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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월급명세서를 쓰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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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월급명세서를 쓰면 안 되나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25>회사마다 다른 월급명세서

우리 단체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 중 10명의 3명 정도는 특별히 무슨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궁금한 것이 있어서 찾아온다. 그리고 그 태반은 '내가 월급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온다.
  
  미등록노동자들의 경우, 99%가 근로기준법을 따지기보다 '하루 몇 시간(대략 10-12시간) 근로에 월 얼마'라는 식으로 임금을 정하고 명세서도 따로 없고 공제할 것도 없으니 아주 단순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수가 월급명세서라는 것을 받고 있다.
  
  그중에는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채용했으면서도 월급명세서가 따로 없이 봉투에 총액만 써준다든지, 총액에 공제내역과 금액을 휘갈겨 써준다든지 하는 회사도 있지만 대개는 월급명세서를 준다. 그런데 이 월급명세서라는 게 모두 한국어로 씌어있는데다가, 한국 입국 전후에 의무적으로 받은 교육시간에는 들어보지 못한 용어투성다.
  
  '먼저 회사는 기본급을 한달 기준으로 했는데, 왜 이 회사는 기본급을 일한 날만 계산해주는지', '잔업'은 뭔지, '직무수당'은 뭔지, '만근수당'은 뭔지, '월차수당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주는지', '하루 결근했는데 3일치 임금을 공제하는 이유는 뭔지', '00세라는 뭔지', '왜 이렇게 많은 돈을 공제하는 건지'…. 궁금증은 끝이 없다.
  
  어떤 이주노동자는 깐깐해서 하나하나 계산근거를 회사 담당자에게 물어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서툰 한국어로 묻기도 주저되고, 용기를 내어 어렵게 물어보아도 자신들의 언어로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으니 이해하기가 쉽지도 않고, 때로는 '따진다'면서 눈총을 주는 한국인들 때문에 그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고 궁금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지원단체를 찾아와 월급명세서를 내놓고 설명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회사들의 월급시스템이라는 게 '100회사 100개 시스템'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규모가 좀 되는 회사는 나름대로 일관된 기준을 세워서 적용하는 데 작은 기업들의 월급시스템은 정말 중구난방이다. 그러니 그 시스템을 이해해서 월급이 제대로 계산된 건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계산이 틀리기라도 하면 이주노동자는 회사의 계산이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 뻔하니 특히 신중하게 처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계약서에 근거했을 때 임금이 적다든지, 보험료를 부당하게 공제하였다든지 하여 명백하게 회사에서 급여를 덜 주었던 것이 발견되면 회사에 지급해달라고 하면 되는데, 간혹 연장근로수당은 제대로 안주었는데 뜬금없이 직책수당이란 것을 주어서 총액을 보면 오히려 급여를 더 지급한다든지 또는 공제해야 하는 항목의 돈을 공제하지 않는 등의 웃지 못 할 사례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C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몽골인 노동자 4명이 퇴직금 때문에 상담을 왔다. 출국만기보험을 청구하여 수령하였는데, 법정퇴직금에 20여만 원 정도 부족하였다. 회사에 청구하였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결국 노동청에 진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진정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사업주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료는 노사가 반반 부담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이 사업장은 건강보험료는 전액 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노동자들의 급여에서 공제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런 회사는 처음 보았다!) 그리고 퇴직금 미지급분과 미공제 건강보험료를 비교해보니 건강보험료가 퇴직금미지급분보다 20만 원이 더 많았다.
  
  4명의 몽골노동자들이 상담을 위해 가지고 왔던 월급명세서에 건강보험료는 공제항목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그 월급명세서가 특별히 이상한 월급명세서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고용허가제로 취업 중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건강보험은 당연히 적용되는데, 실제로는 많은 사업장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동청에 진정하기 전의 사실확인과정에서 회사에서는 출국만기보험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으로 퇴직금지급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가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는 사실만 중시했지 건강보험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으니 그 부분은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뒤늦게 전체 사실을 파악한 사업주는 '법대로 하자, 퇴직금 미지급분을 지급할 테니 건강보험료 노동자 부담분을 돌려달라'고 팔팔 뛰었다. 진작 서로 대화로 해결될 수 있었을 문제가 회사의 실수로 이렇게 복잡하게 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서. 더구나 진정한 덕분에 건강보험료를 절반으로 절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은 고마워해야 함에도 말이다.
  
  어쨌든 이 사례는 마무리가 잘 되었는데, 이렇게 해프닝의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혼자서 피식 웃게 만드는 월급명세서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럴 때면 '왜 이렇게 월급명세서는 천차만별인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주노동자들은 노사간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주고받는데, 이 근로계약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인력도입협정을 맺은 국가들의 언어별로 되어 있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한-영판 표준근로계약서라는 것이 있어서 편리한 점이 많다. 그런 것처럼 표준 월급명세서라는 것을 사용하면 안 될까? 그러면 노사가 편리하고, 상담소가 편리하고 혹시 체불임금으로 진정했을 때 노동청도 편리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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