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공판을 지켜보던 방청객은 혀를 차며 이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증인으로 나선 경찰 간부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 심리로 열린 용산 참사 공판에는 당일 현장에서 병력을 지휘한 경찰 간부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외국 체류 중이라 불참했지만, 김수정 전 서울지방경찰차장, 박삼복 전 경찰특공대장, 백동산 전 용산경찰서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변호인단에서는 경찰 간부를 증인으로 채택하면서 "경찰 공권력 집행의 정당성이 어느 정도 밝혀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혀를 찬 방청객의 혼잣말처럼 경찰 간부는 용산 참사 현장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증언만 늘어 놓았다. 줄줄이 증인으로 소환된 경찰 간부는 똑같이 "현장에는 있었으나 (보고를 받지 않아)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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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장 "컨테이너 신경 쓰느라 부하 보고 받지 못했다"
시작은 박삼복 전 경찰특공대장이었다. 그는 당시 특공대 투입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휘관으로 망루에 투입된 특공대에게 보고를 받아야 하지만 기중기에 매달려 있는 컨테이너에 신경을 쓰다 보니 무전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망루 밑에서 불이 난 것도 파악하지 못했으며 불이 크게 난 뒤에야 화재가 난 것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또 그는 "특공대가 망루에 1차 진입했을 당시 화재가 난 일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공대가 건물 1층을 통해 옥상까지 진입한 사실, 1제대장이 망루 1층 입구를 뜯는 사실, 망루 틈새를 벌리고 있는 사실 등도 보고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그는 "제대장은 변화된 상황에서는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리도록 되어있다"며 "특공대장이 제대장에게 어디서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화재가 발생한 2차 진압도 제대장 독단으로 진행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는 1차 진압 실패 후 2차 진압 직전 망루 진압 작전을 펼치던 1제대장에게 "아직 안끝났어? 내가 올라갈까"라고 압박을 가했고 1제대장은 "아닙니다. 곧 끝납니다"라는 말을 마친 뒤 특공대를 투입했다. 그는 이 사실을 놓고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을 피했다.
답답한 건 변호인단이었다. 피고인 변호인단 김형태 변호사는 "부하들을 작전에 투입시킨 대장이 아무런 지휘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며 "결국 부하들에게 작전 들어가라고 한 것 말곤 지시를 내린 게 무엇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며 "이 증언대로라면 현장 지휘를 제대로 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전 특공대장은 "총괄 명령만 할 뿐이지 나머지는 각 분야에 나눠져 있는 제대장이 책임지고 작전을 수행한다"고만 답변했다.
서울지방경찰차장 "특공대장에게 작전이 잘 되고 있다는 보고만 받았다"
당시 용산 현장 총괄 책임자인 김수정 전 서울지방경찰차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화재 발생 직전 특공대가 투입된 2차 진압 작전을 두고 "보고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세세한 것들은 지휘하지 않는다"며 "당시 각 지휘관의 보고를 받아 상황 판단을 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 참사 직후 남일당 건물. ⓒ뉴시스 |
그러자 피고인 변호인단에서 "그렇다면 당시 현장에서 차장이 내린 명령은 무엇이었는가"라고 질문했다. 김 전 차장에 의하면 현장에서 지시한 사항은 △안전에 유의하라 △계획대로 하라 뿐이었다. 김형태 변호사는 "결국 특별히 지휘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작전이 잘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던 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잘되고 있는 줄 알다가 특공대장도, 차장도 모르게 화재가 발생했다"며 "이를 테면 부하 직원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작전을 결정한 셈"이라고 일축했다.
용산경찰서장 "전혀 모른다. 나중에 알았다"
백동산 전 용산경찰서장에 비한다면 특공대장과 서울지방경찰차장의 증언은 차라리 나았다. 백 전 서장은 변호사의 질문에 시종 "전혀 모른다. 나중에 알았다"를 무수히 반복했다.
그는 19일 저녁부터 남일당 건물 2층과 3층에서 "용역이 불을 핀 사실을 아는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알지 못했고 나중에 알았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두고 "철거민이 그곳에서 불을 핀 줄 알았다"며 "용역은 남일당 주변에 친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그곳을 진압하지 않을 것을 두고 "화염병과 돌이 떨어지는 상황이라 위험해서 경찰에게도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가지 말도록 명령했다"며 "만약 용역이 했다고 했다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남일당 건물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접하고 출동한 소방관은 용역이 화재를 방해하자 경찰에게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백 전 서장은 이를 두고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지만 경찰이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며 "현장에 있는다고 모든 상황을 다 아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피고인 변호인단 "이런 재판은 처음이다"
변호인단은 '뿔'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이날 출석한 경찰 간부의 증언을 통해 경찰 공권력의 정당성이 어느 정도 밝혀지리라 믿었지만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 김형태 변호사는 "증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특공대장, 차장 등은 현장에서 상황을 전혀 보고 받지 못했고, 또한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결국 증인들의 증언은 검찰이 수사 기록 3000쪽을 공개하지 않는 행위와 똑같다"며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서 증언해야 할 경찰 간부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재판부에게 "증인들의 증언에는 불이익을 가해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우리가 조사한 내용과 거의 부합하다"며 변호인단의 주장에 반박했다. 검찰은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원칙에 따른 것"이라며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증거 기록과 수사 기록은 분리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했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런 재판은 처음"이라며 "경찰 간부가 검찰에서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가운데, 경찰이 이렇게 진술을 한다면 도대체 진실은 어떻게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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