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도 비슷하다.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예의 '색깔론'을 들먹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기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시민들을 무조건 '좌빨'(좌파 빨갱이)로 보는 '우뻘'(우익 뻘짓군)의 집단인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타령만이라도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걸핏하면 '색깔론'을 들먹이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금 지난 1년이 '총체적 후진화의 1년'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색깔론'이 독재가 휘두른 전가의 보도였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그것이야말로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것이다.
▲ 신영철 대법관은 지난 6일 "법대로 하자고 한 것일 뿐, 압력이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며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
'시민 표창'은 주권자인 시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 사람에게 주권자인 시민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표창을 뜻한다. 이 영예로운 표창을 신영철 대법관에게 수여하는 것이 맞지 않겠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이룬 엄청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 사법고시와 전관예우의 철옹성 속에 은밀히 감춰져 있던 사법부의 작동 방식을 신영철 대법관은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신영철 대법관은 '촛불 집회'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판사들에게 다른 판사가 제기한 위헌제청을 사실상 무시하고 재판을 진행할 것을, 다시 말해서 위헌이 명백한 현행 집시법에 근거해서 '촛불 집회'에 대해 빨리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이메일과 전화로 강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뜻도 자기와 같다고 밝혀서 사실상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말이지,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진정 법과 질서를 지킬 생각이 있는가? 잠시 헌법을 보자.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의 무게는 너무도 크다. 아니, '법관의 독립'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에 이렇듯 단 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표현해 놓은 것이다. 만일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고 '상관'의 지시와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나라에서 누가 법을 믿고 살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기 십상인 현행 법관 인사제도 자체가 문제의 원천일 수 있다. 나는 신영철 대법관이 이 사실을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신영철 대법관에게 '시민 표창'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신영철 대법관은 대법관 자리를 탐해서 정권의 눈치를 보고 '촛불 집회'에 대한 판결을 서두르라고 압박했다는 시민의 판결을 결코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계속 '의도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 나는 정말 그에게 묻고 싶다. 신영철 대법관은 행위가 아니라 의도를 기준으로 판결했는가? 법률은 행위가 아니라 의도를 판단하는 것인가? 사실 신영철 대법관의 잘못은 단순히 판결을 독촉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위헌이 결정되면 무죄가 될 사람들에게 현행법대로 유죄를 판결하라고 독촉한 것이다. 판사가 무죄가 될 수 있는 것을 유죄로 만드는 사람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동료 판사가 위헌제청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조만간 유무죄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판결을 유보하고 그 결과에 따르는 것이 올바른 '디케'의 자세가 아닌가? 신영철 대법관이 그나마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은 한시바삐 자진사퇴하는 것뿐이다.
자진사퇴하고나서 신영철 대법관이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전관예우를 철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다면 그의 '의도'를 시민들은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떤 대법관보다도 더 훌륭한 법조인으로 시민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전관예우는 인사 제도보다 더 심각한 문제의 원천일 수 있다. 전관예우는 판·검사 출신 법조인들을 강력히 묶어주는 방대한 먹이사슬이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과 임종인 의원은 전관예우에 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전관예우 몸통은 대법관 출신'(<쿠키뉴스>, 2006년 10월 16일)이라는 기사는 그 놀라운 결과를 소상히 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하는 사건의 63%가 대법원 사건"이라며 "법조계 전관예우 악습의 몸통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라고 주장했다.
임 의원이 1990년 이후 퇴임한 대법관 32명의 변호사 개업 여부와 수임 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법관 재임 중 숨진 1명과 학계로 진출한 조무제, 배기원 전 대법관을 제외한 29명이 모두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 중 15명은 김앤장, 세종, 태평양, 화우, 광장 등 대형 로펌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 중 13명이 수임한 사건을 분석한 결과 4608건 중 2911건이 대법원 사건으로 평균 63.2%에 달했다. 이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법원 사건을 맡을 경우 심리불속행(상고 이유에 중대한 법령위반 등이 없을 경우 본안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 기각을 하지 않는 관행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일반 변호사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40%대인 반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평균 6.6%에 불과했다.
변호사별 대법원 사건 수임률은 이돈희(94.3%), 송진훈(92.7%), 정귀호(82.2%) 순이었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우 변호사 시절 대법원 사건 수임률이 74.6%로 4번째였다.
전관변호사들은 연봉도 '메가톤급'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 의원에 따르면 퇴직 판·검사가 대형 로펌에 진출한 경우 월급은 대법관 출신 8000만~2억 원, 법원장급 7000여만 원, 부장판사급 6500여만 원, 일반판사 5000여만 원이며 연봉으로는 6억~27억 원 수준에 달했다. 2000년부터 2004년 8월 중순까지 퇴직한 법관 3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5.6%(305명)가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개업자의 89.8%(274명)는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해 '사건 싹쓸이'가 이뤄지고 있다.
김 의원은 "법관은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양성한 자산인데도 오히려 법원의 안정성과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면서 "법관 출신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변호사 수임료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관예우라는 사실상의 불법이 버젓이 판치는 상황에서 판검사는 더 높은 전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민들은 사법부에 대해 총체적 불신을 품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평생 판검사로 검소하게 살았어도 변호사로 개업하면 몇 년만에 '갑부'가 될 수도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한 판결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신영철 대법관은 어서 자진사퇴하고 변호사 개업도 하지 말고 전관예우를 철폐하기 위한 사법감시 운동에 전념해서 그의 '의도'에 관해 올바른 시민의 판결을 받기 바란다. 그것만이 신영철 대법관 자신을 위해서도, 시민의 공익을 위해서도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 아니겠는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