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10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에 이어 12일 오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현 노-정 관계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노-정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청와대와 총리실이 나서야 한다"며 '대통령-국무총리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는 김대환 노동부 장관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동시에 올해 하반기 노-정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김대환 장관에 대해 "인간적 신뢰마저 잃어버렸다"며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한 이수호 위원장이 '김대환 장관이 새 판을 짜자고 나서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김 장관이 새 판을 짜자고 할 리가 없다.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밖에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불거진 양대 노총의 통합 논의에 대해 1국 1노총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통합 논의는 (점진적이 아닌) 별안간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간 민주노총 관계자들과 100여 차례 만나 대화하면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혔다"며 "다만 기득권에 집착하는 소아병적인 일부 중간 간부들이 통합 논의를 거부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용득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노·정 갈등 수준을 어떻게 보고 있나?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 정도의 갈등 수준을 보인 적이 없었다. 가장 심각한 상태다. 정부와 한국노총이 자리를 같이 한다거나, 공동사업을 하는 것이 완전히 단절됐다. 최초의 일이다. 1987년 이전 한국노총이 유일노총이던 시절에도 장관 퇴진 혹은 대정부 투쟁을 한 사례가 없다.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후 수많은 대정부 투쟁을 하면서도 노동위원회 만큼은 참여했다. 지금은 청와대 혹은 총리실이 아닌 제3자가 조정하려고 해도 안 되는 상황이다."
- 노·정 관계 파국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말하자면 매우 길다. 시기적으로 보자. 김대환 장관 취임 초기에 양대 노총은 개인적 친분뿐만 아니라 노동을 전문으로 연구했던 교수 출신이어서 기대가 많았다. 김 장관도 노동계에 대한 기대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장관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노동계가 협조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던 것 같다.
지난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노사정 각 주체를 청와대로 불러 노사정 대타협을 제안해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꾸려졌다. '사회적 대타협'이 노 대통령의 의지였는지, 장관의 뜻이었는지 모르지만, 정부는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모든 노력을 다해야 했다. 문제는 진정성 없이 노력도 일천했다는 것에서부터 발생했다고 본다.
***"노-정 관계 파국,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자신들이 그림을 그리면, 양대 노총이 알아서 따라올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지난해 6, 7월 두 차례 열린 뒤 8월에 중단됐다. 민주노총이 LG-칼텍스정유 노조에 직권중재가 떨어진 것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으로서는 대표자 회의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거다. 그래서 대표자회의는 중단됐다.
나는 청와대나 노동부가 진정 사회적 대타협을 원했다면, 민주노총을 그런 식으로 자극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봤다. 또한 민주노총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두 가지 다 노동부와 청와대가 방기하면서 대표자회의, 즉 사회적 대타협 시도는 좌초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매우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적 대타협이 어디 쉬운가? 중간중간 고비가 발생하면, 여러 채널을 통해 분위기를 만들고 반발을 무마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정 파국의 시작을 지난해 노사정 대표자회의 중단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위원장은 간간이 노·정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김대환 장관의 노조 비하 등의 발언을 꼽았는데…
"노사정 대표자회의 중단 뒤에 장관은 사태를 무마하기는커녕, 막말을 쏟아내지 않았나? 양대 노총을 겨냥해 '민주주의에 편승한 조직'이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다. 장관은 그 때 이후로 수많은 문제 발언을 했다. 오죽하면 '김대환 어록'이 있다고 하지 않나.
***"김대환 장관, 공인이면 공인답게 말하라"**
김 장관이 국가인권위원회보고 뭐라고 말했나. '무식하면 용감하다', '바빠서 돌부리를 캐지 못해 지나간다' 등등. 비정규법안 처리가 장관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발악을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공인은 언론에 말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정치 생애가 끝난 공인이 한두 명인가.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지난 총선 당시 노인 비하 발언을 했다가 그 말에 책임 지고 국회의원에도 당선되지 못한 것 아닌가.
인권위에 대한 장관의 막말이 나오고 나서 민주노총은 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안 그랬다. 비정규법 만큼은 대화로 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단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다시 제안했다.
