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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색깔탄'이 '불발'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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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색깔탄'이 '불발' 된 배경

[김종배의 it] 조선-한나라 '막강 파워' 저물다

또 그 타령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개입으로 판정했는데도 '조선일보'는 색깔론과 음모론을 또 펼친다. "국민은 이번 파동을 통해 대한민국 법원이 횡적으론 이념의 좌우로, 종적으론 세대간 갈등으로 크게 찢겨 있고 사법부 안에 세계 어느 나라 사법부에도 없는 사조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재판 개입)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법원 인사이동이 끝나고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 취임한 뒤에야 '폭로'가 이뤄지면서 법원 안팎에선 '뭔가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 제기됐다"고도 한다.

평가는 안 하련다. 이미 반박이 적잖이 나왔다. 대신 이 점만 뽑아내련다. 무위로 그쳤다는 사실, 무력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색깔론과 음모론을 들고 나오자 한나라당이 호응했다. 한나라당의 주요인사들이 나서 법관의 독선을 비난하고 법관의 사법부 흔들기를 힐난했다. 이른바 조선일보-한나라당 연합이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도 먹혀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신문사와 정당이 손을 잡았는데도 판은 마음대로 조율되지 않았다.

왜였을까? 진상조사단은, 그리고 대법원 수뇌부는 왜 힘의 논리를 외면했던 걸까?
▲ 3월17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오로지 진실만을 좇는 양심 때문이었을까? 사법부 독립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믿고 싶지만 믿기 힘들다. 애초부터 그런 태도를 견지했다면 '신영철 파문'이 이렇게 커졌을 리가 없다. 진상조사단 구성 이전에 몰아주기 배당에 대해 '문제없다'는 막무가내식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수의 언론은 다르게 풀이한다. 파문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분석한다. 신영철 대법관에 면죄부를 주면 일선 판사들이 집단반발하면서 사법파동으로 번질 것을 대법원 수뇌부가 우려했다고 풀이한다.

이 분석을 대입하면 들어맞는다. 진상조사단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서는 칼을 들이대면서도 이용훈 대법원장의 석연찮은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파헤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살을 주고 뼈를 지키는 타협용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대법원 수뇌부가 외부의 '힘'보다 내부의 '힘'을 더 중시했고 더 우려했다는 바로 이 점이 다음과 같은 반문을 성립시킨다.

내부의 '힘'의 발원지가 '조선일보' 주장처럼 이념에 경도된 일부 판사들의 사조직이었다면 대법원 수뇌부가 흔들렸을까? 수직적 서열구조의 정점에 있는 수뇌부가 막강파워의 신문사와 정당의 엄호사격까지 받는 마당에 굳이 '일부'의 '음모'에 휘둘려야 했을까?

그럴 이유가 없다. 내부의 '힘'이 정말 소수였다면 전법대로 하면 됐다. 고립 후 섬멸하는 고전적인 방법을 쓰면 됐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국민으로 하여금)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게)" 하는 그들이니까 응당 그렇게 해야 했다.

다르게 봐야 한다. 고립시키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내부의 '힘'이 컸다고 봐야 한다. 대법원 수뇌부가 사법파동을 우려할 지경에 이를 정도로 내부의 '힘'이 컸다고 봐야 한다.

이런 힘은 단지 '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신영철'에 비판적인 판사가 옹호하는 판사보다 많아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결코 아니다. 법원은 국회처럼 다수결 원리가 강요되는 조직이 아니다.

상호작용의 결과로 봐야 한다. 법원의 법리와 국민의 상식이 교호작용을 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봐야 한다. '작은 언론'과 '게릴라 언론'이 벌떼연합을 구축하면서 탄력을 부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상호작용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새롭게 보인다. 고립된 건 '조선일보'다. 여론을 선도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원내 제1당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1등신문의 파워를 발휘하려고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한 언론이, 한 시각이, 한 논조가 여론을 주무르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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