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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한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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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은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한 때가 아니다"

[경제위기와 비정규직②] '비정규직 우선 해고'라는 배신을 멈추자

누구도 그 깊이와 폭을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는 경제위기가 시작됐다.

10년 전 공포의 기억으로 모두가 떨고 있다. 두려운 것은 사실 모두지만, 벌써부터 경제위기를 몸으로 실감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도 그 규모를 제대로 집계조차 하지 못하지만 비정규직은 이미 속속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그나마 비정규직노조라도 있는 곳은 낫지만, 그곳에서마저도 그들의 고용을 지키기가 녹록치 않다. 저 멀리 청와대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고, 바로 옆 일터에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금속노조 박점규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이 <프레시안>에 3편의 글을 잇따라 연재한다. <편집자>

▲ 민주노총의 주력부대 중 하나인 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2008년 임금 및 단체협상' 부속 합의로 17개 업종의 외주화 및 효율화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 374명 가운데 250여 명이 사실상 해고되거나 외주업체로 소속이 변경됐다. ⓒ연합뉴스
민주노총의 주력부대 중 하나인 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2008년 임금 및 단체협상' 부속 합의로 17개 업종의 외주화 및 효율화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 374명 가운데 250여 명이 계약이 종료돼 사실상 해고되거나 외주업체로 소속이 변경됐다.

무기계약직 은행원 5000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던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에서도 최근 노조 가입대상에서 제외된 3년 미만 노동자 3000여 명 중 457명이 계약해지됐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정규직 정년연장이 원인이었고, 노조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정규직노조 이기주의'를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노조는 '꿀먹은 벙어리'였다.

정규직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에 대한 집단해고를 묵인하거나 심지어 이를 합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팔아먹는 계급 배신 행위이자, 자본의 비정규직 학살에 부역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지 못하면서 비롯된 가슴 아픈 비극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적잖은 교훈을 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가 아닌 비수가 되어버린 대우버스가 그것이다.

'달콤한 사탕' 믿고 '비정규직 공장' 인정한 대우버스 정규직의 끝은?

대우버스는 1967년부터 50여 년 동안 버스만 생산해 온 국내 버스시장 선두주자다. 연간 7000대의 버스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고 부산공장에 정규직 670명, 사무직 300명이 일하고 있다. 2007년 당기순이익이 171억 원이었다.

2006년 회사는 울산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만 일하는 공장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노동조합이 반대하자 "물량과 상관없이 월 56시간의 초과근무수당(OT)를 보장한다"는 '달콤한 사탕'을 내밀었고 정규직노조는 끝내 이를 받아들였다. 울산공장은 4개 사내하청 260명의 비정규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2006년 8월 울산공장 1호차를 생산했다. 정규직은 사무직 37명과 직·반장급 관리자 40여 명 뿐이었다.

사용자들에게 이곳은 '꿈의 공장'이었다. 정규직 670명의 부산공장은 연 1500~2000대의 버스를 생산해냈지만, 사내하청 260명의 울산공장은 연 3000대를 뽑아냈다.

'비정규직 공장'이 만들어진 지 2년 만에 회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총구를 겨누었다. 물량을 모두 울산공장으로 보냈고, 급기야 2008년 11월 3일 "생산직 670여 명 가운데 237명, 사무관리직 300여 명 중 80여 명을 감원하고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알렸다.

대우버스노조는 울산공장으로의 통합에 반발해 9월 중순부터 2~3주 동안 파업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울산 비정규직공장이 쌩쌩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대우버스노조는 파업을 접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비정규직공장과 맞바꾼 초과근무수당 56시간은 '달콤한 사탕'이 아니라 '독이 든 사과'였던 것이다.

현재도 대우버스 사무직 노동자들이 80여 일 동안 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회사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우버스의 사례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내일의 이익'을 보지 못한 참혹한 결과다.

드디어 비정규직에게도 주어지는 '노동조합 선거 투표권'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똑같은 대우그룹의 대우자동차 소속이었던 타타대우상용차의 얘기다.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금속노조의 방침에 따라 지회 규칙을 개정해 비정규직 340여 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회사는 "인도 자본이 투자를 안한다"는 얘기를 흘렸고,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어려움을 뛰어넘었다.

