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찰청장을 바람막이 삼은 정치권도 '눈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찰청장을 바람막이 삼은 정치권도 '눈총'

[기자의 눈]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를 보며

버티기로 일관하던 허준영 경찰청장이 29일 사표를 제출했다. 정치권과 농민단체들이 제기해 온 '사퇴 요구'를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청장은 끝내 오만한 모습을 버리지 않았다.

허 청장이 사퇴하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정치권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두 농민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책임은 정치권에 있기 때문이다.

***허준영 "두 농민 사망,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 아니었다" 강변 **

허준영 경찰청장은 물러나면서 내놓은 '사퇴의 변'에서 불쾌한 심사를 노골적으로 털어놨다.

허 청장은 이 글에서 "(두 농민의 사망 사건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연말까지의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현안을 고려해, 평소 국가경영에 동참하는 치안을 주창했던 저로서는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요컨대 두 농민 사망 사고는 자신이 사퇴할 만한 사안이 아니지만 정치권의 사퇴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게 됐다는 얘기다. 허 청장이 사표를 제출한 뒤에도 농민단체들이 "진정한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허 청장은 사표를 제출하면서도 민생치안을 관장하는 총책임자로서 사태의 엄중함에 걸맞은 치열한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권의 사퇴 요구에 대해 볼멘소리만 늘어놓은 셈이다.

***네티즌들 "허준영 청장은 바람막이일 뿐"**

한편 국민의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의견을 엿보게 해주는 〈네이버〉,〈야후코리아〉 등 포털 사이트들의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농민의 사망에 대한 모든 책임을 허준영 경찰청장에게만 씌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네티즌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가 지난 28일부터 진행 중인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9일 오후 1시 현재 참가인원 8491명 중 약 60.7%가 '허준영 경찰청장은 임기를 채워야 한다'고 답변했다.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28일부터 진행 중인 〈야후코리아〉의 조사에서도 같은 시간에 총 참가자 1만655명 중 64%가 허 청장의 사퇴에 반대했다.

요컨대 네티즌들은 허 청장의 사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의 판단과는 적잖이 다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 여론조사 코너에 달린 네티즌의 의견글들을 보면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린다.

〈파란색 시작〉

"쌀 개방, 경찰이 했습니까? 정부와 국회에서 한 거 아닌가요? 그걸 왜 경찰이 책임집니까? 청장 바뀌면 쌀 개방 없던 걸로 해준다고 하던가요? 본질을 바로 직시합시다."(야후 ID nakpal)

"쌀 개방 (문제의) 본질은 농림수산부 및 국회 등에 있는데 농민관련 단체는 시위 진압하는 경찰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이 듭니다."(야후, ID dydtns2586)

"법안 처리한 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책임지지 않고 엉뚱한 사람만 바람막이로 내세워 지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으니, 저런 자들이 있는 한 사망 농민은 또 생길 수밖에…."(네이버, ID smpyu)

"시위를 하게 된 원인 제공을 경찰이 했나요? 쌀개방을 경찰이 날치기 식으로 통과시켰나요? 경찰이 막고 국회가 보호되니 국회의원님들 좋으셨습니까? 언론이 제일 밉습니다. 경찰 길들이기 합니까? 경찰 뭐라고 하기 전에 전의경 병문안이라도 가보고 그런 말 하세요. 남의 자식은 다쳐도 되는 건가요?"(네이버, ID jeong7560)

"시위를 안 할 수도 없고 진압을 안 할 수도 없는 체계가 문제. 신문고를 만들어서 조율을 하든가. 정부와 국회는 뭘 하는 곳인가. 이런 일이 발생할 때까지 내버려두고 뒤에서 조종만 할 셈인가?"(네이버, ID rpejq2)

"농민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그동안 그렇게 나대는 시민단체나 의원들은 무얼 하고 일이 터지고 나니 이제 와서 갑자기 목소리들을 높이는 건지…자신의 반성부터."(야후, ID kss22003)

〈파란색 끝〉

요컨대 두 농민의 사망 원인은 격렬한 시위를 야기한 정치권이나, 농민의 목소리를 올곧게 대변하지 못하면서 '성명서'만 발표한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인데, 왜 책임은 경찰청장 혼자서 모두 져야 되느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허준영 경찰청장은 '희생양'이라고 보는 관점마저 읽힌다.

***기회주의적이었던 집권여당**

허 청장의 과오를 지적하기보다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네티즌들의 생각은 무엇 때문일까? 허 청장이 사퇴하기 전후에 정치권이 보인 태도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 대국민 사과가 있었던 지난 27일 전병헌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시위 도중 발생한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문제 해결에 매우 의미 있고 존중받을 일"이라며 허준영 청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오히려 농민단체들이 더욱 반발하는 등 사태가 수습될 기미가 없자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오영식 우리당 공보부대표는 28일 오전에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 분위기를 전하며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허준영 청장이 보인 태도에 대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말이 바뀌는 정치권의 전형적인 태도를 집권여당인 우리당이 보인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론의 향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 정치권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집권여당의 모습은 과연 그들의 '정치적 소신'은 무엇인지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정작 책임져야 할 곳은 정치권**

하지만 두 농민이 사망하게 되고 농심(農心)이 폭발하게 된 원인까지 거슬러 가면 집권여당은 물론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도 이번 사태를 불러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전용철·홍덕표 두 농민이 부상을 입은 지난달 15일 집회의 정식 명칭은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였다. 1000여 명의 전국 농민들이 새벽밥을 말아먹고 서둘러 상경한 이유는 국회 통과가 임박한 쌀 협상 비준안을 실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폭력시위에 대한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물푸레나무와 대나무(쇠파이프는 없었다) 등 나무막대기까지 손에 잡은 것은 희망이 거세된 농촌에 희망의 불을 다시 지피기 위한 애달픈 '절규'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농민대회가 열린 지 불과 8일 만인 지난달 23일 민주노동당 의원과 농촌지역구를 둔 의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야 의원들이 쌀 비준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농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극한상황에서 수 년을 버텨 오는 동안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정치권은 두 농민이 사망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네티즌들이 허준영 청장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치권에 의한 '희생양'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