그 당시에도 장관은 대화에 의지가 없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할 때도 장관은 대화 주제에 대해 논의를 하기는커녕, 정부 법안 외에는 단 한번도 다른 의견을 보이지 않았다. 대화 분위기 조성은커녕 남이 얘기하면 무조건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좀 알고 이야기 하라'는 식으로 면박만 줬다.
우리가 보기에는 노동부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법안도 재경부 등의 요구로 상당히 후퇴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최종 법안만 고집하는 것은 대화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장관은 대표자회의를 할 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의자를 돌려 돌아 앉더라. 오즉하면 한 사측 대표자가 '장관님 그래도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해야죠'라고 말했겠나."
***"김태환 열사 사망사고 이후 김대환 장관에 대한 인간적 신뢰도 잃어버렸다"**
- 지난 5월 고 김태환 씨 사망사건 이후로 한국노총은 강경노선으로 급변했는데….
"서로 노선이 다르고, 이념과 철학이 다르더라도 인간적 신뢰만 있다면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장관은 인간적 신뢰마저 저버렸다. 지난 5월 김태환 열사가 운명했을 때 장관은 위로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심지어 '노사분쟁 현장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안된다.
우리나라는 이웃 마을에 애사가 생겨도 가서 위로하는 미풍양속이 있다. 물론 그런 원칙이나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삶이나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장관은 한국노총 간부가 역살당했는데도 일언반구 없었다. 나는 그 순간에 장관에 대한 인간적 신뢰마저 잃어버렸다. 실낱같던 기대도 포기했다."
- 이 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사회적 대타협에 많은 강조점을 뒀다.
"맞다. 나는 사회적 대타협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국가 경제의 책임있는 한 주체로서 외자유치, 고용창출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고용창출 문제에 대해 무턱대고 정부나 사용자에게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노동계)도 할 부분이 있으면 하려고 적극 검토했다.
***"정부, 사회적 대타협 사사건건 방해했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노와 사다. 내가 5~6년 동안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본 경험상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빠지는 것이 낫다. 정부는 노사가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노사에 최신 정보를 제공해주는 일로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 얼마 전 방한한 네덜란드 빔콕 총리도 나의 구상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정부는 나의 구상에 공개적으로 반대는 안 하면서 물밑으로는 방해와 간섭으로 일관했다. 더구나 김대환 장관은 자신 이외에 누구도 노동문제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청와대 노동팀이나 총리실은 김 장관 앞에서 무력했다. 비정규 법안에 대한 노사정 협상 당시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이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관의 일방 통행을 제어하지 못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나서야 노-정 관계 정상화 될 수 있다"**
- 열린우리당이 조율에 나서는 건 어떻게 보나?
"열린우리당 시스템을 보면, 누가 노동문제를 다루는지 알 수 없다. 제5정책조정위원장, 환경노동위원장과 간사 등 세 사람을 열심히 만났다. 그들은 듣고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만나면, 일이 풀리든지, 아니면 안 풀리든지 분명했는데, 요즘에는 '립 서비스'만 있고 실질적 행동은 없다. 당 중진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최소한 노사정 조정특위라도 만들어 연구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 그래서 노동계는 청와대나 총리실보고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청와대와 총리실이 과연 나설 수 있을까?
"그것도 미지수다. 청와대, 총리실 모두 조정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양 쪽 다 김대환 장관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청와대나 총리실 하는 일이 뭔가. 일이 잘 안풀릴 때 나서서 조정하는 것 아닌가.
