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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도 아닌데 왜 묶어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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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도 아닌데 왜 묶어두나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14>고용허가제의 부작용

요즘 우리 단체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우리의 산업현장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단체에서 매주 신규로 받는 상담의뢰는 10여 건 정도인데 그 중에 절반이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내용이다. 회사를 옮기고 싶으면 그냥 옮기면 되지 그게 상담소를 찾아가야 하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들은 총 3번까지 사업장을 옮길 수 있고, 사업장을 옮기려면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경우에 그렇다는 건 아니고 사업주가 위법행위를 했거나 휴.폐업한 경우에는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 없이 증명이 되기만 하면 된다. 또 1년의 근로계약이 만료되었는데 사업주나 이주노동자 중 어느 한쪽이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나 사업주가 해고할 경우에도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고용허가제도가 처음 시행될 때부터 인권침해 소지가 많다고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조항이 이 사업장 이동의 제한인데,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역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많은 사업주들이 이 조항에 의거하여 이주노동자들을 사실상 묶어놓는 경우가 많고, 어떤 경우에는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몽골에서 경찰공무원이었다는 저거 씨는 한국에 온 지 2년 정도 되었는데 회사를 세 번 옮겼다. 그런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했다. 이유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거 씨도 그 회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더 이상 회사를 옮길 기회가 없다는 것. 회사에서는 저거 씨를 계속 채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고용을 해지한다는 신고서를 고용지원센터에 제출한 그 때부터 저거 씨는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렸다. 저거 씨는 불법체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힘들게 한국에 왔는데 3년을 채우지도 않고 귀국하기도 싫었다. 우리 단체를 찾아왔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런가 하면 4명의 몽골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서쿼 씨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각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일이 넘도록 현장에서 업무 없이 빈둥대야 했다. 그 회사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루 결근하면 한달치 급여를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들이밀고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서쿼 씨는 2주일에 하루 꼴로 결근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 주기로 결근을 하니 전체적으로 보면 회사에서 결근에 대해 대책을 찾을 정도로 결근이 잦기는 했다. 그래도 회사의 요구는 지나쳤는데, 다른 사람들은 서명했지만 서쿼 씨는 서명을 거절했다. 그러자 회사는 서쿼 씨를 노골적으로 따돌리면서 업무를 주지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빈둥대는 것도 고역인지라 서쿼 씨는 '일을 시켜주든지 아니면 회사를 옮기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어느 쪽도 하지 않았다. 회사의 목표는 서쿼 씨가 견디다 못해서 각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각서에 서명한 사람들에게는 업무를 주고 서쿼 씨에게만 주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더니 월말이 되자 '일하지 않은 날은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서 10일 남짓한 기간의 급여만 지급하였다. 서쿼 씨는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고,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직권으로 서쿼 씨를 구직자로 등록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사업주 동의라는 조건을 악용해 속 썩이고 보기 싫은 이주노동자들을 내쫓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업주들도 은근히 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업주가 고용지원센터에 고용관계 변동신고를 할 때 변동사유로 '이탈'이라고 써넣고,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도 '이탈'이라고 신고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불법체류자가 된다. 고용지원센터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사업주가 허위신고를 했는지 어쨌는지 조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불법체류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고용지원센터에 구직등록을 하러 가서야 비로소 그런 사실을 알고는 놀라서 상담소로 달려오기도 한다. 그러면 허위신고라는 것을 이쪽에서 증명해야 한다.

바기의 경우가 그랬다. 바기 씨를 채용했던 사업주는 바기에게 유감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사업주는 회사를 옮기게 해달라는 바기의 요청을 계속 거절하였는데, 임금도 체불되고 해서 바기는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가곤 해서 마침내는 동의했다. 최종 월급도 다 지불하고 나서 사업주는 바기에게 고용관계가 끝났음을 고지하였고, 바기는 사업주의 고지를 들은 후 회사의 기숙사를 떠나왔다. 마침 그날 우리 단체에서 고용지원센터와 바기 건으로 통화를 하였고, 그때 고용지원센터의 담당자를 통해 사업주가 그날 고용관계 종료를 고지했음을 전달받았다.

그런데 그 이후 사업주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탈'이라고 신고해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고용지원센터 담당자와의 상담일지를 증거로 하고 고용지원센터 담당자를 증인으로 하여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의를 제기했다. 내놓을 증거와 증인이 있었으니 바기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런 것도 없는데 본인의 주장에 근거하여 원상회복시키려면 참 힘들다.

사업장 이동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사업장 이동의 제한을 두는 것이 전적으로 한국의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부족한 산업현장을 위해 들여온 외국인력이 더 좋은 조건의 공장을 찾아 자기들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인데, 사람이 살아가는 일인데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발생하는가. 제도에 사람을 꿰어 맞추려니 무리가 빚어질 수밖에.

그 무리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영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컬하다. 이주노동자를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조항이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을 관리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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