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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간의 벽을 깨라. 연결하고 도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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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간의 벽을 깨라. 연결하고 도약하라"

[통섭을 말하다 ②] 함께 도약하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면서 시작된 '한예종 사태' 이후 '통섭 교육'이 화제가 됐다. 문화부는 한예종 감사 중 상당 부분을 통섭 교육에 할애하면서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앞서 유인촌 장관이 통섭 교육을 두고 "한예종은 원래 하던 일이나 하라"고 일갈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정말 통섭 교육은 예술 교육, 또는 '기초 예술'과 무관한 것일까? '통섭'의 기본적인 뜻은 '서로 다른 학문 간, 장르 간의 융·복합'이다. 한예종 통섭 교육 사업은 예술(Art) 장르 간, 그리고 예술과 과학기술(Technology) 간의 융합에 중점을 맞춰 진행돼 왔다. 국내 학계에서는 수 년 전부터 통섭이 화두에 올랐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추진하려는 시도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중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시민과학센터는 지난 15일부터 매주 수요일, 4회에 걸쳐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 간 공동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 간 통섭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심포지엄에는 예술, 과학, 공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30여 명이 참석해 토론을 벌인다.

<프레시안>은 통섭, 그리고 통섭 교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지난 22일 서울대학교 규장각 대강당에서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간 공동학술심포지엄' 3차 토론회가 '21세기 과학기술혁명과 학문간 통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은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통섭'을 두고 포괄적인 설명을 전개했다. 심광현 교수는 최근 한예종 사태에서 감사가 집중됐던 U-AT(통섭 교육 사업)을 주도한 미래교육준비단 단장을 맡아 왔다.

이어 박진희 동국대 교수,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 최갑수 서울대 교수, 최종덕 상지대 교수, 최성만 이화여대 교수가 토론에 나섰으며, 사회는 강내희 중앙대 교수가 맡았다.

▲ 지난 22일 서울대학교 규장각 대강당에서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간 공동학술심포지엄' 3차 토론회가 '21세기 과학기술혁명과 학문간 통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프레시안

"차이를 승인하고 연결하는 것, 통섭의 지향점"

"오늘날 필요한 새로운 형태의 지식생산의 패러다임을 '비환원주의적(수평적) 통섭'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새로운 지식 생산의 패러다임은 무엇보다도 수백, 수천 가지의 분과학문과 장르들의 벽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지식들 내부에서의 적극적 소통의 촉진을 지향하는 인식틀이다."

심광현 교수는 통섭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렇게 분과적, 장르적 지식의 경계를 넘어 횡단한다고 해서 하나의 중심 원리에 의해 모든 지식들이 통합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심광현 교수는 "오히려 차이를 승인하고 동시에 이를 연결하려는 인식틀이 바로 '비환원주의적 통섭' 혹은 '수평적 통섭'이 지향하는 바"라며 "그렇게 해야 지식과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지식들 간의 공진화와 연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광현 교수는 "'통섭'이라는 개념은 어원상 '함께 도약하기"(consilience=jumping together) 를 뜻한다"며 "수많은 지식들이 양팔을 벌려 손을 잡고 함께 도약하면 다양한 유형의 지식들 간의 결합(학제 간, 복합, 융합, 통합 등) 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유형의 도약의 귀결은 미리 결정될 수 없지만, 반복되다 보면 마치 여러 실들이 꼬이듯 여러 지식들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지식들 간에 '가족적 유사성'이 형성될 수 있다"며 "이렇게 얻어지는 가족적 유사성은 결국 전체 지식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확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심 교수는 "이렇게 지식들 사이의 소통이 강화되면, 이제까지 서로 격리되어 있던 예술-인문학-사회과학-과학기술-사회적 실천들 간의 중첩된 연결망의 전체 지도에 근접해갈 수 있다"며 "이 지도는 하나의 지구적 자연 공간 내에서 수백 개의 국가들과 수천수만 가지 유형의 사회집단과 공동체들, 그리고 세계 60억 이상의 개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과거보다 더 선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식들 간의 통섭이 반복되면 불필요한 지식의 생산과 습득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며, 어떤 지식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또 디지털 아카이빙 기술의 발달은 지식들 간의 통섭을 촉진하면서 전문가와 대중,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게 될 것이고, 과학기술을 비롯한 제 지식들의 '탈신비화'를 통해 각자의 역할의 재정립을 촉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득권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억제한다"

