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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 조직, 이번엔 바꿔야"

[토론회] 영미식 '법조일원화 시스템'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자

"지금 이용훈 대법원장에 의해 대가 약한 판사들로 낙인 찍힌 일단의 소장 판사들은 아마도 이 기괴한 체제의 패자들이거나 거의 패자들이 되가는 상태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법시험에 몇 번 떨어져서 늦은 나이에 판사가 되었거나, 판사가 되었더라도 비교적 낮은 성적으로 되었거나, 그 연수원 성적의 굴레 때문에 승진도 늦고 가끔씩 인사평정권자의 눈총도 받는 처지이거나, 차라리 집어치우고 개업하자고 해도 전관예우를 기대할 수도 없고, 대형로펌에 가기도 어렵고, 재벌의 법무팀에도 끼기 어려운 상태이거나, 동료 판사들 이외에는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사회적 명성이나 정치적 네트워크는 아예 상상할 수도 없는 판사들일 것이다. 그저 밤늦게까지 재판기록과 싸우고, 밀린 숙제하듯이 판결문쓰기에 매달리는,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가라는 대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고, 어쩌다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끼리 모여 폭탄주나 한 잔씩 돌리는 이름 없는 판사들일 것이다."

"오늘의 용기 있는 패자들을 내일의 승자로"

대한민국 법원의 분위기가 이렇다면 이러한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국민들은 매우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부)는 '촛불재판 압력' 사태의 본질에 대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불량 하이브리드 법원조직 내부에서 오래도록 승자들의 간섭과 지시에 시달리던 일군의 패자들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작년 여름 이후의 몇 가지 사건들을 계기로 마음을 모아 아우성("우리도 판사다"라고)치기 시작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우윤근 의원의 주최로 열린 '촛불재판 개입, 법원의 위기인가?' 토론회 발제자로 나서 현 사태를 이와 같이 정의한 뒤 "법원의 피라미드 형태의 관료제적 조직구조를 포기하고 영미식 법조일원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가 보기에 우리나라 사법부는 법원을 장악하고자 하던 과거 독재권력의 정치적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조직구조를 갖추고 늘어나는 재판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법원조직의 효율화를 이루는 등 '법원의 독립'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조직을 강조하다보니 '법관의 독립'은 실종된 상태인 것이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불량 하이브리드 조직"

이 교수는 사법부 구조를 '기괴하기 짝이 없는 불량 하이브리드 조직'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법원조직은 '대륙식 커리어시스템'과 '영미식 법조일원시스템'이 있는데 두 제도의 취약점만 모아놨다는 것이다.

▲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촛불재판 개입 관련 토론회. ⓒ프레시안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은 "한 번 판사면 죽을 때까지도 판사"라며 처음부터 판사는 판사, 변호사는 변호사로 두 직역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스스로도 대법원장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공증업무 등만 담당했다.

영미식 법조일원화 시스템은 경력을 가진 변호사 중 자격심사를 통해 판사를 임용하는 제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판사를 임용해 판사로 훈련시켜 재직하다가 피라미드 구조에 의해 변호사로 개업을 하게 되는 구조다. 대법관은 물론 고법 부장판사 등 관료화된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능한 위로 높이 올라간 뒤 퇴직을 해도 해야지만 '전관예우'의 수준이 달라진다.

이 교수는 "가인 김병로 선생의 배반당한 이상을 재현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불량 하이브리도 법원조직을 지배해왔고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저 승자들의 식견과 역량, 그리고 도덕성이 솔직히 역부족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신 "패자들의 개혁의지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 뿐"이라며 "심급제도 상의 상하위에 상관없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 법관들의 네트워크로 법원을 재구성하기 위해 종래의 관료제적 조직구조는 근본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즉 "모든 법률가에게 일단 개업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자기정체성을 가지게 한 뒤 그들 가운데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판사를 임용하는 사법민주화의 길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며 영미식 법조일원화 시스템의 도입을 제안했다.

"법관들, 승진 스트레스에 일을 못 한다"

토론자인 김갑배 변호사는 "최근 사법연수원 16기 40명 중 12명이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을 했는데, 17기 동기 4명이 돌연 사표를 썼다"며 "이유를 물어보니 승진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못하겠고, 내년에 탈락해서 모양새가 안 좋게 나가는 것보다 올해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 사표를 썼다고 한다"고 현재 우리나라 사법부의 '피라미드 구조'의 현실을 전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도 법조일원화에 동의하며 법원의 지방자치, 심급별 독립된 인사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법관을 뽑을 때 대구지법에서 그 지역 변호사들 중에 판사를 임용해 지역에서 평생 판사를 할 수 있게 보장해주고, 2심인 대구고법은 자격 요건을 강화해 따로 선발하는 등 심급별로 인사를 분리하자는 것이다.

한편 정정훈 변호사는 "(법조인들이) 스스로의 거울에만 비춰보는 폐쇄적인 '사법 에고이즘'이나 '사법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판의 당사자를 시각의 중심에 놓는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스캔들은 '법관의 독립 침해'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로 봐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법관의 독립은 국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정 변호사는 "베버식으로 표현하지면 법원의 관료화라는 쇠창살로 된 새장(iron cage)에 법관의 양심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갇힌 격"이라며 "대법관의 퇴진으로 끝내는 것은 사법행정권력과 법관권력 사이의 또 하나의 타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새장 속에서 법관의 양심만 구출해서는 안 되고 법관근무평정제도의 개선, 법원행정처의 문제 등 시스템 상의 퇴진이 필요하다"고 구조적 개혁을 주문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이자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우윤근 의원은 "법사위에서도 법관 인사제도 개선에 대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또 "이번 사태에 대해 한나라당 일각과 보수권에서는 이념적인 정치쟁점화를 하려 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념적 사안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보수세력의 정치쟁점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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