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2심에서 15년 실형을 구형받는 상황이지만, 그 동안 송 교수 관련 발언을 최대한 자제해오던 국내 철학자 그룹이 송교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내 철학교수 모임인 전국철학자네트워크(PEN)은 15일 오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에서 '송두율 교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PEN,"법기구의 민주적 양식 존중했었으나 결국, 제손으로 자기 품격을 훼손시켰다"**
송영배 교수(서울대) 등 국내 철학자 14명은 '이제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다'란 제하의 총 5장에 달하는 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먼저 "송두율 교수가 지난해 9월 귀국한 이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말없이 주시해 온 철학계는 그가 당한 부당한 고난에 비춰보면 참으로 무책임하고도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며 그간 철학계가 송 교수 사건에 대해 '침묵'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이와관련 송교수의 귀국이 '2003년 한민족 철학자 연합대회'의 공식초청이었다는 점에서 철학계의 긴 침묵은 여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이어 "민주화되고 있는 우리 국가의 법 기구가 나서서 냉철한 이성으로 송교수의 삶과 그의 인간적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우리 국가의 품에 포용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며 "대한민국 시민과 법기구의 민주적 양식을 우선적으로 존중했다"며 그간 긴 침묵의 이유를 밝혔다.
또 이들은 "지난 3월30일 1심 유죄 판결은 송 교수의 신체와 그의 정체성을 위협에 빠트렸을 뿐 아니라 이 국가의 품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며 "철학적 양식으로 볼 때 대한민국 국가는 송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낙인찍음으로써 제 손으로 자기 품격을 훼손시켰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무분별한 판단력에 경악했다"**
성명은 1심 재판부의 송교수 유죄판결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재판부는) 양심과 사상의 문제에 관한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마치 송교수의 행적이나 사상 때문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북한으로부터 우리 국가에 위협이 오는 것처럼 단정한 그 무분별한 판단력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국가보안법>은 제1조 1항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송교수의 37년 망명생활을 샅샅이 훑어보더라도 그 어떤 활동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한 적이 없었다"며 "오히려 송교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복원시키는데 더 유익하게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송두율교수 내재적 접근법, 북한체제 선전 목적으로 보다니...허탈"**
이들은 이어 "재판부가 송교수의 집필활동을 놓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단정한 것에 대해 경악을 넘어 허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송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북한 사회를 이해할 때 결여되어 있던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큰 효력을 발휘했고, 그의 저술은 아주 정직하게 학문적 성과를 공개돼 왔다"며 "그의 이런 노력은 한국 사회에 찬반 양론의 담론장을 형성케하고,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적용하더라도 송교수의 활동은 범법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은 우리 국가의 시민의식을 계속 위축시킬 뿐 아니라 모든 일상 행위가 언제든지 범죄화될 수 있는 여지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학자적 양심재단은 중세시대 마녀사냥과 같아"**
이밖에 철학계 원로 교수들의 한 마디가 이어졌다.
송영배 교수(서울대)는 "남북관계가 급진전하고 있다. 상호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관계로 몰아가는 국가보안법으로 송 교수의 학자적 양심을 재단할 수 없다"며 "이는 과거 중세시대에 선진적인 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양재혁 교수(성균관대)도 "국보법 개정·존치는 말도 안되다. 미군정하 임시법으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이 50여년이 지나도록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며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위상복 교수(전남대)도 "학문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야만적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성명은 PEN이 지난 12일부터 3일간 전국 철학교수를 대상으로 진행한 서명작업에서 2백59명의 참여로 작성됐다. 홍윤기 교수(동국대)는 이와관련 "한국 철학계가 다소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3일내에 2백59명의 서명 동참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1심재판의 부당성에 대한 철학계 일반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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