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어제 보도했다. "작년 여름 촛불사건 몰아주기 배당과 판사들의 집단 반발사태를 보고받은 이용훈 대법원장은 며칠 동안 위경련을 앓을 정도로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이번 이메일 사태도 대법원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도했고, "재판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뜻을 여러 채널로 신영철 대법관에게 전달했다"는 전 법원행정처 고위관계자의 말도 전했다.
▲ 이용훈 대법원장 ⓒ뉴시스 |
의아하다. 이 두 보도를 접하니 머리가 헝클어진다.
두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용훈 대법원장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셈이 된다. 신영철 대법관의 결격사유에 눈을 감고 그냥 임명 제청을 한 것이 된다. 대법원장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과정을 되짚으면 의아심은 더 커진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세 번이나 신영철 대법관을 외면했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로 있으면서 대법관 하마평에 올랐던 2006년 6월, 대법관 정원이 한 명 늘어난 2008년 2월, 그리고 김황식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이동해 한 자리가 비었던 2008년 8월,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을 내리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다.
그랬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을 선택했다. 결격사유가 발생했고, 그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을 임명 제청했다.
이건 누가 봐도 역주행이다. 결격사유가 불거지기 전엔 외면했던 사람을 결격사유가 발생한 후에 낙점한 것이니 역주행에 해당한다.
그래서 묻는다. 신영철 대법관은 어떻게 임명 제청될 수 있었을까?
상당수 언론과 법원 일각에선 이렇게 진단한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간섭' 행위를 '대법관 임명 제청을 위한 무리수'로 분석한다.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분석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 경위를 온전히 밝혀내지 못한다. '한국일보'와 MBC의 보도에 따르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위경련을 앓을 정도로 고심했다고 하지 않는가. 두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신영철 대법관의 '무리수'는 단어의 표피적 의미 그 자체로 해석해야 한다. 임명 제청권자의 눈 밖에 나는 악수를 범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신영철 대법관의 '무리수'와 이용훈 대법원장의 '낙점'은 호응하지 않는다.
달리 풀이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가능성을 올려놓고 무게를 재야 한다.
하나. 이용훈 대법원장의 의중과 임명 제청이 별도로 움직였을 가능성이다. 형식적으로는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권을 행사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쪽에서 좌지우지 했다고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 가설은 아주 민감하다.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해 근원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가설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반드시 검증해야 하는 문제다.
둘. '한국일보'와 MBC의 보도가 오보일 가능성이다. 두 언론이 파편적인 한두 전언만 듣고 섣불리 보도했다고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 가설이 현실로 확정되면 풀린다. 앞서 제기한 모든 의문은 일거에 해소된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간섭'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간섭'에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는 대법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몇 달째 벌어지던 '재판 간섭' 행위를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둘 다 문제다. 전자가 사실로 확정된다면 사법부 수장의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되고, 후자가 사실로 확정된다면 사법부 독립의 버팀목이 돼야 할 자율적 사법행정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