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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물도 마음대로 못 쓰나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24>사소한, 그러나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

첫 번째 문제.

경기도 포천에 있는 A사업장에는 스리랑카 남성들이 세 명 있었다. 이들이 상담소를 찾아온 이유인 즉 '사장님이 냉온수기의 물을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한다'는 것. 물 인심 좋은 한국에서 이 무슨 소리? 싶어서 확인해본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그 공장의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인데다 옥외에 있어서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화장지를 쓰지 않는 문화를 가진 이 스리랑카인들은 화장실 갈 때마다 볼일보고 나서 깨끗이 씻기 위한 물이 필요했고, 공장안에는 식수용 냉온수기의 물 외에는 물이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 비싼 생수를 페트병에 가득 담아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 명의 스리랑카 남성들이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갈 때마다 물을 한 병씩 가져가니 그 회사의 물소비가 급증했을 것은 뻔한 일. 사업주는 그들이 화장실에 갈 때 왜 물을 가지고 가는지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소비량이 급증한 것은 신경 쓰였고, 마침내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물이 필요하면 니네들이 사서 쓰라'고 하면서 생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 ⓒ프레시안

생수를 쓰지 못하게 된 이 사람들은 수돗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참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도는 두 군데에 있었다. 하나는 성인남성의 걸음걸이로 10분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즉 볼일보러가기 위해서 왕복 20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기거하는 숙소 근처에는 또 하나의 수도가 있었는데, 이들은 그 수돗물을 이용하고 화장실도 숙소 근처의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동선은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한번 화장실에 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사업주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은 이들은 상담소를 찾아왔지만 공장환경이 개선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다. 다만 명색이 시인데 재래식화장실에다 공장안에 수도도 없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뿐이었다. 대도시의 깨끗하고 문화적인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어'라며 흐뭇해했던 것을 괜히 미안해하게 하는 사례였다.

두 번째 문제.

경기도 이천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곳에 B라는 사업장이 있었다. 거기에서 일하는 몽골여성열두 명이 어느 날 우르르 우리 단체를 찾아왔다. 이유인즉 기숙사의 관리비 때문. 그때는 12월이었는데, 회사에서 11월 급여에서 기숙사 전기-수도-기름값, 즉 관리비조로 1인당 5만 원씩을 공제한 것이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관리비용은 회사 쪽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 회사가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 이 여성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모두 우리 단체로 찾아온 것이다. 회사로 연락해서 왜 계약서와 다르게 본인들에게 공과금을 부담시키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회사는 나름대로 고충이 크다고 줄줄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들어보니 회사 쪽 사정도 만만치는 않았다.

매달 수도요금이 20-30만원 정도로 너무 많이 나온다, 본래 젊은 여성들이 물을 많이 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변의 비슷한 규모의 다른 회사와 비교해보아도 심하다고 생각한다. '아껴 써라, 아껴 써라'고 해도 줄지 않았다. 그 동안은 세수나 샤워용 온수용으로만 기름보일러를 가동하였는데 겨울이면 난방용으로도 기름보일러를 가동해야 한다. 전달인 11월에 기름값만 50만원이 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되니 기름값이 얼마나 많이 나오겠느냐. 그래서 겨울만이라도 공과금을 반반씩 부담하자고 말한 것이다...이것이 회사 쪽 주장의 요지였다.

회사 쪽 주장에 대해 몽골여성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절약하며 쓰는지 아느냐면서 전달에 기름 값이 50만원이 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1회 주유의 양과 1주일에 주유하는 회수를 확인해보았더니 50만원은 가볍게 넘어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주요인은 샤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샤워에 대해서 몽골여성들은 '샤워를 돌아가면서 하루에 두 명씩, 1주일에 한번씩만 한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온 몸이 끈끈해지지만 참고 1주일에 한번만 샤워한다는 것이다.

양쪽 얘기를 듣고 보니 양쪽의 주장이 모두 이해가 갔다. 몽골여성들이 수돗물과 기름소비가 많다는 회사의 말도 사실이라고 생각되고, 아껴 쓰고 있다는 몽골여성들의 말도 사실이라고 생각되었다. 몽골은 여름은 한국보다 고온이고 겨울은 한국보다 저온이지만 건조한 기후이기 때문에 습도 높은 한국이 견디기가 훨씬 힘들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고온다습한 기후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온 종일 흘린 땀과 습도로 끈끈해진 몸을 씻고 싶지만 1주일에 한번만 샤워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상당히 많이 배려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가장 좋은 방법은 도시가스보일러를 사용해서 연료비를 낮춰는 것일텐데, 그 지역은 놀랍게도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 문제는 두고두고 서로 간에 분쟁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몇 번 말이 오고간 끝에 노사는 합의점을 찾았다.

B사업장은 11월에 공제한 돈은 각자에게 반환해주기로 하되, 12월-2월까지 석달간만 1인당 5만원씩 분담하기로 했다. 몽골여성들은 노동자 한 사람의 급여에 맞먹을 정도인 공과금이 회사에 부담이 된다는 것을 이해했고, 회사에서는 몽골여성들이 나름대로 절약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 분쟁은 무마되었다.

세 번째 문제.

밧트라는 몽골청년이 다니는 회사는 상시근로자 70명이 넘는 큰 회사였다. 그 중 태국인들이 열두어 명 되고 몽골인은 밧트 혼자였다. 근로조건도 괜찮았고 별 불만이 없었지만 밧트에게는 회사에 털어놓지 못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음식! 다른 것은 다 좋은데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이 나오길래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음식이 야채나 생선은 있지만 고기가 1주일에 한번밖에 없고, 그조차도 너무 매워서 먹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몽골인들이 고기가 주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밧트는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았다. 회사에 전화해서 밧트의 애로사항을 전달했더니 외국인담당직원이 피식 웃고서 '유난히 밧트가 한국음식을 안 먹는다'고 했다. 그 전에도 몽골인들을 채용해봤었는데, 밧트처럼 한국음식을 안 먹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밧트는 야채를 그저 안 먹는 정도가 아니라 고기와 야채를 섞은 음식에서도 야채는 모두 골라내고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국인들도 한국음식이 맞지 않겠지만 적응하려고 애쓰고 잘 먹는데 밧트도 적응하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짐작하건대,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한국인들이나 태국인들은 불만 없이 잘 먹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몽골인들, 특히 시골의 몽골인들 중에는 '야채는 가축들이나 먹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아예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축들이나 먹는 야채를 먹어야 하는' 밧트로서는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본인이 몹시 힘들어하니 따로 점심을 지어먹게 해주든지 해달라고 회사 담당자에게 부탁하였다. 회사 담당자는 태국사람과의 형평도 고려해야 하니 상의해보겠으나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고 말을 맺었다.

예전에는 어떤 파키스탄인은 무엇이 먹어도 되고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인줄을 몰라서 한 달 동안 우유와 빵만 먹었다든가, 과일이 흔한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가씨들이 한국의 비싼 과일들을 마음껏 먹지 못하여 변비로 고통받다가 너무 심하여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든지,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추웠던 필리핀인이 전기장판을 켜놓고 자다가 과열되어 불이 나서 사망했다든지 등의 사건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서 이제는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여겼었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만이 아니라 얼마 전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한국음식을 먹겠다'며 각서를 썼던 파키스탄인 노동자가 돼지고기 등 먹기 힘든 한국음식을 견디다 못해 다른 회사로 옮겨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하고 출국 조치됐다가 관리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해서 승소했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많이 노력해야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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