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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영화의 승부수는 13억짜리 영화로

[특집] 2009 한국 영화계는 어디로

늘 그렇지만 영화계는 밤과 낮을 오간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한다. 굉장히 흥했다가 어떤 때는 폭삭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언제가 호시절이고 언제가 나쁜 시절일까. 영화판 만큼 그걸 쉽게 얘기하기가 어려운 곳도 드물다. 여기는 참 이상한 동네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이 든다.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흥행사업이기 때문이다. 흥행사업은 분위기가 과열되면 자칫 사행사업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행성이란 마가 끼어들면 대개 모 아니면 도로 치닫는다. 지난 2~3년간의 영화판이 그랬다. 너도 나도 여기저기서 떡고물을 얻어 먹으려고 달려 들었다. '빽도어(우회상장)'다 뭐다 하면서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다.

쓸데없는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2009년의 국내 영화산업을 예측해 내야 한다. 과연 2008년 한해 동안 낮게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작금의 경기를 볼 때 다소 지난한 일처럼 보인다. 모든 기업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구조조정에 들어갈 참이다. 불확실한 투자는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태세다. 어찌 보면 영화만큼 리스크가 크고 불확실한 사업도 없다. 물론 반대로 종종 크게 '한방'을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한방' 사업도 경기가 좋을 때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2009년 한해 동안, 제작자들이 투자자들로부터 흔쾌히 제작비를 투자받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이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쪽쪽, 자칫 1년동안 손가락을 빨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영화가 멈추는 해?

일단 2009년 한해 동안 선보일 한국영화의 편수는 급감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극단적으로는 한 40편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편수가 그 정도에 멈춘다면 한국영화산업은 거의 '궤멸'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지구가 멈추는 날(스콧 데릭슨 감독,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작품으로 12월말에 개봉됐다)'이 아니라 '한국영화가 멈추는 날'이 될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 같은 우려섞인 예측아래 지난 11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우선적으로 '600억짜리 중형펀드를 결성하겠다'고 한 것이다.(미디어 미래 12월호 <800억원 규모 펀드로 국내 영화계 총체적 위기 타개?> 기사 참조.)

영화계에 600억원이 생기면 약 30편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앞의 40편과 합쳐져 2009년엔 적어도 70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국내 영화계가 정상적으로 운행되기 위해 필요한 제작편수는 최소 60~70편이 돼야 한다. 제작가협회 등 국내 영화계가 영화진흥위원회의 600억 펀드 결성을 내심 바라고 기대했던 것은 그때문이다. 하지만 영진위는 이 펀드 결성에 1차적으로 실패했다. 2009년 영화계를 공포스러운 전망으로 내다보는 건 그때문이다. 이러다가 정말 40편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싶은 생각들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산업보다는 미학적으로, 혹은 작품성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란 이제는 사라진 공룡처럼 '멸종해 가는 종(種)'으로 취급받는, 흔히들 평론가들을 가리킨다.(아직도 평론가들이 유용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멸종하는 종 취급을 받을 정도다.)

일부 평론가들은 한국영화의 추락설 혹은 위기론에 대해 섣부른 판단이라며 신중하라고 주문한다. 모두들 영화에 대해 지나친 조급증을 가졌다는 것이다. "흔히들 이렇다 할 영화가 없었다, 작품다운 작품이 없었다고들 얘기하지만 그건 영화가 한편 만들어지기까지의 호흡과 시간을 몰라서 하는 말들이다. 문제작들, 문제적 작가들의 작품은 보통 2~3년의 기획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2009년은 작품 편수의 문제만 빼고 한번 기대를 모아 볼 시기다." 일부 평론가들의 이 같은 전망은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

박찬욱, 또 한번 구원투수 역할할까?

일단 감독 라인업만으로는 그런 예측이 맞아 떨어질 듯하다. 2009년 한국영화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최동훈 박진표 봉준호 윤제균 홍상수 등 스타급 감독들이 새로운 작품 발표를 준비중이다. 이들은 이른바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었던 '뉴 코리안 시네마'의 기수들이다.

