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비닐하우스엔 사람이 산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근교 그린벨트엔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지난 2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지시한 내용이다. 이 지시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지난 5월 그린벨트에 보금자리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전세값 폭등으로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는 27일 지난 5월 발표한 2018년까지 예정됐던 보금자리주택 공급 시기를 대폭 앞당기고 공급 물량도 대폭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수도권 그린벨트엔 비닐하우스가 가득해 그린벨트로 기능을 잃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판단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의 비닐하우스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냥 불도저로 밀어버려도 되는 비닐하우스가 아니다. 많은 비닐하우스가 사람들이 사는 '주거용 비닐하우스'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조사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경기도내 주거용 비닐하우스는 548개 단지에 1567동이 있다. 과천이 273동으로 가장 많고 성남 240동, 하남 182동, 고양 166동, 안성 138동 등 순이다.
▲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시범단지로 발표한 서초우면지구의 비닐하우스집. 이 지역에는 전체 가구의 39%가 비닐하우스와 지하방에서 살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
강남 세곡 58%, 우면 과천동 39%가 비닐하우스, 지하방 등에 거주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다음 달부터 청약에 들어가기로 한 서울 강남 세곡지구, 서초 우면지구, 경기도 하남 미사, 경기도 고양 원흥 등도 주거용 비닐하우스들이 많은 동네다.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손낙구 씨에 따르면, 강남 세곡지구에 사는 사람의 21%가 비닐하우스.판잣집.움막에 살고, 35%가 지하방에 산다. 서초 우면지구의 양재1동에는 전체 가구의 13%가 지하방과 비닐하우스, 판잣집, 움막에 산다. 과천동에는 39%가 이런 형태의 주거에 거주한다.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망월동,풍산동,선동의 법정동) 사람의 4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도동(원흥동과 도내동의 법정동)에 사는 사람의 27%가 지하방과 비닐하우스 등에 거주한다. 정부가 발표한 개발예정지에서 비닐하우스나 지하방 등에 살고 있는 사람은 7278가구 1만8314명으로 전체 가구의 23%에 달한다.
▲ 손낙구, '대통령 눈엔 왜 비닐하우스만 보였을까', <레디앙> 5월13일자에서 재인용. |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하자면 여기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나가야 한다.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들이나 집주인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무주택자 대다수는 꿈도 꾸기 어려운 '보금자리 로또'
정부가 내달부터 이들 4개 시범지구에 청약에 들어가겠다고 밝힘에 따라 조만간 이 지역엔 철거반이 들이닥칠 것이다. 정부가 서둘러 정책을 발표함에 따라 토지수용계획 등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철거를 둘러싼 갈등이 예상된다. 더구나 정부가 계획을 무려 5년이나 앞당김에 따라 철거는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용산참사와 같은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정부의 조급증 때문이다.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이 서민주택정책이라고 하지만 이로 인해 정작 가장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진짜 서민'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또 높은 분양가도 과연 보금자리주택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정부는 27일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가 전용면적 85㎡ 기준으로 3.3㎡당 강남 세곡, 서초 우면은 1150만 원, 하남 미사는 950만 원, 고양 원흥은 850만 원이라고 밝혔다. 강남과 서초의 경우 3-4억 원이면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당첨만 되면 큰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보금자리 로또'라는 얘기도 나온다.
과연 3-4억을 마련할 수 있는 무주택자가 얼마나 될까. 은행 대출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2억 원 이상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2억 원 이상의 전세에 살고 있는 세입자는 전체 무주택자의 0.4%에 불과하다. 전세 1-2억 원은 3.2%, 전세 5000만-1억 원은 10% 수준이다. 나머지는 전세 5000만 원도 안 되는 주택에 살고 있다. (2005년 통계청 자료.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재인용)
손낙구 씨는 "보금자리정책은 정부가 집 없는 서민을 위한 주택 정책으로 내놓은 것인데 서민 중 대부분은 전세가격이 5000만 원도 안 되는 곳에 살고 있다"며 "정부가 발표한 분양가라면 1억5000-2억 이상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세곡·우면지구, 집값 폭등 촉매제 될 수도"
이처럼 90% 이상의 무주택 서민들은 접근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보금자리주택이 투기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특히 대다수 전문가들이 강남이면서 자연환경과 교통이 좋은 세곡, 우면지구는 이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투기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전매제한 기간을 7-10년으로 강화하고, 별도로 5년의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기로 했다지만, 정부가 규제가 풀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 손낙구 씨는 "세곡, 우면지구는 강남의 주택공급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많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잘못하면 집값 폭등의 촉매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를 거의 다 풀어줬고,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유동성도 엄청나게 늘렸다"며 "이처럼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조건이 조성되면서 가격 폭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여기에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쏟아내면 집값을 안정시키는 쪽보다 올리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 때문에 발생한 문제의 대응책이 또 재개발? 최근 전세대란은 뉴타운 등 서울과 수도권의 재개발 사업이 몰리면서 이주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게 보금자리주택이라는 또 다른 재개발 사업이다. 따라서 정부의 대책으로는 전세대란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27일 저녁 CBS라디오 <시사타키 양병삼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최근 전세값이 오르는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게 도심에 있는 주택을 재개발하고 뉴타운 사업을 하다보니까 싼 주택들이 철거돼 이주 수요가 생기고 서민들이나 세입자들이 떠나야 하는 이유 때문"이라면서 "이분들에게 보금자리주택이 대안이 될 수 있느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철거민들의 경우 대개 방 한칸에 세를 살고 있는 분들이다. 재개발 뉴타운 사업의 경우 주민의 80%가 세입자들"이라며 "이분들은 아무리 싸게 주더라도 주택을 구입하기 쉽지 않은 분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금자리주택이 그 자체로 성과를 거두려면 재개발 뉴타운에서도 세입자를 포함해 영세 가옥주들이 다시 입주할 수 있도록 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지금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7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근본적인 제도개선은 커녕 여전히 미봉책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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