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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불이라도 질러야 눈길을 줄까요?"

[기고] 파업 1000일 앞둔 기륭전자 노동자의 절규

16일로 이랜드그룹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이 300일을 맞았다. 이랜드 여성 노동자는 파업을 통해 열악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상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더 앞서 파업을 통해 파견 노동자의 '처참한' 실상을 알려낸 여성이 있었다. 바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에 위치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다.

'불법 파견' 논란에 불을 지피며 제조업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폭로했던 기륭전자 노동자의 파업이 며칠 뒤면 1000일을 맞는다. 일찌감치 노동부, 검찰이 '불법 파견' 판정을 내리며 이들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이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3년을 거리에서 보냈다. 회사는 벌금 500만 원을 내고 "다 끝난 일"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15일, 김소연 분회장이 파업 3년을 맞아 삭발을 했다. 그가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심정을 <프레시안>에 보내 왔다. 그는 "단식도 하고 3보1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지만, 법도 정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한 발 내딛으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 언론, 지식인의 관심을 호소했다. <편집자>
▲ 불법 파견에 맞서 시작된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곧 1000일을 맞는다. ⓒ프레시안

"우리는 더 이상 1회용 소모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한 인권을 가진 노동자입니다."

이 한마디를 지키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불법 파견에 맞서, 문자 해고에 맞서 싸운 지 벌써 1000일이 눈 앞입니다. 끝까지 일터를 지키려는 노력은 불법으로 응징되고 자본의 불법은 자본에게 가장 쉬운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인 세월이 만 3년을 코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200명의 우리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노조를 만들던 보고 대회 때 그 설레는 눈망울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수십 일의 농성 중에 우리는 사람 사는 맛을 알았습니다. 어설펐던 '팔뚝질'이 익숙해지고 입안에만 맴돌았던 구호가 씩씩해지면서 우리는 쇠사슬로 우리의 몸을 철문에 묶을 줄도 알게 됐습니다. 열댓 명을 잡으러 수천 명의 경찰이 달려들고 경찰보다 더 얄미운 '구사대'가 난리를 칠 때, 잡혀가는 동지들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던 우리들의 분노는 아직도 저 하늘보다 창창하게 남아 있습니다.

구속을 감수했고 가정 생계의 파탄을 감수했습니다. 30일 단식을 했고, 3보1배를 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벌써 벌금 전과만도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모릅니다. 고통에 겨워도 연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몇 푼의 돈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쌓여만 가는 손해배상 액수, 늘어가는 벌금 과태료만이 우리를 막아서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도 모자라 기륭자본은 200억 흑자 회사를 500억 적자 회사로 만들더니 생산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사무 간접직 노동자들을 명예퇴직시키며 이제 마지막 땅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대판 노예제', 파견 노동을 그것도 불법으로 한 것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사회 양극화 및 모순의 뿌리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자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힘든 것은 우리 사회는 물론 우리 안에 도사린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패배감이나, "나만이라도 살고 봐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기심과 맞서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생계라는 이름으로, 절차라는 이름으로, 동지에 대한 속상함이나 배신감으로 얼굴을 바꿔가며 우리 조합원과 우리의 투쟁을 괴롭힌 "비관"라는 귀신, 그냥 골치 아파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살자는 "포기"라는 귀신은 끈질기고 또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간 많은 투쟁이 꺾이고 많은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단단하게 단련된 우리지만 정말 외롭고 지친 소수이기도 합니다.

제 몸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으면 쳐다도 안보는 세상이 수많은 열사를 만든 것은 아닙니까? 굶거나 머리라도 자르지 않으면 눈 한번 흘깃하지 않는 이 차가운 겨울의 나라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합니까? 슬픔은 심장을 채우지만 우리는 이제 설움에 잠겨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타는 분노로 동지의 어깨를 부여잡고 연대의 발걸음 돋우어 한 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분노의 삭발을 하는 것입니다.
▲ 지난 15일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는 "우리의 설움이 저렇게 싹둑 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륭전자분회

머리카락이 잘립니다. 우리의 설움이 저렇게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립니다. 저 더러운 자본의 탐욕이 저렇게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의 고통이 잘리고 노동자 농민 민중을 억압하는 저 더러운 것이 뿌리까지 몽땅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따뜻한 우리, 너무 선량해 일상의 고통도 이기고 거리로 나선 우리, 목이 막혀 너무나 목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세상에 맞서 밥그릇을 두드려 대야 하는 우리들의 투명한 희망이 새롭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쥐어짜고 나서는 이 지옥 같은 세상을 깎고, 더불어 함께 사는 우리 노동자 참세상을 새롭게 기르는 삭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00일을 넘기지 않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비록 저는 삭발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내일 우리는 구속을 결단하고 죽음을 결단하며 또 한 번의 투쟁의 길로 나섭니다. 물러설 뒤조차 없기에 오직 투쟁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길벗이 되고 지팡이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비정규 동지들, 장기투쟁 동지들, 당신들은 이미 우리입니다. 더욱 힘찬 단결로 불법 파견을 박살내고 비정규직을 철폐하여 끝내 세상을 바꿉시다.

노동자 민중 형제들, 자랑찬 금속노조 민주노총 조합원 여러분! 기륭전자 투쟁의 공동대책위원, 후원회원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1500만 우리 노동자가 4000만 민중이 모두 대책위원이 되어 준다면 도대체 무엇을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까?

지식인, 전문가, 정치인, 문학인 여러분!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서명과 더불어 다양한 연대 투쟁에 꼭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껏 우리는 연대로 이 자리를 버텼습니다. 우리가 지면 우리 노동자 미래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협이라는 말, 실리나 실용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진 자들의 것인지 속속들이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우린 사람이란 이름으로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이라는 시대적 치욕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 "타협이라는 말, 실리나 실용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진 자들의 것인지 속속들이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우린 사람이란 이름으로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이라는 시대적 치욕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김소연 분회장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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