누구도 못 나서게 하면 장관 스스로가 잘 하든지, 그것도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됐던 ILO 지역총회 연기 건도 그렇다. 노동계는 이미 7월 중순 경 ILO 지역총회 불참 의사를 밝혔다. ILO의 한 간부가 우리 의사를 알고 노동부에 '큰일 났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문제 없다'고만 답변했다. 그러다가 8월 12일 양 노총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불참 선언을 하고 나서야 노동부가 움직였다. 그것도 우리와 대화로 풀 생각은 하지 않고, 방콕(ILO 아·태 사무소)과 제네바(ILO 본부)를 방문하기에 급급했다. 노동계 빼고서라도 지역총회를 열자고 제안했던 모양인데, 그 역시 장관의 전근대적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국에서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장관은 또 어땠나. 장관은 비밀리에 노총 간부를 만나지 않았나. 조직 분열을 기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총 간부와 비밀리에 만나는 것이 장관이 어디 할 일인지 모르겠다. 또 언론플레이 한답시고, 일언반구 언급 없이 기자회견으로 대화를 제의했다.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아마도 청와대의 문책을 대비해 명분쌓기가 아니었나 싶다."
***"김대환 장관과는 어떤 대화도 않는다"**
- 김대환 장관과의 대화 여지는 전혀 없나?
"장관과는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또 모든 사회적 대화기구 불참도 계속 이어진다. 근본적인 변화나 해결 없이 대화 재개는 없다. 하지만 청와대나 총리실 주도로 마련된 자리에 김대환 장관이 나오는 것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 장관이 나와 청와대에서 직접 김대환 장관이 대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목격하길 바란다."
- 이수호 위원장은 장관이 새 판을 짜자고 나서면 만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놨는데….
"새 판을 짠다고 할 리도 없고, (김 장관 주도로) 새 판이 열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본다. 새 판이 열리기 위해서는 김 장관이 가시적인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내 판단으로는 불필요한 기대다. 이수호 위원장은 성품이 워낙 훌륭해서 장관에게 실낱 같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어떤 기대도 없다. 현실적으로 힘들다."
- 하반기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
"민주노총과 공조를 더욱 강화해서 싸워나갈 것이다. 다만 민주노총은 11월 총파업 등 구체적인 투쟁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우리는 좀 더 두고 볼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로드맵이든 비정규법안이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 힘들 것이다. 국회가 무리수를 두지 않는 이상 별다른 진전은 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강행처리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민주노총과 전면적 공동투쟁에 들어갈 것이다."
***"1국 1노총은 역사적 정당성 있다"**
- 공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최근 양대노총 통합에 관한 언론 보도가 많았다.
"민주노총 출범 때부터 나는 1국 1노총에 대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업종이나 이념을 달리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현재와 같은 1국 2노총 시스템은 매우 불합리하다. 한 예로 통합 노총이 파업을 하는 것과, 두 노총이 파업하는 것은 파괴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민주노총이 약 70만, 한국노총은 약 90만여 조합원이 있다. 통합돼 160만 조직이 총파업을 하면 그 파괴력은 현재의 수백 배가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반 조합원도 공감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노총 조합원을 상대로 통합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보니 73% 이상이 통합 노총 건설을 지지했다. 민주노총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1국 1노총 시대를 여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운동 원칙으로나 정당하다.
나는 이런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총 관계자와 만나면 수차례 1국 1노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 보도가 촉발된 지난 6일 양대 노총 위원장, 사무총장 4자 회동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통합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 6일 회동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
"공동투쟁, 공동사업을 위해 상설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상설협의체는 향후 현안 투쟁뿐만 아니라 5.1절 행사나 임금인상 요구율 결정 등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이수호 위원장과 나누었다. 나는 특히 2007년 복수노조 시대가 열리게 되면 노동계 분열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통합의 필요성을 좀 더 강조한 편이었다. 한 마디로 각 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가 대기업 노총 등의 이름으로 독자 노총을 결성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노동운동은 큰 위기에 직면한다는 주장이었다."
***"소아병적 중간간부 설득이 통합의 관건이다"**
- 통합의 필요성은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하지만 실현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텐데….
"솔직히 소아병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 때문에 쉽지 않을 성 싶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에 집착해 통합노총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각 노총 하위 조합원들과 상층 지도부는 모두 통합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있지만, 정작 중간간부들 사이에서 양 노총의 차이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통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통합은 별안간 이뤄질 것이다. 지난 1년간 민주노총과 100여 차례 만났다. 그러면서 상당한 상호 이해를 하게 됐고, 이런 노력이 모여서 통합 논의가 가시화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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