심광현 교수는 "물론 이런 장미빛 그림이 쉽게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기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한 세기 이상 지속된 낡은 지식생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통섭'이라는 작업 자체가 방대한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이유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자들이 새로운 지식생산 패러다임이 대학이나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전면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오히려 지식의 통섭을 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촉진하면서 새로운 소통기술을 자본과 권력의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서만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심 교수는 "20세기 전반의 예술혁명과 과학혁명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질적 분야들 간의 대립과 반목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협력을 방해해 왔다"며 "찰스 스노우는 1959년 <두 문화>에서 당시 팽배한 인문학과 과학기술 간의 대립의 심각성을 경고하면서 인류의 미래가 양자의 협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 바 있으나 이런 위험은 오늘날 더 심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이런 노력이 당위에 머물지 않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며 "'복잡계 과학'이라는 새 패러다임을 천명하면서 1984년 산타페 연구소가 설립되었던 것이나,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목표로 한 1985년 MIT 미디어랩의 출범, 1992년 쾰른의 ZKM, 1997년 카네기멜론대학의 ETC의 출범, 80년대 초 린츠에서 출범한 뉴미디어 아트의 국제페스티벌 아르스 엘렉트로니카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심광현 교수는 "그러나 이런 제도적 장치들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20년에 걸쳐 다양한 난관을 넘어서기 위한 지속적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이질적 분야의 만남이 단순한 산술적 결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마치 발효식품이 최소한의 숙성 과정을 필요로 하듯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과학기술의 공동연구 방식과 실험실 같은 연구형태를 예술과 인문사회과학 연구에도 적합한 형식으로 전유하여 전통적인 개인 연구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집합적 연구와 교육의 형식을 창안하는 일부터 착수할 필요가 있다"며 "학제적이고 융복합적인 방식의 새로운 학술운동과 교육운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천 없는 이론적 담론, 진정한 인문학 정신 잃을 수 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최성만 교수는 "통섭의 방법론으로 학문과 사회의 질서를 재조직하자는 주장에 적극 찬성한다"며 "그러나 통섭은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관찰을 통해 실천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실천이 없는 이론적 담론만으로는 진정한 인문학의 정신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섭적 연구를 진행할 연구자들의 열린 자세와 애정,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이 중요하다"고 거듭 지적했다.

임경순 교수는 "피터 갤리슨은 앤디 워홀의 작업을 보면서, 예술가와 과학자가 정말 비슷하다고 주장했다"며 "예술 작업 또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만들지 않고 과학 작업처럼 다양한 시스템과 공정을 거쳐나가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 과학은 주관적인 요소들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현대 예술은 점차 거대 기술에서 하는 것을 포섭하는 경향이 보여진다"며 "과학, 기술, 예술이 분리되어 있다는 예전의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 임경순 교수는 "피터 갤리슨은 앤디 워홀의 작업을 보면서, 예술가와 과학자가 정말 비슷하다고 주장했다"며 "예술 작업 또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만들지 않고 과학 작업처럼 다양한 시스템과 공정을 거쳐나가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앤디 워홀의 <Moon Walk>. ⓒ프레시안

한편, 최종덕 교수는 "학자들 간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학생들에게는 글쓰기와 말하기 방법을 가르치는 것부터가 통섭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한국 대학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또 과학자들은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한편 인문사회학자들은 과학을 모르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장에서 화석이 나오고 유물이 나올 때, 어떤 이는 그 속에서 시간과 역사를 만나는 반면 어떤 이는 '공사비가 늘어나겠구나'라고 한다"며 "시간이 없는 과학은 깡통과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종덕 교수는 "현대 과학이 고전 과학과 다른 점은 바로 '시간'을 인식했다는 것의 차이"라며 "시간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낙동강을 갈아엎겠다는 생각도 가능하고, 시간 개념이 없는 생명 연구는 황우석 같은 과학자 밖에 낳지 못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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