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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IMF 없다"며 '파이어 세일'이 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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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IMF 없다"며 '파이어 세일'이 웬말?

[경제, 위기 탈출 해법은]⑤·끝 "시장 신뢰 회복이 최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대통령과 대화'에서 '9월 위기설'에 대해 "IMF 위기(외환위기) 같은 것을 맞이해서 경제 파탄이 나는 일은 결코 없다"고 자신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현재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대외 경제환경과 앞선 두 '좌파정권' 탓으로 돌리면서 강 장관을 감쌌다. "국무총리도 경제전문가이고 대통령도 경제전문가"라면서 현 정책 실패의 책임을 떠안는 발언까지 덧붙였다.

'9월 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위기설'로 곤혹을 치룬 이명박 정권이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박수 치고 넘어간다면 10년 전 외환위기나 5년 전 카드대란 때처럼 분기마다 '위기설'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3개월마다 '위기설' 재등장할 수도

'9월 위기'가 없을 것이란 사실은 정부만 주장한 게 아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9월 위기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국경제가 67억 달러의 외국인 보유 채권 상환 문제 때문에 파탄날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요동쳤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했다. 경상수지 적자와 정부의 환율방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위기감을 확산시키는 한 축이었다.
▲ '9월 위기설'로 강만수 경제팀의 위기관리능력이 드러났지만 이 대통령은 여전히 강 장관에 대한 강한 신뢰를 표명했다. ⓒ연합

환율과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에서 투기자본들은 짭짤한 수익을 남겼다. '9월 위기설'은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이라는 시장에서 큰 시세차익을 남기고자 하는 투기자본들의 교란작전의 측면이 컸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위기관리능력이 없다는 점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됐다.

따라서 9월이 넘어갔다고 '위기설'이 끝난 게 아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문제는 67억 달러라는 사소한 충격에도 위기설이 나오고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던 근본적 배경"이라며 "세계금융시장의 혼란 뿐 아니라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들은 하루 이틀에 해소될 게 아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분기보고서 작성을 위해 자산-부채를 재조정할 때마다 위기설이 재등장하는 악순환에 봉착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외국인 보유 채권 만기가 연장된 게 길게는 3개월, 짧게는 1-2개월"이라며 "외환위기 직후처럼 3개월 내지 6개월마다 위기설이 반복되는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외환위기 아니라면서 외환위기 탈출 방식은 왜 동원하나

권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제2의 IMF 없다'면서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IMF때 썼던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수출이 잘 되고 원화가치가 상승하고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고 이런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늘리겠다고 해야 하는데 외국자본에 공기업을 팔아 달러를 벌어오겠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국내 외화수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대우조선 등 구조조정 기업의 지분 매각과 우리금융, 기업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헐값 매각' 문제로 재판이 진행 중인 외환은행을 영국계 은행인 홍콩상하이은행(HSBC)가 인수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내세운 이유도 '달러'다. 외환은행을 국민은행 등 국내 은행이 인수할 경우 달러가 국내에서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이지만 외국계인 HSBC가 인수할 경우 국내에서 달러가 빠져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외환은행을 HSBC로 넘기는데 고려해야할 게 단순히 외화수급 상황이냐"며 "가뜩이나 국내 은행들의 외자 비중이 높은데 외환은행까지 HSBC로 넘어갈 경우 향후 금융정책 운영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각도로 고민하고 검토해봐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IMF 아니라면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공기업을 외국자본에 싸게 파는 '파이어 세일'(fire sale)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통령도, 총리도 경제 전문가라는 정부가 이 정도 대책 밖에 내놓을 수 없냐"고 말했다.

'강만수 OUT' 없이 '위기 탈출'은 힘들다

이 대통령은 9일 '대통령과 대화'에서 강만수 장관에 대한 재신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강만수 장관 경질 없이 시장의 신뢰 회복은 힘들다고 단언한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이 최근 여의도 금융가에서 즉석 거리 설문조사를 한 결과, 참가자의 95%가 "강만수 경제팀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현 경제위기의 핵심은 현 경제팀과 정책에 대한 신뢰의 위기다. 강 장관 경질은 이명박 정부가 '뿔난' 시장과 국민들을 달래기 위한 '화해의 제스쳐'다. 경제개혁연대는 10일 논평을 내고 "강 장관의 교체는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 뿐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시간을 끌수록 경제 악순환의 골을 더 깊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부의 '9월 위기설' 진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문제 중 하나가 '경제 콘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극심한 불신으로 경제부처 내부 장악력까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강 장관이 '대통령의 신뢰'만으로 '콘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대통령의 신뢰'는 지난 6개월 동안 줄곧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역할을 상황과 조건이 더 나빠진 현실에서 잘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측면에서도 강 장관의 경질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경제 모르는 YS, 경제전문가 MB

임기말 외환위기 사태를 맞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할 때부터 "경제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경제는 관료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그 관료들을 잘 관리·운용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관료들을 믿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외환위기가 터지기 10여일 전에도 관료들은 김 전 대통령에게 다급한 경제 상황에 대해 숨기고 있었다.

반면 이 대통령은 '경제전문가'라고 자부한다. 국내에는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강 장관 경질 요구를 끝까지 무시하는 것도 '결국 경제는 내가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도 경제 문제는 직접 챙겼다. 하지만 이런 과도한 자신감이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김상조 교수는 지적한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국정운용철학을 세우고 그걸 경제정책에서 관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경제정책에는 성장과 개혁만이 아니라 안정정책의 영역도 있다"며 "문제는 이 세가지 영역은 양립하는 게 아니고 충돌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이며 신중하게 대응해야할 안정정책 영역마저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철학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이 단기안정화 정책은 전문가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율, 금기, 재정정책과 관련한 의사 결정이 대통령의 의도나 철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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