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중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39)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하고 있는 단식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기륭전자 노사가 닥쳐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한 말이었다.
무려 10명의 여성 노동자가 단체로 단식에 들어간 이 '집단 단식'이 사실상 마지막 '행동'이 아니겠냐는 얘기였다. 동시에 김소연 분회장이 올라가 있는 기륭전자 정문의 수위실 옥상 위에서 "그냥 내려갈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지난 2006년에도 김소연 분회장은 30일 동안 단식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1000일 넘게 이어져 온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면, 그 결말은 '해피엔딩'이 될까? 김소연 분회장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하나씩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도 반응하지 않는 회사 때문이다. 한때 5차례나 집중 교섭을 벌이며 타결 직전까지 갔던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이들의 단식이 18일째를 맞던 지난 28일, "회사도, 우리도 이번이 끝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김소연 분회장을 만났다.
"비정규직 고용하는 것이 안에 있는 노동자 죽이는 길인가?"
만나자마자 김소연 분회장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 죽일 수는 없다'고 했나? 불법으로 사용했던 우리를 복직시키는 것이 회사와 직원을 죽이는 길이냐"고 입을 떼었다.
이는 최근 배영훈 기륭전자 대표이사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 대한 반박이었다. 당시 배 대표이사는 '슈퍼맨' 얘기를 언급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관련 기사 : 기륭전자 배영훈 대표이사 "한 사람 구하자고 다 죽일 수는 없다") 김소연 분회장은 말을 이어갔다.
"기륭이 투기 회사가 아니라 정상적인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복직시켜야 한다. 또 우리를 고용하는 것이 기륭전자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노동자를 살리는 길이다. 우리는 몇 사람이 이익을 얻자고 투쟁한 것 아니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해 준 것이다."
김소연 분회장은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는 없다…. 익숙한 말이었다. 지난 2006년 노동부가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해 재조사를 벌인 끝에 '합법도급'이라 판정했을 때, 민세원 KTX승무지부장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그것이었다.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하늘은 아니지만, KTX 여승무원도 두 해나 넘겨 아직까지 파업 중이다. 지난해 말, 잠정합의까지 했었지만 최종 합의 선언 직전 물거품이 됐다. 기륭전자도 마찬가지였다.
"진정성 믿어달라더니 직원 핑계로 파투…그래서 더 배신감 느낀다"
노사는 최근 5차례 교섭을 통해 의견 접근을 이뤘었다. 김소연 분회장은 "솔직히 이번 교섭에는 기대를 했었다"고 말했다.
"배영훈 대표이사가 '나는 기독교인이다. 믿어달라. 정말 해결하고 싶다'고 수없이 말했었다. 고용을 중심으로 얘기하자니까 '그래, 좋다'고 해서 회사가 뭔가 안이 있나보다고 생각했었다. 지난 4월에 140명을 구조조정 했던 일이 있으니 당장 고용하기는 어렵다는 회사 입장도 우리가 이해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년 후 정규직 전환 안이었다."
김소연 분회장은 "우리 내부에서도 '1년 후'라는 안에 대해 반발이 있었다"며 "하지만 내부를 누르고 파격적인 양보안을 던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합의는 결국 결렬됐다. 회사 측이 설명한 이유는 '심각한 내부 반발' 때문이었다.
"진정성 믿어달라더니 직원들 핑계로 뒤로 숨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을 느낀다. 어떤 회사가 1000일을 끌어 온 노사문제를 해결하는데 내부 반발이 있다고 철회하나? 140명 구조조정 할 때도 의견수렴 했나? 애초부터 그렇게 민주적으로 의견수렴을 해서 회사를 경영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결국 회사의 '핑계'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배영훈 대표이사는 겉으로는 '진정성' 얘기하면서 계속 쟁점을 바꿔왔다"고 주장했다. "교섭 초기 쟁점이 됐던 것은 생산라인이 국내에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니 들고 나온 것이 내부 반발이었다"는 얘기다.
그들이 집단 단식을 시작한 것은 그래서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뭘 했을까? 김소연 분회장은 "노동부? 필요없다. 오히려 문제만 꼬이게 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할 때는 '노사 자율' 운운하며 안 나서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 나서서 문제를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들었다. 파업 초기 불법파견 판정이 났을 때 노동부가 어떻게 했는지 아나? 불법이니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지도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합법 도급이라도 지도했다. 결국 그 이후 기륭전자에 4개의 도급 업체가 들어 왔다."
"돈으로 풀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해법은 간단했다. 문구 조정까지 했다 틀어진 그 합의대로 가야 한다는 것.
"이미 안이 다 나왔다. 조정된 안이 있으니 그것으로 풀면 된다. 1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는 안이다. 오래 싸워온 만큼 서로 감정의 골 있을 수는 있지만 회사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그 감정의 골을 만든 원인은 회사 아닌가?"
배영훈 대표이사는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보상"을 얘기했었다. 하지만 김소연 분회장은 "돈으로 해결하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파업 1000일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매일 매일이 힘들고 어려웠다. 그런데 그것을 돈으로 해결? 그럴 것이었다면 진작 끝났다. 더욱이 회사 입장에서는 제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돈 아닌가? 우리와 교섭에서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안 해놓고 언론을 통해 흘리는 것은 비겁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 이어지다보면 일부에서는 "나 같으면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취직을 하겠다"고 비난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을까?
"파업을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또 파견 노동자다. 지금 구로공단 내에서는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취직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달에 100시간씩 일을 해야 겨우 최저임금 수준이다. 또 언제 해고될지도 모른다. 기륭전자에서 있으면서 느꼈던 그 설움을 고스란히 다시 받아야 한다."
그들이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였다. 김소연 분회장은 "비정규직의 설움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일할 때도, 쉴 때도 눈치봐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정규직은 7일 휴가, 파견 노동자는 3.5일만 쉰다. 정규직의 부모님과 파견 노동자의 부모님은 신분이 다른가?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옆 동료의 경조사도 안 챙긴다. 워낙 저임금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삶은 없고 경쟁만 남는 것이 비정규직의 삶이다."
"'일터의 광우병'에는 잠잠한 이유? 정부·자본·언론의 세뇌 때문"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됐던 지난 5월 초, 기륭전자는 서울 시청 앞 고공농성을 벌이며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었다.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일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사람들이 '공감'은 할지언정, 함께 촛불을 들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광우병 쇠고기는 먹거리의 문제이니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하도 세뇌를 당해 대세인 것처럼 느끼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언론도, 정부도, 자본도 경제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이 필요하다고 계속 설파해 왔다. 그래서 국민들도 '어쩔 수 없나 보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 때만 해도 정규직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다른 업체에서는 정규직을 뽑는 곳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애초부터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
정규직으로 살았던 경험이 없다 보니,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각종 차별과 설움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시민들은 촛불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각성되고 있다"며 "하나 하나 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불법을 저지른 것은 회사다. 그런데 왜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지나? 벌금만 내면 다 끝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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