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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에 대한 MB정부의 동문서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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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에 대한 MB정부의 동문서답

[기자의 눈]'되는 놈'만 밀어주겠다는 MB정부

2년 전 임업(林業)에 대한 기획취재를 구상했었다. 우리나라의 가구와 건축자재용 목재의 수입 비중이 높은 것을 보고 '국토의 70%가 산'이라는데 도대체 그 산들은 왜 '놀고' 있느냐라는 다소 발칙한 '돈벌이' 관점의 문제의식이었다.

사전취재를 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물어본 결과 대답은 한 가지였다. 나무를 심어 키우기 위해서는 간벌을 하고 쓸 만한 나무를 심는 수종 개량이 필수적인데, 수익을 내기 위해 짧게는 20~50년을 봐야 하는 사업이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국유림도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투기' 목적으로 땅 팔 생각만 가득한 민간에서 30년 앞을 내다본 투자가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되는 놈만 밀어주겠다"고?

<워낭소리>가 화제다. 이명박 대통령도 극장에서 관람했다. 영화를 보기 전 감독에게 "관객이 얼마나 들었냐", "(제작기간) 3년을 했는데 그렇게 돈이 적게 들었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풍경을 접하니 몇 가지 따져야겠다. 우선 독립영화계의 공분을 샀던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 예산이 올해 삭감됐다는 것이다. 제작비가 1억 원인 <워낭소리>는 이 사업을 통해 4000만 원을 지원 받아 비로소 관객들에게 선을 보일 수 있었다.

지난 12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독립영화 감독들과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달래기에 나섰다. <워낭소리>의 흥행이 정부 비판 여론으로 흐를 것을 염려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을 살펴보면, 독립영화 감독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유 장관은 "일단 제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부 지원해 주고 발전 상황을 봐서 될 만한 영화는 확실히 지원하고 아니면 중단하는 인큐베이팅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1년에 40명에게 개봉 지원을 해주는데 이것을 20명에게 확실히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될 놈만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워낭소리>의 제작기간은 3년이었다고 한다. 과연 <워낭소리>가 '된다'고 예측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특급 스타도 이름 있는 감독도 없어 외면 받는 독립영화계다. 특히나 '속도전'을 강조하는 이 정부에서 '어느 시골의 노인네와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소가 주인공'인 영화를 된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수개월 앞의 경기전망도 틀려 계속 수정하는 정부가?

"동네 극장 걸게 해달라"는데 "전용관 짓겠다"는 정부

'독립영화'의 정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유 장관의 발상이라 더 난처하다. 그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정부가 독립영화의 정신을 훼손할 만큼 너무 개입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맞다. 독립영화는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화는 내가 찍어 볼 테니, 극장에 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이 이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걸 이해 못 하고 '될 놈만 지원 하겠다'고 한다. 이 정부가 경제나 교육 현장에 강요해오던 '승자독식'의 논리를 문화계에도 확산시킬 모양인가보다.

유 장관은 이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던 날 "독립영화 관객이 50만 명이면 일반 영화 500만 명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독립영화는 '50만만 봐도 성공이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내거는 극장의 입장에서는 <워낭소리>가 5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도 개봉 첫 주말에만 43만5000명을 불러 모으는 <마린보이>에 더 눈길이 가는 법이다.

한 가지 더. 이 대통령이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고 언급, 독립영화 전용관을 추진할 모양이다. 유 장관도 "현재 25개로 흩어져 있는 독립영화 상영관을 한 곳에 집중해 '어디에 가면 독립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도 독립영화를 보고 싶은 열혈 관객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가 볼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해 '어디에 가면…'이라는 것 없이도 검색을 통해 어디에서 언제 상영하는지, 그 극장에는 어떻게 가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오히려 <워낭소리>는 동네 멀티플렉스까지 스크린 수를 넓히며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흥행 포인트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많은 극장에 개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없애버리고서는 독립영화를 극소수의 '전용관'에만 몰아넣겠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여론 잠재우기 반짝 관심'은 아니기를

<워낭소리>가 흥행의 순풍을 타고 영화 속의 느린 걸음과 '신뢰'가 화제가 되며 이명박 정부와 빗대는 소리들이 늘어갔다. 더불어 정부의 독립영화 지원책 변경을 비판하는 독립영화 감독과 제작자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고영재 PD는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워낭소리>가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의 마지막 수혜작이고, 앞으로는 좋은 독립영화들이 개봉도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감독들이 지난 11일 기자회견 다음날인 12일 유인촌 장관이 감독들과 간담회를 갖고, 15일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관람을 했다.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다. <워낭소리>의 흥행에 부담을 느낀 '여론 잠재우기'라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문화의 근간은 창조정신과 자율성이다. 이 관심이 일회적 반짝 관심이 아니라,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우리나라 독립영화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또 정부의 철학을 강요하기 전에 현장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인사는 "이명박 정부는 아이가 울면 똥을 쌌는지, 어디가 아픈지 알아보지도 않고 공갈 젖꼭지만 물리고 본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있는 제도 없애고 엉뚱한 소리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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