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됐다는 비보가 전해진 11일. 꼭 1년 전 이날 이 땅에서는 9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은 끔찍한 화재 참사가 벌어졌었다. 바로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였다.
이 대형 참사가 어느새 1주기를 맞았지만, 큰 피해를 불러 왔던 외국인 보호소의 비인간적 시스템도, 먼 타국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주 노동자의 처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끔찍했던 참사,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나?
표면적인 참사의 흔적은 사라졌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됐다. 화재시 유독가스를 발생시켜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된 실내 바닥의 우레탄도 불연재 마루로 바뀌었다. 환기 시설도 개선됐다. 하지만 수차례 지적됐던 외국인 보호소의 반인권적 시설과 운영 방침은 변한 것이 없다. (☞관련 기사 : "이들을 죽인 것은 대한민국이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빚어낸 것은 외국인 보호소의 시스템 문제라고 지적했었다. 당시 이들은 "외국인 보호소는 '보호 시설'이 아니라 "쇠창살로 둘러싸인 구금 시설이었고 운동 시간도 보장되지 않는 감금 시설"이라고 설명했었다.
지난해 화재 참사 이후 문을 닫았다 다음 달부터 다시 이주노동자를 수용할 계획인 여수 외국인 보호소의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인 쇠창살이 상징하듯 1년 전과 다르지 않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호흡기 장애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SD) 등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재 참사 1년을 맞은 이날 각계 사회단체는 기자 회견과 추모제 등을 열며 이들의 죽음과 아물지 않은 상처를 되새겼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 "사고 당시 정부는 부상자에게 치료비 전액을 지급하겠다고 서면합의를 해 놓고서 최근에 와서야 치료비를 해당 병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며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될 때까지 사건 당시 입은 부상을 치료 중인 이들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지원도 하지 않아 왔음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외국인보호소에 대한 제대로 된 개선책이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수용자들에 대한 정기적인 운동 시간 제공, 일반 주거 시설에 준하는 시설 지원, 인권 상담 기능 지원, 인도주의적 행정 편의 지원 등은 거의 이루어진 것이 없다"며 "과거와 같은 감옥 시설, 과거와 같은 통제 기능, 과거와 같은 비인간적인 감시 시스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대한민국에 없다"
근본적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실수요가 존재함에도 이미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를 모두 불법으로 몰아붙여 '토끼몰이식' 단속을 하는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인간 사냥의 대상이 되어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하고 있으며, 비극적인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경기도 발안에서 중국인 2명이 법무부의 단속 도중 건물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으며, 같은 달 이주노동자노동조합 까지만 위원장 등 집행부 3인이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됐었다. (☞관련 기사 : "노무현 정권, 이주 노동자 탄압도 따를 자가 없다", "이것이 노 대통령의 마지막 성탄 선물입니까?")
무분별한 단속으로 목숨을 잃는 사례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달 15일에는 중국 동포 권 아무개 씨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종로구의 한 모텔 8층에서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미등록 신분이다 보니 상시적인 임금 체불과 차별, 폭언과 구타 등을 겪는 것도 모자라 무차별적인 단속으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년,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며 "지금과 같은 자세로 이주노동자들을 대한다면 비극적인 참사는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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