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통섭 교육은 예술 교육, 또는 '기초 예술'과 무관한 것일까? '통섭'의 기본적인 뜻은 '서로 다른 학문 간, 장르 간의 융·복합'이다. 한예종 통섭 교육 사업은 예술(Art) 장르 간, 그리고 예술과 과학기술(Technology) 간의 융합에 중점을 맞춰 진행돼 왔다. 국내 학계에서는 수 년 전부터 통섭이 화두에 올랐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추진하려는 시도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중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시민과학센터는 지난 15일부터 매주 수요일 4회에 걸쳐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 간 공동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 간 통섭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심포지엄에는 예술, 과학, 공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30여 명이 참석해 토론을 벌인다.
<프레시안>은 통섭, 그리고 통섭 교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제프리 쇼에 따르면, '닌텐도 위(wii)는 예술가들이 이미 오래 전에 보여주었던 전략들을 산업에서 빌려서 이룩한 최초의 성공적 사례'다. 하지만 '닌텐도 위'의 앞에는 상업적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었던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어리석은 인터페이스 실험이 존재했다. 또 '닌텐도 체어'나 '닌텐도 글러브'처럼 그 실험을 토대로 상업적 모델을 개발하려 한 수많은 실패한 시도들이 있었다."
지난 2월경,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개발해 볼 수 없느냐"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곧 화제를 불렀고, 닌텐도를 패러디한 '명텐도'가 인터넷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닌텐도가 누군가의 말 한 마디, 아이디어 하나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15일 서울대학교 규장각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 발제를 맡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지적한 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유비쿼터스 사회와 뇌-마음-몸-미디어-사회의 연결망'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진중권 중앙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으며, 김환석 국민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 심광현 한예종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사회는 도정일 경희대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 '유비쿼터스 사회와 뇌-마음-몸-미디어-사회의 연결망'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진중권 중앙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으며, 김환석 국민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 심광현 한예종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공동학술심포지엄 |
"기술에 대한 예술의 공로는 쉽게 망각되곤 한다"
진중권 교수는 우선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두고 "그 연원은 매우 오래됐다"며 새로운 현상이 아님을 지적했다. 그는 "기술에 대한 예술의 기여는 간접적이며 장기적"이라며 "그 때문에 기술의 발전에서 예술이 발휘한 공로는 쉽게 망각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1960년대에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오늘날 컴퓨터는 계산기보다는 영상매체로 이해되고 있다"며 "또 1960년대 백남준의 실험은 어리석어 보였지만 이 테크놀로지의 광대가 했던 예술적 실험들은 오늘날 대중의 일상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디지털의 대중은 영상의 수신자에 머물지 않고 키보드나 컨트롤 패널로 영상을 조작한다"며 "페터 바이벨의 말대로 '올드미디어의 아방가르드가 뉴미디어의 파이어니어'가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진 교수는 지난해 한예종의 통섭 국제 심포지엄에 초청되 미디어 아티스트 사이먼 페니의 말을 소개했다.
"기술의 예술사라는 관점에서 저를 화나게 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이룩한 기술 혁신의 역사가 끊임없이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죠.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수행했던 근본적이고 기술적인 연구의 예가 많습니다. 그것들은 망각되었다가 10년 또는 30년 후에 상업적이거나 학문적 맥락에서 다시 발명되곤 하지요."
진 교수는 "예술이 기술의 개발에 영감을 제공한 예는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실험의 대부분은 산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단기적인 수익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이나 경영의 관점에서 그 시도들은 원래 어리석은 것이었다"며 "예술과 기술의 결합 역시 산업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 인문학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
▲ 진중권 교수는 "산업이나 경영의 관점에서 그 시도들은 원래 어리석은 것이었다"며 "예술과 기술의 결합 역시 산업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학술심포지엄 |
진 교수는 "그러나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첫째는 전통적으로 따로 존재하던 영역을 융합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이라며 "예술가는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엔지니어에게 기술적 불가능을 요구하고, 엔지니어는 예술적 감각의 부족으로 예술가의 섬세한 눈으로 보기에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두 번째는 사이먼 페니가 지적한 것처럼 디지털 기술 자체에 내재된 군사적, 산업적 함의"라며 "디지털 기술은 원래 예술이 아니라 산업과 군사를 위해 개발된 것이고, 깊은 바탕에서 디지털 기술은 산업과 군사의 프레임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 때문에 기술과 예술의 결합은 또한 인문학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디지털 예술 실천의 미학을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진중권 교수는 "미래를 이끌 새로운 예술 형태는 아티스트, 엔지니어, 인문학자의 삼각 컨소시엄이 될 것"이라며 "즉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아직 없는 것'을 떠올리고, 엔지니어링이 이를 실현하며, 인문학자들은 그 인문학적 맥락을 집어주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끊임없는 소통으로 이론·기술적 어려움 극복할 수 있을 것"
이어 토론에 나선 김환석 교수는 "효용성만을 중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지향하려는 AT의 태도에 동의한다"며 "그러나 당위적 문제와 현실적 문제를 구분해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령 대중예술 또는 문화 및 문화산업에 관철된 (도구적) 합리화의 논리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 겪는 어려움을 분석하는데 있어 현 사회의 교육제도 및 사회화 과정 등의 간극 등을 고려한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며 "현재의 과학기술 역시 그 목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선행한 후 통합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재승 교수는 "과학과 예술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진 현 추세에서 첨단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매혹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으려면 단순한 기술 혁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예술과 과학의 통합에 대한 논의는 이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기용 교수는 "기술과 예술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통섭'적인 건축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 기술과 예술의 결합은 인류의 태동과 함께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예술-기술의 통섭에 대해서 논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것을 논의해야만 하는 현 사회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더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30년간 살아가던 집을 때려 부수는 것을 경축하며 재건축을 하는 나라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며 "이런 나라에서 예술-기술의 통섭에 관한 논의는 오히려 호사스럽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심광현 교수는 "기존 사회의 기준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통섭은 어렵지 않는가'라고 말하곤 하지만, 곧 충분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의 기술을 위해선 140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한다"며 "140번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진중권 교수가 말한 '어리석은' 행위이고, 이를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원동력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는 "통섭의 과정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이론적·기술적 어려움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경계를 허물 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예술과 학문, 과학기술의 결합이 특정 계층만이 아닌 전체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논의가 전문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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