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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앞둔 용산 참사, 진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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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앞둔 용산 참사, 진실은 이렇다

[분석]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

용산 참사 1심 최종 선고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검찰의 수사 기록 3000쪽 비공개로 파행을 거듭했던 재판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용산 참사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은 피고인의 1차 구속 시한인 10월 29일 이전까지 판결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현재 재판의 쟁점은 △화재의 발화 원인 △경찰특공대의 강경 진압 여부 두 가지다. 검찰은 발화 원인을 두고 "망루 4층에 있던 농성자가 3층 계단으로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발생했다"며 이로 인해 1명의 경찰이 사망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9명의 철거민에게 '특수공무치사상방해죄'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당연히 경찰의 진압도 "적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피고인 변호인단은 "검찰은 발화 원인을 확인하지 못하고 추측만 할 뿐"이라며 "현재 검찰이 내놓는 증거 자료만 가지고는 증명이 어렵다"고 반박한다. 또 공권력 투입을 두고 "강경 진압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과 변호인간 첨예한 법적 공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지난 두 달간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당초 검찰의 기소 내용과 다른 내용들이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의 입을 통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을 쟁점별로 나열했다.

ⓒ뉴시스

화염병이 발화 원인인가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이 발화 원인인가?'. 검찰은 기소장에서 경찰특공대원인 권모 씨가 화염병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발화 원인으로 철거민의 화염병을 지목했다. 하지만 법정에 출두한 권모 씨는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했다.

이뿐만 아니라 망루 진압 작전을 펼쳤던 10여 명의 경찰특공대도 하나같이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1차 진압 당시엔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을 보았지만 화재 직전 펼쳤던 2차 진압 때는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원인 모를 화염이 발생해 망루 밖으로 탈출했다는 게 대부분 경찰특공대의 증언이었다.

피고인 철거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망루 밖으로는 특공대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화염병을 던졌으나 망루 안에서는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1차 진압 당시에도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는 철거민의 증언이 1차 진압 당시 "화염병을 보았다"는 경찰특공대의 진술과 엇갈릴 뿐이다.

변호인단에서는 다른 발화 원인의 가능성을 법정에서 제기했다. 당시 철거민이 망루 안에서 사용했던 발전기, 전기 스파크, 전동절단기 등도 충분히 발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당초 검찰에서 "화재 원인은 화염병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술한 바 있는 화재감식관은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제시한 동영상을 확인한 뒤 "다양한 화재 원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검찰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당시 영상은 화재감식관이 미처 보지 못했던 영상으로 발화가 망루를 주변으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김형태 변호사는 "상식적으로 시너가 고여 있는 상황에서 화염병을 던졌다는 건 스스로 죽으려고 화염병을 던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짓을 할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노순택
경찰의 진압 작전, 정당했나

경찰의 공권력 투입이 정당했는지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피고인 변호인단은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알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며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간부 및 특공대원에게 이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그 결과 밝혀지지 않았던 공권력의 적법성 여부가 상당수 밝혀졌다. 법정에 출두한 경찰특공대원 대부분은 진압 당시 망루 내부에 시너 양이 어느 정도 있는지, 망루 내부 구조가 어떤지에 대한 사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박삼복 경찰특공대장은 "2차례 교양 교육을 진행했다"고 증언했으나 대원들은 "안전에 주의하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통지를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특공대장도 시너 60통이 망루 내에 있는 줄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시너가 건물 곳곳에 산개해 있는 줄 알았지 망루에 집중해 있는 줄은 몰랐다"고 증언했다. 결국 이러한 것을 파악하지 못한 채 진압 작전을 벌인 결과가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소방대원은 "망루 내부에서 시너 60통에 불이 붙었다면 아무리 많은 소방차가 있었더라도 화재 진압은 불가능했다"고 진술했다.

1차 진압 이후 2차 진압 당시 망루 내 상황이 심각했던 점도 밝혀졌다. 증인으로 나선 특공대원 중 한 명은 "2차 진압 당시 몸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며 "내부에 있는 시너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웠다"고 진술했다.

그는 "진압 작전은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동료가 들어가기에 같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경찰특공대원도 "만약 내가 지휘관이라면 상황이 어려워 진압 작전을 보류했을 것"이라고 증언해 당시 상황의 위험성을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증인으로 출석한 소방대원은 "내가 경찰특공대장이었다면 진압 작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러한 정황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경찰특공대장은 당시 망루 내 진압 작전을 지휘하던 제1제대장에게 "아직 멀었나? 내가 올라갈까?"라며 진압 작전을 종용했다.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이 참사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증언이다.

4개월간 파행 뒤 두 달간 집중 심리를 통해 진행된 용산 참사 재판. 21일 결심 공판을 끝으로 재판부는 최종 선고를 할 예정이다.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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