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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진압 경찰특공대 "시간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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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진압 경찰특공대 "시간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증인 출석한 특공대원 "망루 내부 상황 모른 채 진압 작전 실시"

"망루를 짓기도 전에 경찰기동대가 출동했다. 특공대 입장에서도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거다." (김형태 변호사)

"망루 내부를 파악하고 작전을 진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모르고 들어간 건 것도 아니다. 하나라도 더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경찰특공대 제1대대 대장)

경찰특공대가 철거민이 망루를 완성하기도 전에 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내부에 시너가 어느 정도 있었는지 농성자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망루에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 참사 재판 과정에서 경찰특공대의 사전 준비 미흡과 무리한 진압 작전이 재점화됐다. 용산 참사 농성자 9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한양석)는 24일, 용산 참사 당일 투입된 경찰특공대원을 증인으로 소환했다.

진압 작전의 위험성

피고인 철거민 변호인단은 경찰특공대에게 진압 작전 강행에 무리는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히 망루 진압을 실패한 이후 곧바로 2차 진압을 진행한 것을 두고 "중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당시 경찰특공대는 망루 진압을 시도했으나 농성자의 강한 저항으로 진압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철수 8분 만에 다시 진압을 시도했다 화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 제1제대 대장 A씨는 "2차 진압을 하기 전 망루에서 기름을 붓는 것을 봤지만 진압 작전을 해도 무리가 없을 거라는 판단에 진압 작전을 재개했다"며 "망루 안에 대량 시너가 들어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농성자 진압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대원에게 망루 내부를 살펴보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1차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1제대 팀장 D씨도 "안전하게 진압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주변을 못 봤다"고 진술했다.

2차 진압은 윗선의 명령에 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1제대 대장 A씨는 "특공대장이 지시해서 다시 들어간 것은 아니고 내가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해 지시했다"며 독자적인 판인이었음을 확인했다. 제1제대는 당시 컨테이너로 망루가 있던 남일당 건물 옥상에 진입한 제대다.

하지만 피고인 변호인단 김형태 변호사는 "망루 안에 시너가 있음에도 이를 못 봤다고 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무엇보다도 안전을 생각했다면 무리하게 진압하는 게 아니라 망루 안에 시너를 먼저 빼내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노순택
사전 준비 미흡


사전 준비가 미흡했던 것도 드러났다. 경찰특공대는 진입 당시 농성자의 숫자, 망루 내부 구조, 화염병 유무, 시너 양 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A씨에 의하면 경찰특공대는 19일 저녁 전체 대원을 소집한 뒤 용산 현장과 관련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그는 "항공사진과 영상 등으로 주변 건물과 남일당 건물 위치 등을 설명했다"며 "하지만 망루 내부가 어떤 구조인지, 화염병 유무, 시너 양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실제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원 B씨는 "브리핑에서 화염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위험하니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원 C씨는 "다른 일이 있어 브리핑을 듣지 못했고 동료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증인으로 참석한 1제대 팀장 D씨도 "브리핑은 받았으나 다른 일 때문에 브리핑 도중에 나왔다"며 "용산 현장은 직접 가서 살펴보지 못했고 사진으로만 확인했다"고 밝혔다.

작전 준비 시간 부족

당초 경찰특공대는 컨테이너 1대가 아닌 2대로 진압 작전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망루 지붕을 뜯어낸 뒤 컨테이너를 이용해 진압하려 했던 것. 하지만 컨테이너가 1대 밖에 지원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이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경찰특공대 제1제대 대장 A씨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컨테이너가 지원됐을 것"이라며 "2개로 진압을 시도했다면 좀 더 안전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A씨 증언에 의하면 경찰특공대가 사건을 접하고 작전을 진행하기까지 채 24시간도 걸리지 않을 걸로 드러났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

경찰특공대가 처음 용산 현장 상황을 접한 건 19일 오전 8시 30분. A씨는 "당시 회의를 하고 있는데 경찰특공대장에게 용산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며 "즉시 2개 제대와 그곳으로 출동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현장을 돌아 본 뒤 복귀했다가 오후께 경찰특공대장과 함께 용산 현장 주변을 항공 촬영하는 등 사전답사를 했다"며 "당시 특공대장은 '출동할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20일 새벽 경찰특공대가 출동했다. A씨는 "망루 안을 파악하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있다고 해서 안의 구조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형태 변호사는 "망루를 짓기도 전에 경챁특공대가 출동하고 이후 24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진압 작전을 실시했다"며 "결국 특공대 입장에서도 정보나 사전 준비가 부족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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