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분석] 노정간 대화의 틀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분석] 노정간 대화의 틀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27일 총리-양대 노총 위원장 회동, 무엇을 남겼나?

27일 이해찬 국무총리와 김대환 노동부 장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회동은 별다른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지난 7월 이후 노·정 대화가 단절됐던 상황에서 이 총리의 극적인 대화 제의로 마련된 이 자리도 노-정간 입장차를 넘어서지 못한 것은 현재 노정 간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회동 직후에 진행된 총리실과 양대 노총의 브리핑과 각 주체의 핵심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이번 회동이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화 재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화 결렬'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 '노사정' 아닌 '노사' 중심으로 기울어**

이날 밤 11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총리실과 양대 노총은 차례로 이번 회동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총리실의 브리핑 자료는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사회통합위원회 등 세 가지 쟁점을 놓고 이번 회동이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우선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논의 결과에 대해 총리실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비정규직 법안은 노사간의 대화를 존중하여 국회에서 심의·처리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한다"(총리실 브리핑 자료

주목할 표현은 '노사간의 대화를 존중'이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그간 노동계가 노사간 자율대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의견이 다소 반영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은, 과거에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위해 구성됐던 국회 중심의 대표자회의는 그 주체가 '노사정'이었지만 이번 정기국회의 법안 논의는 '노사'를 중심으로 진행될 여지가 있다는 짐작도 가능하게 해준다. '정부가 지원한다'는 표현은 기존의 '노사정' 중심 논의구조에서 정부측은 한발 물러나겠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회동에 참석했던 각 주체의 보좌진에 따르면, 이것이 노사가 독립적으로 대화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국회는 그 의사결정에 따른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양 노총은 '노사간의 대화와 결정을 존중하여', 노동부는 '노사간의 의견을 수렴하여'라는 표현을 각각 주장했고, 그 절충적(다소 노동계에 기울어진) 표현인 '노사간의 대화를 존중하여'가 채택됐다는 것이다.

물론 총리실의 브리핑은 공동합의문의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이용범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총리는 노사간 대화를 존중한다는 의지를 보였다"며 "하지만 장관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고 정부의 입장이 정확히 뭔지에 대한 확답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로드맵, 핵심 논의주제는 아니었던 듯**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노동부가 노사간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 논의할 것을 정부는 노동계에 제안했다"(총리실 브리핑 자료)...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로드맵)은 이날 회동의 핵심 화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연내 입법화가 사실상 힘들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 연장선에서 정부여당의 핵심 당사자가 로드맵 처리에 대해 최근 발언한 내용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노사정위원회를 상대로 진행한 국정감사에서 김금수 노사정위 위원장이 로드맵 처리와 관련해 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은 로드맵 34개 항목을 노사간 의견일치가 쉬운 항목과 쉽지 않은 항목으로 나누면서 "모든 항목을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쉬운 항목부터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자문기관인 노사정위의 수장이 한 이같은 발언은 정부 내에 '로드맵의 연내 일괄처리가 힘들다'는 인식이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여당 인사인 이목희 의원도 27일 국감에서 로드맵에 대해 한 수 거들었다.

이 의원은 "34개 항목이 모두 필요한 것인지 점검해 보겠다"며 "시급하거나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닌 것까지 전체로 한꺼번에 처리할 필요가 있나 싶다"며 로드맵 내용 자체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이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선후경중을 가려서 우선 시급한 것, 매우 비중이 높은 것을 우선 처리하고, 나머지는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권 내에도 연내 일괄처리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상당히 퍼져 있는 상황 속에서 열린 이날 회동에서 노측도 사측도 로드맵을 놓고 전면전을 벌여봐야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똑같이 했을 공산이 크다.

***노-정간 대화 틀의 형태에 대해선 아무런 결정도 없어**

로드맵과 관련된 브리핑 중 정작 중요한 대목은 "노동부가 노사간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 논의"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노동계에 '노동부가 주관하는 대화의 틀'을 제안한 것이다. 이 대목은 총리실의 브리핑 자료에서 노-정 대화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표현이다.

사실 이 대목이 이날 회동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대목이 바로 노정간 견해차가 큰 부분일 뿐만 아니라 노정관계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간 대화의 틀과 관련해 노-정은 세 가지 안을 두고 고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총리 주관 대화(양대 노총 제안), 노동부 주관 대화, 노사정위 주관 대화(정부 제안)로 주체별로 의견이 달랐다.

일단 양대 노총의 제안은 총리측이 "노동문제만 특화해 총리가 주관하기 힘들다"는 뜻을 표명하면서 거부됐다. 나머지 노동부 주관 대화와 노사정위 주관 대화 역시 양 노총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양대 노총이 김대환 장관 퇴진 요구를 철회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관과의 직접대화를 의미하는 노동부 주관 또는 노사정위 주관의 대화 틀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해석과 관련해 이용범 한국노총 기조본부장은 "장관 퇴진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확인했다.

요컨대 이날 회동은 최대 쟁점인 노-정 대화 틀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이뤄내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사회통합위원회 문제에 대해서는 노정간 대화의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음이 확인된다.

***사회통합위원회, 노정대화의 끈이 될까?**

"총리는 노동계가 사회적 의제와 관련된 과제에 많은 관심과 실천을 통해 사회적 책임성을 갖고 그 대표성에 걸맞는 사회적 역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정부는 노동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통해 양극화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의제를 다룰 '사회통합위원회(가칭)'의 구성을 제안했으며, 이에 노동계도 적극 동의했다"(총리실 브리핑 자료)

다소 장황하게 기술된 이 대목은 노정이 '사회통합위원회'의 구성을 명분으로 대화를 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사회통합위원회 구성에 관한 이 브리핑은 노동계·노동부의 수준이 아니라 노동계·시민사회단체·정부(노동부 상위 단위)를 포괄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어 유의할 대목이다.

즉 양대 노총은 노동부와의 직접대화를 피할 수 있고, 정부로서도 이 대목을 대화단절을 극복할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기구를 만든다는 발상은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정 모두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따라서 이날 회동에서 노정 대화의 후속타를 낳을 수 있다고 짐작되는 것으로는 '사회통합위원회'에 관한 노정간 합의가 유일하다. 그러나 사회통합위원회 구상이 명확하지 않고 참여대상도 애매하다는 점에서 사회통합위원회에 관한 논의가 탄력성 있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의미에서 노정 관계의 개선은 아직까지는 여전히 난망한 상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