사실 경쟁력을 상실한 것 아닌가. 그런 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노조전임자 임금을 회사가 지급한다고 기업과 국가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다. 좋은 노사관계의 형성과 국민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노조 전임자 때문에 망할 기업은 지금 도태되야 한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이 노조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내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노조전임자다. 프랑스전력(EDF)이 우리 회사인데, 나는 회사 월급을 받으며 프랑스민주노총 산하 화학에너지노조연맹(CFDT-FCE)에서 전임으로 상근하고 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자율성을 상실한 채 사측의 입장을 따르는 노조간부로 보이나?
5개 노조가 공존하는 회사에서 우리 노조 몫으로 회사로부터 유급으로 확보한 노조 간부의 활동시간은 연간 7만 시간이다. 7만 시간 안에서 전임자(full-time)나 반전임(part-time)으로 몇 명을 쓸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을 2500시간으로 가정한다면 28명의 전임자를 쓸 수 있는 셈이다. 우리 노조만 7만 시간이다. 노동총연맹(CGT) 등 다른 노조들도 각자의 교섭력을 바탕으로 노조간부 활동시간을 따로 확보해 사용하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노조끼리 알아서 할 일…정부가 강요할 수 없다"
복수노조가 오래 전부터 허용된 프랑스에서 기업 단위의 교섭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한국은 노총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둘이지만, 프랑스는 더욱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다섯 개가 넘는다. 5개가 많은 것 같지만, 노조 자율 원칙을 준수하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5개 노총에 속한 노조가 제 각각 교섭을 해도 법률적으로 문제는 없다. 단, 교섭을 하는 노조는 전체 종업원의 10% 이상으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10%가 안 되면 교섭 자격이 없다.
모든 노조가 대표성이 10%를 넘으면 제각각 따로 사측과 교섭을 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노조들이 연합하여 단일 교섭테이블을 구성한다. 개별노조가 단독으로, 혹은 복수노조가 연합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종업원의 50% 이상이 반대하면 그 단체협약은 무효가 된다.
복수노조 상황에서는 노조들 사이의 조율과 협력이 중요하다. 물론 노동조합들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 정부나 사용자가 나서서 창구단일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우 노조조직률은 10%, 단체협약 적용률도 10%를 넘지 못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이 한국보다 못하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90%를 넘는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프랑스의 노조조직률은 8%다. 전체 노동자의 10명 가운데 0.8명만 노조원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92%다.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셈이다. 물론 90%가 넘는 단체협약 적용률은 전국 중앙 혹은 산업별 단체협약을 두고 하는 말이다.
프랑스의 단체협약은 3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첫째, 노총들과 사용자단체 사이의 전국중앙협약이 있다. 이 협약은 산업과 업종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그 다음으로 산업별 혹은 업종별 협약이 있는데, 이것은 해당 산업 혹은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다음은 기업별 협약이 있는데, 이것은 해당 기업의 종업원들에 적용된다.
단체협약의 체결은 노조가 주축이 되지만, 그 적용은 노조원 여부에 상관없이 해당 종업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단체협약은 평균의 기준보다는 좋기 마련이다. 그런데 더 좋은 조건을 노조원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차별이다. 프랑스 헌법은 차별을 금지한다.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비노조원들도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단체협약 때문에 기업 경영 어렵다? 오히려 국민경제에 도움 된다"
비노조원에게도 단체협약이 적용되면, 누가 굳이 조합비를 내면서 노조원이 되려 하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대부분 사회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사용자는 단체협약을 노조원 혹은 해당 기업 수준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들이 단체협약이 적용되면 망할 것이라고 아우성치지만, 실제로 단체협약 적용 때문에 망한 기업은 없다.
단체협약 적용의 확장은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단체협약 수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기업은 사실상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다. 단체협약의 일반적 적용은 생산성이 낮은 기업을 도태시키는 산업구조조정의 순기능도 한다."
프랑스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잦은 나라다. 파업으로 국민경제가 받는 타격은 없는가.
"제조업의 경쟁력을 비교할 때 프랑스는 영국보다 사정이 훨씬 좋다. 파업으로 국민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면, 한국 경제는 1980년대 후반 노조운동이 활성화되었을 때 이미 파산해야 했다. 언론과 자본가들이 한국의 노사관계가 세계 최악이라고 평가했던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는 더욱 발전했고, 지금 한국경제는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프랑스 공무원과 소방관, 파업권 있다"
프랑스의 공무원은 파업권이 있는가?
"공무원은 파업권을 갖는다. 물론 경찰노조는 파업권이 없다. 반면, 소방관노조는 파업권이 있다. 교사, 병원, 전력, 교통, 가스, 석유, 통신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파업권이 있다. 공무원이라고 노동기본권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는 없다. 공무원이 파업한다고 나라가 망하는가? 나라가 망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파업 때문이 아니라 국정을 운영하는 자들의 무능력과 부패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어떤가. 프랑스의 노조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가?
"우리 노조연맹이 속한 프랑스민주노조총연맹(CFDT)은 1979년 대의원대회에서 정당과의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 노조원 개개인은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차원의 정당 지지는 없다. 이런 흐름은 공산당 계열로 알려진 프랑스노동총동맹(CGT)도 마찬가지다.
1981년 전에는 전통적으로 대통령선거에 노조의 입장을 밝혔고, 대개 좌파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부터는 정당 지지는 더 이상 안 한다. 극우나 극좌 빼고는 다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노동조합의 정당 지지에 아무런 정치적 법률적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노조가 정당 지지를 안 하는 것은 노조운동의 자율적인 결정 때문이지 정부의 압력이나 법률적 제약 때문은 아니다."
프랑스민주노조총연맹(CFDT)이 정당 지지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조의 정당 지지를 금지하는 법은 없고, 노동조합의 자율적인 결정 때문이다. 우리 경험으로는 정치에 개입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대화와 단체교섭을 통하는 것이 노조원들에게 더 좋은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반드시 사회적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특정 정당을 향한 지지가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 방해? 이해 안 된다"
한국 정부는 공무원노조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되고,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상급단체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노조는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데, 한국 정부가 나서서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이나 상급단체 가입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공무원도 정당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단, 프랑스에서 노동조합은 더 이상 정당 지지를 하지 않는다. 정당 지지가 노동운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후퇴시켰다는 노동조합 내부의 인식을 반영한다.
물론 영국이나 북유럽은 노동운동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 독일도 그렇다. 최근에는 미국의 노동조합들도 오바마를 대놓고 지지했다. 나라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조건이 존재한다.
공무원노조도 노동조합인데, 상급단체 가입이 안 된다니 한국 정부의 태도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노조전임자 임금의 문제로 노조 자율성 침해를 빌미로 내세우는 정부가 노조 자율성의 상징인 상급단체 가입을 방해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인상을 말해 달라.
"당장의 현안에 쫓겨 긴 안목이 부족한 것 같다. 기후변화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금 유럽에서는 에너지, 산업, 환경 정책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2020년까지 CO2를 20% 줄이고, 에너지 효율은 20% 높이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20퍼센트까지 끌어 올리는 전략을 노동조합이 고민하고 있다. 사용자에게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 노동조합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못해 아쉽다. 인권과 노동권 탄압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버마 문제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한국 노조의 이해가 많이 부족해 그러질 못했다. 국제노동계는 버마에 대한 투자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입장인데, 이게 잘 먹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한국 노조들의 이야기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서 아쉬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