780명의 정규직 노동자와 34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나의 노조에 가입한 후 지난해 11월 3일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부서별로 모여 함께 조합원 교육을 받았고, 11월 8~9일 전국노동자대회에도 120여 명이 참여했다. 트럭 판매 부진으로 일거리가 많이 줄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가장 먼저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의 문을 연 기아자동차지부는 지난 해 12월 30일 치러진 지부 임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화성공장 1800명, 광주공장 150명, 소하공장 90명 등 총 2040여 명의 사내하청 ·청소 ·식당 노동자들이 선거에 참여했다. 전체 3800명의 비정규직 중 조합원이 50%를 넘었다.

당연히 지부·지회장 선거에 비정규직 공약이 나왔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들처럼 후보 진영의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0년 영국에서 여성에게 처음 참정권이 주어졌던 것처럼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표를 선출한 권리가 처음 주어진 사건이다.

경제 위기 시대에 '1사1조직'을 통한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 대동공업, 퍼스텍, 한국산연, 삭스코리아, S&T중공업 등 총 13개 사업장에서 12월 한 달 동안 지회규칙을 개정해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의 문을 열었다.

현재 금속노조 전체 230여 개 지회 중에서 35%에 달하는 80여 개 사업장이 지회규칙을 개정했다. 앞으로 더욱 확산될 예정이다. 금속노조는 경제 위기 시대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이 더욱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1사1조직 규칙개정과 비정규직 노조 가입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틈타 또 다시 쏟아지는 '정규직 양보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 연설에서 "일자리를 나누고 해고를 자제해 온 우리의 기업들,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노사협력을 이룬 노조에게 우리 모두 박수를 보내자"며 정규직 양보론을 제기한 데 이어 지난 15일 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안정시켜 실질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잡 세어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도 지난 3일 "노사가 고용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양보 교섭'이라고 하는데, 임금이 다소 삭감되더라도 서로 함께 일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그런 '양보 교섭'을 적극 권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겨 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규직 양보론',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사용자단체는 대환영의 의사를 밝혔고, 보수 언론이 총동원돼 연일 노동자에게 양보하라는 공세를 퍼부어대고 있다. 이명박과 재벌들은 여기에 더 나아가 △정리해고제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대상 전면 확대 △최저임금법 개악 등 4대 노동악법으로 '해고하기 좋은 나라'를 추진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은 경제 위기의 책임을 정규직에게 전가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을 벌이면서 동시에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통해 노조 무력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 금속노조는 지난 7일 중앙위원회에서 조직을 '노동자-서민살리기 금속노동자투쟁본부'로 전환하고 "재벌은 곳간을 열고 정부는 노동자 서민을 비롯한 국민생존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자본과 정권에게 물으면서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통한 총고용보장 전선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정규직이 해야할 것은 양보가 아닌 연대다

▲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전선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활용해왔던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현장 노동자들에게 많이 침투해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전선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활용해왔던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현장 노동자들에게 많이 침투해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지부에서 비정규직 노조가입을 위한 규정 개정이 세 차례나 실패한 것은 단적인 예다.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정규직의 고용을 위해 비정규직의 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연대해 싸우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노조 간부들,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9일 열린 '비정규직 우선해고와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토론회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타 김성희 소장은 "정규직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 해고에 합의한다면 노동운동은 어떤 정당성이나 여론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급 배신 행위에 대한 금속노조의 강력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규직노조는 정규직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일을 절대 용납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려는 회사에 '총고용보장'을 내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로 맞서야 한다. 진정한 연대의 실천은 '1사1조직'을 통해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기아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준영 대의원은 "정규직 돈 떼서 비정규직 주자는 식으로 할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집회할 때 정규직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정규직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보가 아닌 연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주공장에서 단 한명의 노동자도 공장 밖으로 쫓겨날 수 없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부의장의 말이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과 함께 감옥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이 말 한마디가 10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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