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연 씨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2층에 있던 용역들은 불을 피우고 돌을 던지는 등 철거민에게 폭력을 가했다"며 "결국 망루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렇게 진술했다.
"용역 폭력 피해 엄포용 시너 60통, 골프공 들고 망루로 피신했다"
당시 철거민들은 경찰과 용역이 남일당 건물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3층과 4층에 세녹스를 뿌려놓았다. 또 엄포용으로 약 60통의 세녹스와 골프공, 화염병 등도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이충연 씨는 "골프공, 화염병 등을 건물에 놓은 이유는 과시효과를 내기 위해서였다"며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위험 물질이 있는 걸 안다면 경찰이나 용역이 자신들을 쉽게 진압하려 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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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용역은 남일당 건물 2층에서 불을 피우고 돌을 던지는 등 3층과 4층에 있는 철거민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는 "결국 위험하다는 판단에 세녹스, 화염병 등을 망루 2층과 3층에 올렸고 철거민도 이곳으로 이동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망루 안에 있으면 적어도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찰이 시너 60통이 망루 안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이를 모르고 진압 작전을 펼쳤다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 9일 증인으로 출석한 박삼복 전 경찰특공대장은 "당시 시너 60통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했지 망루 안에 모여 있는 줄은 몰랐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는 농성자들이 망루로 오르기 전인 1월 19일 오후께 헬리콥터로 남일당을 살펴본 결과 건물 곳곳에 시너통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물이 없어 나흘도 버티지 못하고 자진해서 망루애서 내려왔을 것"
당시 망루 안에 식료품은 쌀 20가마, 물 하루치 분량, 라면 몇 박스만이 있었다. 이충연 씨는 "10~20일 정도면 끝날 줄 알고, 아는 여성에게 그 기간만큼 먹을 분량을 사달라고 했다"며 "하지만 목록을 주지 않아 그런지 반찬도 없이 쌀만 20가마를 사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성을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돼 물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물 좀 사달라"고 외치며 밧줄에 돈을 묶어 남일당 건물 아래로 던졌다. 물을 사서 묶어주면 자신들이 올리겠다는 것. 하지만 용역의 방해로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용역은 밧줄을 칼로 잘랐다.
이충연 씨는 "용역들은 (건물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거 사다주면 죽여 버리겠다'며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했다"며 "이것은 경찰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상황이 이렇기에 길어야 3~4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무리해서 농성 하루 만에 진압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면 며칠 못가 자진해서 내려왔을 거라는 이야기다.
"결코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화염병을 망루 안으로는 던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피고인 A씨는 "망루에 진입하는 특공대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마대자루에 들어 있던 빈 병을 계단에 던지긴 했으나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피고인 B씨도 "망루 내부에 그렇게 화기가 많은데 어떻게 화염병을 던질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살려고 올라갔는데 죽을 일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입하는 특공대를 막기 위해 물리력을 가하고 쇠파이프를 계단에 치는 등의 행동은 했지만 결코 화염병은 던지지 않았다"며 검찰의 화염병 투척 의혹을 일축했다.
이충연 씨도 "결코 망루 안으론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며 경찰특공대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하지만 용역이 건물 내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기는 했다"며 "물론 직접 맞춰서 다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위협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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