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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열광의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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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열광의 이유에 대하여

[이슈 인 시네마]개봉 한달 안돼 전국 15만 모으며 돌풍

80 노인과 40살 일소의 힘든 노동의 삶을 추적한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장안의 일대 화제다. 개봉 한 달이 안돼 이런 장르의 영화로서는 최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 15만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이런 추세대로라면 50만 관객도 무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반 상업영화라면 500만 관객에 이르는 수치다. 왜 사람들은 <워낭소리>에 열광하는가. 그 이유를 알아본다. – 편집자.

화제를 모으고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서 가장 좋은 장면은 잘 걷지도 못하면서 죽어라 농사 일에 나서는 최점균 옹을 어느 날 부인이 닥달한 끝에 시내에 있는 병원을 찾아 나설 때에서 보여진다. 80 먹은 할아버지를 달구지에 싣고 40 먹은 일소가 어그적 어그적 힘들게 걸어갈 때 그들의 뒤로 농민들의 FTA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 장면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컷은 너무 직설적이다. 감독의 정치성이 지나치게 드러나 있다. 감독이 이 다큐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 장면보다는 최옹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그의 일소가 주차장에 묶여 그를 기다리는 단 한 컷이 진짜 좋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할아버지는 그가 행여 감기라도 걸릴라 일소의 등에 비닐을 덮어두고 병원에 들어간 참이다. 일소는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그 일소 옆에는 병원 원장의 소유인 듯 꽤 값비싼 중형 승용차가 주차중이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도농간의 계급 차이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을까. 그런데 그게 투쟁적이라거나 살벌하게 비판적이라거나 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눈길을 잡는다. 이 장면은 이상하게 스러져 가는 지금의 농촌에 대한 서러움 같은 것을 담아낸다.

▲ 워낭소리

개봉 한 달 만에 전국 관객 15만 이상을 모으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워낭소리>의 힘은 바로 그같은 계급적 서정성에서 찾아진다. 서럽고 화가 나지만 그 분을 안으로 삭인다. 이 영화를 찍은 이충렬 감독이 자꾸 시선을 모으는 것은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하나의 일소가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80년을 힘들게 살아 온 한 농촌 노인과 30년을 우직하게 그의 곁을 지켜 온 일소는 (이 일소는 10살 때 그에게 '시집'을 왔다.) 기묘하게도 발걸음이 닮았다.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걸어가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터로 나가야 한다는 하층계급의 고집과 강박엔 지금의 시대를 지금의 시대로 있게 한 노동의 숭고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충렬의 카메라는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샷의 카메라마냥 낮게 낮게 이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 다큐에 감동하는 건 계급의식을 공유해서가 아니다. 이 다큐는 그보다 사람들을 보다 아우라가 큰 정서의 지점으로 다가서게 만든다. 바로 새삼 느끼게 되는 아버지에 대한 큰 마음의 그늘이다. 그 누가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이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서 이 영화를 보라며 입소문을 내는 건 그 때문이다.

<워낭소리>는 완벽한 다큐가 아니다. 감독의 정서적 삼투압이 너무 잦다. 클로즈 업이 너무 많으며 의도적으로 '작성한' 시골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배치된다. 이충렬은 할아버지의 고된 삶을 좇았다기보다 할아버지의 궂은 삶을 골라 전체적으로 알맞게 편성하고 편집해 냈다. 그의 의도는 순수하고 훌륭하지만 다큐가 지켜야 할 '의도적 거리두기'에는 다소 실패한 구석이 있다. 그건 아무래도 이충렬이 정통 다큐멘터리스트 출신이 아니라 시간 내에 연출의도를 살려야 할 방송 프로듀서 출신이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낭소리>는 근자에 보기 드문 진정성을 대중적으로 획득하고 유포했다는 측면에서 시대를 전진시키는 '불온함'을 지닌 작품이며 그것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찬사를 받아야 하는 작품이다.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태우는 것처럼 한 편의 독립영화가 영화계를 바꾼다. <워낭소리>는 얼마 전 개봉된 장편 독립영화 <낮술>과 함께 국내 영화문화, 영화미학의 판도변화와 세대교체를 이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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