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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연구자-언론의 동맹 없는 통섭,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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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연구자-언론의 동맹 없는 통섭, 가능할까?"

[통섭을 말하다 ③] 이념적 통섭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면서 시작된 '한예종 사태' 이후 '통섭 교육'이 화제가 됐다. 문화부는 한예종 감사 중 상당 부분을 통섭 교육에 할애하면서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앞서 유인촌 장관이 통섭 교육을 두고 "한예종은 원래 하던 일이나 하라"고 일갈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정말 통섭 교육은 예술 교육, 또는 '기초 예술'과 무관한 것일까? '통섭'의 기본적인 뜻은 '서로 다른 학문 간, 장르 간의 융·복합'이다. 한예종 통섭 교육 사업은 예술(Art) 장르 간, 그리고 예술과 과학기술(Technology) 간의 융합에 중점을 맞춰 진행돼 왔다. 국내 학계에서는 수 년 전부터 통섭이 화두에 올랐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추진하려는 시도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중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시민과학센터는 지난 15일부터 매주 수요일 4회에 걸쳐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 간 공동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 간 통섭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심포지엄에는 예술, 과학, 공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30여 명이 참석해 토론을 벌인다.

<프레시안>은 통섭, 그리고 통섭 교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학문은 더 이상 학문 내적 논리에 의해 발전하지 않는다. 학문은 사회-정치적 권력 관계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됐다. 학제적 연구와 학문적 통합, 통섭 프로그램을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고찰해야 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통섭에 관한 연속 토론회가 열리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 의식은 '학문 간 통섭'이 아닌 학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흔히 '통섭'이라고 하면 예술과 과학, 인문학과 과학 등 학제간의 융·복합을 떠올린다.

그러나 결국 이런 학문간 소통의 노력을 어떻게 촉진할지, 그리고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키다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사회정치적 환경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한예종 통섭 교육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을 중단한 사건은 현재 우리나라 학문이 처한 사회정치적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난달 29일 서울대학교 규장각 대강당에서 열린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간 공동학술심포지엄' 4차 토론회의 주제가 '학문적 통섭과 이념적 통섭'이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날 발제는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가 맡았다. 이어 강수돌 고려대 교수,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전 대표,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심광현 한예종 교수가 토론에 나섰으며, 사회는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과학기술과 학문의 '경계 넘는 결합' 주도하는 건 자본"

박영균 교수는 "오늘날 과학기술과 학문들이 경계를 넘어서 나아가는 흐름에는 사회적 실체가 있다"며 "황우석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의학은 생물학과 결합하고 전자공학은 미학이나 수학, 논리학과 결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균 교수는 "그러나 이런 결합을 주도하는 것은 상업화된 자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체 시장>(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지음, 궁리 펴냄)을 인용하며 "상업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이제 생명과학자들 사이에 너무나 널리 퍼져 있다"며 "1999년 <유전공학소식>지에 나오는 백만장자들 중 89퍼센트는 생명공학회사를 직접 설립했거나 나중에 참여한 과학자였다"고 밝혔다.

▲ "현재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 및 통합, 융합, 통섭'의 프로젝트는 황우석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가-자본-연구자-언론의 결합이라는 과학기술동맹의 형성 맥락 없이 고찰될 수 없다." ⓒ뉴시스
박영균 교수는 "이런 경계를 넘는 학제적 연구 작업, 또는 통합적 연구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과 연구 자료의 제공은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의 세금이 투자되는 공공자금, 그리고 사회적 협력의 창출을 통해서 제공된 것"이라며 "그러나 오늘날 아이러니는 바로 이런 자원들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본 축적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것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유방암 유전자 검사, 그리고 신생아 탯줄혈액, 불임치료로 제공되는 난자 등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이라며 "따라서 현재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 및 통합, 융합, 통섭'의 프로젝트는 황우석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가-자본-연구자-언론의 결합이라는 과학기술동맹의 형성 맥락 없이 고찰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진행되는 통섭에서 진리 탐구라는 학문의 본연적인 역할은 퇴색하고 사유화된 가치의 생산이라는 소유적 증식 욕구에 의해 연구 방향과 활동이 좌우된다"며 "따라서 문제는 통섭 그 자체가 아니라 통섭이 지닌 본래적인 가치와 방향, 관점, 태도"라고 덧붙였다.

"이념적 통섭에 기초한 자연과학자-인문학자-사회과학자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박영균 교수는 "일반적으로 근대과학기술은 자신이 좋음(good) 또는 나쁨(bad)이라는 가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기술이나 과학은 이미 연구의 출발선에서부터 가치-관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회과학의 통합은 특정한 패러다임이 기초하고 있는 특정한 가치와 태도, 관점의 공유 속에서만 가능하다"며 "이 점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회과학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내적 논리가 지닌 가치와 의미, 목적, 동기와 방법 등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주며 비판적인 사회과학은 그런 기술들이 기획-개발-채용되는 과정에서 사회-정치적으로 미치는 효과를 탐구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설명했다.

그는 "또 예술과 미학은 자연과학의 논리적 완고성과 자연적 보수성으로부터의 해방과 상상의 힘을 제공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며 "따라서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이 아니라 어떤 통섭인가가 중요하며 그때 통섭은 어떤 가치와 관점, 태도, 동기 등의 이념적 지향성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기 검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지 않다면 통섭은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동맹의 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영균 교수는 "오늘날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자본에 의한 과학기술혁명의 포획이 가져올 미래적 결과들을 미리 예측하고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인류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협력과 지적 자산을 자연-기술-인간의 관계 속에서 상생적으로 전환시키는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또 이를 위해 이념적 통섭에 기초한 자연과학자-인문학자-사회과학자를 연결하는 연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연구자 네트워크의 구축은 운동정치의 전략 없이 수행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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