▲ 올해 개봉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의 한 장면.
'뉴 코리안 시네마' 감독들의 대체적인 특징은 정치사회적으로 불운한 시대를 겪어 사회적 예각과 후각이 남다른 내용을 채택하면서도 고도화된 산업화 시대의 영향과 혜택을 받은 세대인 만큼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들 영화가 2,30대 젊은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건 그때문이다. 이들 영화들은 또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때론 유머러스하며 때론 폭력적이고 때론 공상과학적인, 장르적으로 매우 다양한 측면들을 선보인다. 그만큼 대중적 폭발력이 남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감독 가운데 특히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2006년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작품이어서 더욱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찬욱은 <싸이보그>의 전작 세편 곧,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이른바 '복수 3부작'으로 명성과 흥행을 함께 가져갔으며 국내 감독 가운데 거의 유일무이하게 작가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번 <박쥐>는 그의 얼터 에고이자 페르소나 격 배우로 불리는 송강호가 또 한번 출연한 작품으로 지난 3년간 그 내용이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왔다. 지금껏 알려진 내용으로는 흡혈 신부(혹은 목사)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다. 박찬욱 영화답지 않게 섹스 코드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개봉 과정에서 만만찮은 파열과 파장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박찬욱은 2009년 영화계에 또 한번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낼 것인가.

흥행감독 기대주 가운데는 최동훈도 빼놓을 수 없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로 흥행 고공행진을 벌였던 최동훈은 2009년 <전우치>라는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른바 사극 퓨전 판타지로, 누명을 쓰고 그림족자에 갇힌 조선시대 도사 '전우치'가 500년 후인 현대에 봉인에서 풀려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에 맞서 싸우는 활약상을 그린다. 얘기만 들어도 재밌어 보인다. 최동훈은 무엇보다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스토리 텔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지금까지의 기량으로 볼 때 이번 작품 역시 한국영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가능성이 높다. 국내 최고 스타급으로 불리는 강동원과 임수정, 김윤석 등이 출연한다. 이들 배우로 흥행에 실패한다면 그것 자체가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눈과 귀를 쏠리게 한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엄청난 관객 몰이를 했던 만큼 봉준호는 2009년에도 큰 사고를 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적 감독'이라는 소리보다는 '착실한 흥행감독' 소리를 더 좋아하는 윤제균 감독은 한국영화로서는 도전하기 힘든 재난영화 한편을 거의 마무리 중에 있다. 부산 해운대에 쓰나미가 덮친다는 내용의 <해운대>가 그것. 이 작품 역시 2009년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굴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13억짜리 영화로 대세 판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한국 영화계의 승부수는 조금 다른 길목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박찬욱이든 봉준호든 혹은 최동훈이든 윤제균이든 이번 역시 비교적 빅 버짓(big budget)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그 뒷감당이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졸이며 결과를 지켜봤던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좋은 모델이 된다. <놈놈놈>은 700만 정도의 관객을 모으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우리영화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210억에 이르는 제작비를 투여한 것이 화근이 됐다. 물론 해외판매 수익이 남아 있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의 기대주 감독들의 작품들 역시 앞으로의 개봉과정에서 '놈놈놈스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점이 문제다.

▲ 과속스캔들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2008년 연말에 개봉돼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과속 스캔들>이 모범사례로 꼽히는 건 2009년의 한해의 화두가 바로 '안정적 제작 투자 여건의 조성'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20억원대의 제작비로 3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아 투자자들이 표정관리를 힘들게 했다. 6억5,000만원의 제작비로 130만 관객을 모은 <영화는 영화다>, 25억원의 제작비로 160만 관객을 모은 <고死-피의 중간고사> 등도 국내영화계가 거품을 제거하고, 제작을 합리화하기 위해 '반드시' 벤치 마킹해야 하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현재 경제 여건이 최악이고, 그만큼 투자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 지속적인 영화제작을 위해서는 13~15억 규모의 영화들이 승부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국 관객 50만명 선이 손익분기점인 작품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거품을 확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출연료, 연출료 등을 더욱더 과감하게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영화계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그래야만 비록 더디지만 조금씩이나 성장세를 회복해 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당근보다는 채찍질이 더 필요한 시기다. 조금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도 그 채찍질을 굳이 말릴 생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얘기일 터이다.

(*이 글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 미래> 12월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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